주유를 하러 잠깐 멈추었다. 아차! 들고 나오려던 책이 손에 없다. 집에 전화를 해서 거기 있는 것을 확인했다. 어디 낙엽 위에 앉아 독서의 시간을 가져볼까 했으나 부질없다는 메시지인 것 같다.
빛마저 달라진 가을 깊은 오늘
그냥 떠났다. 낙엽 밟는 걸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이고 가끔 풀냄새 맡아야 힘이 나는 나이다 보니
오늘은 숲으로 가야 했다.
지난 며칠 체증으로 답답하고
힘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로 갈 건데? 묻는데
또 내가 정해야 하는군, 조금 짜증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늘 그렇기에 잠시 머뭇거렸다.
아프다고 일정을 취소하고
집에서 누워있기보다는 좀 움직여야
푸른 수액을 들이마셔야
숨 쉴 것 같아 가자했지만
굳은 머리를 녹이는 것도 힘이 들었다.
김포로 방향을 정하다 보니 오호라~
그곳 나의 산티아고를 들러 인사를 할 때가 오늘이구나! 알게 되었다. 언제고 시간 나면 가야지 마음만 먹었던 곳.
마침 지난 밤도 앓다가
새벽에 잠이 깨어 어둠 속에 앉아있는데
문득 드는 생각이 기도를 한지 너무 오래되었다는 것이었다.
어슴푸레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앱을 열고
연도(죽은 이를 위한 기도)를 하니 드디어 날이 밝았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자연스레 백석 방문으로 이어진다.
이런 뜻이었구나...
미처 나도 깨닫지 못한 소소한 발걸음이 다 순례의 길이다.
산 하나가 묘역인 그곳. 백석 (천주교 공원묘지) 산티아고, 그곳에 내 땅 내 지분은 없으나
고향 같은 그리움과 서러움이 깃든 곳이기에
가슴 한 구석에 묻고 사는 곳.
올 해는 궂은 날씨 때문에 코로나 때문에
기일도 명절도 그냥 지나고 말았다.
1단계 조치 덕분에 부모님을 아니 그분들의 흔적을 뵈러 오랜만에 방문했다.
이곳에 잠든 누구나 다 사연 없는 이들이 없으련만
먼저 돌아간 이들 중에 젊은 나이를 묘비에서 마주할 때마다 무한대의 슬픔과 연민이 느껴졌다.
부활의 동산까지 가는 길을 나는 작은 산티아고 라 부른다.
생과 사의 소멸이 가져다준 상실과 운명을 뼛속 깊이 느껴본 감정의 지푸라기.
거역하지 못하는 생의 이별을 놓지 못해 울음을 안고 사는 이들의 마을.
한적한 오늘 그곳을 깊이 느끼기 위해
일찌감치 입구에 차를 세우고
언덕길 능선을 걸었다.
가다 보면 다른 묘와는 구별되어 있는 작은 광장 같은 곳이 보인다. 그곳엔 누런 금잔디들이 눈부시게 반짝거린다. 이미 어느 정도 채워지고 아직 기다리는 공간. 그곳은 사제들의 공간이다.
천주교에서는 11월이 연령의 달이라, 사제 묘지에 추도하러 온 이들이 두어 무리쯤 있었다.
전에는 깊이 사색하지 못했는데
한 생을 조용히 살다 간 분들을 위해
꽃다운 인생을 바친 그들을 기억하는 누군가
저렇게 찾아와 주겠지. 육신의 자녀는 아니라지만
영적인 자녀들이 조문하는 곳.
모두가 누군가의 자녀였고
언젠가 하늘로 돌아가리.
36년 전 처음 이곳을 알게 되었을 때는
한없이 원망스럽고 애타기만 했던 파란 하늘이
이제는 회한이고 심지어 아픈 기억조차
나를 치유하는 힘으로 변화해 버린 것은
올 때마다 죽음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인간의 굴복을 고백하기에
신을 두고,
쿠오바디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나는 어찌해야겠나이까? 물으며
삶에 스며들여 온 아픔과 시시때때로 겪어야 하는 인내의 순간, 제 발길은 어디로 향해야겠나이까!
외치는 까닭이다.
기쁠 때 쓰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
품속으로 파고들고픈 육신의 부모를 잃은 서러움과 고독을,
어찌 감내해야 할지
외쳐 물을 수 있는 내게는
마치 성전 같은 이곳이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스산한들, 수많은 영혼이 잠들어 있는 공원묘지인들, 두려울 리도 없다.
이미 암흑 같은 인생의 순간을 지나고
사랑하는 이의 육신을 묻은 곳인데
이곳에 오면
내게는 심지어 포근한 고향 같다.
긴 연도와 성가를 부른 후
잠시의 침묵 뒤 산티아고를 떠났다.
호렙산이던가? 붉은 떨기나무들이 저것이 아닐까 싶은 붉고 짙은 단풍의 빛이 시선을 머물게 하고
거기 계시처럼 선명한 가을의 빛들이
바람에 추르륵 떨고 있음에
온 힘을 다해 생의 주기를 견디고 있음을
전해 듣고
내가 그 키 큰 고목이 되어
같이 떨어보았다.
츠르르륵 찰찰~
붉고 노란 나뭇잎이 사라락 뒹굴고
아직 메달린 노란 잎들이 거뜬한 것처럼 위엄을 뽐낸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힘을 내고 있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가을 여행을 이어갔다.
부부의 드라이브 여행에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도로 싸움인가 보다.
이곳이 직진이 되느냐 아니냐를 두고 신호대기 내내 마치 누런 단풍잎이나 된 것처럼 얼굴을 붉히고
안 해도 될 소리를 해가며
직진 신호로 바뀔 때까지 입씨름을 하다가
차 안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마음 한군데에서 이제 그만 그래라~ 뒤통수에 꼴밤이라도 맞은 어린아이처럼 스스로 민망했다.
아파트촌으로 변해버린 김포 땅의 지도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 길로 연결하여 돌아가게 하는 내비도 믿지 못하여
"이 놈의 길이 도로 만들어 놓고 부러 그쪽으로만 가게 만들어 놓았어!"
하며 또 변해버린 땅의 모습에 서운해졌다.
예전의 길은 어쩌다 보이는 낮은 상가뿐이고
아파트와 상가촌이 된 이 곳은 국토 모습 동질화 만들기의 대표적 재미없는 지역이 되었다.
개성이 사라진 땅에 어떤 여행의 풍미가 있을까...
추억도 묻어있지 않아 서운한 것이다.
조금 더 가다 보니 다행히도
들판이 나왔다. 아직 살아있는 땅의 시간.
그러나
그곳도 이미 공장 건물이 볼성사납게 들어서
전원은 삐쭉빼쭉 부조합의 풍경을 품은 채
체념하고 말았다.
아이들이 어릴 때
서너 번 와서 모래놀이도 하고 도자기 접시도 만들 던 공원에 도착했다.
십 년 전보다 여기저기 손봐놓은 데가 많다. 시에서 관리하다 보니 깔끔하게 손질되어
조용히 숨 쉬고 가기 알맞았다.
이맘때가 되면 일상에서
그는 낙엽 태우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가끔 저녁을 먹고 동네 산책을 하며
밟히는 낙엽의 사그락 소리에
냄새를 맡고 싶다는 그.
낙엽 태우는 냄새에 향수를 지닌 추남이시다.
이곳에 오니
지천이 다 낙엽이다.
비처럼 내리는 낙엽소리에
마음이 반응을 한다.
뮈라고? 속삭이는 그 음성에
잘 왔구나. 등을 두드려도 시원치 않았던 뱃속메스꺼움이 이렇게 날아가 버린다.
햇볕이 드는 벤치에 앉아 이 글을 쓴다.
한참 동안 이러고
있으려니 한기가 올라오는 날이지만
실내에서 뒹굴며 머리 아프고 가슴 막혔던
명치끝 체증이 녹아내린다.
자연에서 이렇게 힘을 얻는다.
차가운
바람이 콧김을 시리게 하지만
뭉쳤던 그리움과 삶의 한가운데 서운했던 생각들이 시원하게 뚫린다.
피고 지는 자연 안에
지금 내가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