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자리를 들고일어나라

by 그날

다음 활동을 준비하며 나에게 허락된 잠깐의 휴식시간, 어린이집 성인 화장실 안에 들어가 있는데 바깥에서 깊은 한숨소리가 들렸다. 누가 저렇게 힘든 일이 있을까?


늦게 나가 주는 것이 나은 것인지, 빨리 나가서 위로라도 해 줘야 하는지 잠깐 망설여지는데 한참을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마음이 급해져 서둘러 나와 보니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조리사 선생님이셨다. 내가 이 선생님을 깊이 알게 된 것은 회식자리에서였다.

사람에 관심이 많았던 나의 눈에 유난히 띄었던 사람...


규모가 꽤 큰 어린이집이었던지라 원아며 교사들의 식사와 간식을 준비해 주시는 것 만해도 쉽지 않을 텐데 얼마나 성실하고 사랑이 넘치는지, 아이들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치고 잘 먹는 모습을 보면 자신의 아이처럼 기뻐해 주시고,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맘껏 먹을 수 있도록 우리들까지 손수 챙겨주셨다. 주방이며 그릇들까지도 깨끗하고 예쁘게 정리해 주셔서 먹는 내내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 그분이 내 옆자리에 앉았기에 힘껏 칭찬을 해 주었다.

으레 나이를 나누며 이 일을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 질문을 주고받는데 나와 나이도 별 차이가 없고 자녀들도 비슷한 또래들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아 나온 얘기마다 온통 사건과 사고들의 연속이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얼마 안 있어서 동생이 사고를 당해 죽고, 가족의 슬픔이 채 가시지 않았을 때 남편이 일을 하다 쓰러져 급히 병원으로 옮겼는데, 뇌출혈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지금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는 중이라 계속 병간호를 해주다 경제도 힘들어지고 아이들도 돌봐야 하기에 간병인을 쓰고 급하게 일을 구해 나왔단다.


순식간에 너무 절망의 소리가 쏟아져 나와 나는 그 자리에서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나 그 선생님은 급한 연락을 받고 한 참을 나오시지 않았다. 알고 보니 많은 차량을 싫고 가던 트레일러가 전복되어 지나가는 행인들을 치어 메인뉴스에 나올 만큼 사람이 죽고 다치는 큰 사고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 엄마가 큰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했다가 끝내 돌아가시고 말았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만났을 땐 몸도 마음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너무나 고통스러워했다.

자신의 삶이 정말 힘들어서 자녀들이 독립해 나가는 해에 엄마와 함께 살기로 약속해 놓고 그때만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모든 게 무너져 내려 지금은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고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별이 잘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여리고 착한 분이 너무 안쓰러워서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선생님, 문제는 그냥 우연히 찾아오는 게 아니 예요.”

“이제 그 운명에서 빠져나오셔야 해요”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운명의 저주를 끊지 않으면 그 가정 가문에 흐르는 저주와 재앙이 머무르는 그날, 그 자리에 있게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엄마가 미신과 점술을 가까이하셔서 자연스레 접하게 되었는데 자꾸만 이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아무 힘이 없는 죽어있는 것들에게도 집착하고 믿고 빌게 되면 보이지 않는 영들이 움직여서 큰 문제가 터지게 되어있어요.”


다음날 새로운 삶으로 일어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건넸다. 그 선생님 뒤에는 아직 한참 꿈을 꾸고 도전해야 할 아이들이 있었기에...


얼굴빛이 괜찮아지는 가 싶더니 그 한숨소리가 들렸던 거다. 왜, 무슨 일이에요? 이제 49제도 끝나고 엄마 집을 정리해야 되겠다 싶어 이곳저곳에 붙여 있었던 부적이며 지금까지 엄마가 집에 계속 틀어놨던 경을 껐는데 그날부터 꿈에 엄마의 손이 보이면서 다시 켜달라는 듯 밤마다 시달리게 해서 잠을 잘 수가 없단다.


“아니에요. 그것은 엄마의 손이... 절대 속지 마세요...

엄마는 돌아가셔서까지 자녀를 괴롭히는 존재가...

“당당히 생명의 빛을 가지고 그 두려운 존재를 내어 쫓고 명령해 봐요! 생각날 때마다! 함께 도울 테니까요!”

두 손을 잡아주며 일으켜 주었더니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미소를 지어 보낸다...


오늘 어린이집 문을 열며 들어서는데 환한 얼굴로 머리까지 볼륨을 넣어말아 올린 그분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저도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야겠어요. 계속 처져 있으면 안 되겠지요?"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그 목소리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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