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설거지를 하면서, 창가로 보이는 깨끗이 차려입고 분주하게 출근길에 오르는 사람들을 보며 부러움과 두려움으로 가득 찼던 시간, 첫 유치원 교사 시절에 함께했던 동료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잘 아시는 원장님이 급히 사람을 구하는데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네가 생각이 나서 전화를 걸었단다. 이 친구는 결혼을 하고 아이가 있는데도 한번 도 쉼이 없이 이 현장에서 한 길로만 나아가 지금은 어엿한 원장님이 되어있다. 그래서 좋은 자리가 눈에 띄기만 하면 전화를 걸어온다. 뻔히 거절을 할 줄 알면서도...
“지금은 안 될 것 같아. 아직 어린아이들도 있고 한참 진로준비를 하고 있는 수험생이 있어서”
나의 대답은 거절하기 바쁘다. 여러 핑곗거리보다는 내 안에서 두려움이 가장 컸다. 10년 이상 손을 놓은 일... 특히나, 지금은 모든 환경이 빠르고 급하게 전진해 나가는 시스템 속에서 감각이 둔해진 내가 혹여 친구의 누가 되지나 않을까... 하고
“정 힘들겠으면 이번엔 너희 집 바로 근처에 방학기간 3개월 동안 반나절만 하는 일이니까 워밍업을 해보면 좋겠다”라고 제안을 한다.
이젠 거절하기에도 민망할 만큼 수월한 조건인 데다 내 속에서 소리가 들린다. “이 겁쟁이야, 뭐가 그리도 겁이 나니? 도전해 보자!
하루만 시간을 달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남편과 자녀들은 모두 대 찬성이다. 엄마도 엄마의 전문적인 일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내가 바로 대답을 안 한 탓인지 대기업이 운영하는 큰 규모의 선호하는 기관이어서 인지 이 작은 일에도 몇 분의 지원자가 더 있었다. 이력서를 보더니 “일을 오래 쉬셨네요. 다른 길을 걷기도 했고...”
“네, 배우는 것을 좋아해서 그 상황에서 도전할 수 있는 일들을 했고, 자녀가 아직 어리고 많다 보니 끝까지 나의 책임을 다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좀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지점을 먼저 짚어 주셔서 고맙다는 것을 보니 어딜 가나 가장 중요한 게 성실함인가 보다.
많은 자녀들을 양육한 경험으로 여러 경우의 수에 대처 능력을 장점으로 면접은 마무리되었다.
며칠이 지나고 연락이 왔는데 단기간이 아닌 새 학기부터 계속 함께 하자는 전화였다. 나에게도 기회가 왔다는 부푼 기대감을 품고 10년을 넘게 되돌아온 이 현장은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부모님들은 내 아이에 초 집중되어 있었고 아이들은 그야말로 부모님 말도 선생님 말씀도 무서울 게 없는 무법자들의 공동체 같았다.
그리고 공사장에 온 것 마냥 안전제일이 무엇보다 우선순위가 되어, 조금이라도 상처가 나는 일에 촉각이 곤두세워져 온 감각을 쓰느라 그 짧은 시간 동안도 일을 마치면 몸이 녹초가 되어 있었다. 어쩜 이리도 혼란, 혼돈, 혼미한 지...
교사교육도 요즘 시대에 이슈가 되는 상황 변화와 방송에서 나올법한 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제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가 아니라 바로 나의 사건이 될 수 도 있다"라는 사실을 알고 자신을 절제하는 능력을 키우라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자존심을 건드리는 부분은 지금 까지는 남의 일이려니 크게 다가오지 않았던 계약직의 서러움을 처음 경험해 보았다. 그동안 수많은 계약직들이 오간 탓일까? 아니면 너무 가까워지기라도 하면 일 시키기에 부담스러워서 일까?
한참이나 나이 차이가 나는 교사들로부터 인간적인 대화나 눈빛은 전혀 없이 명령의 연속이었다.
분노가 끓어올랐다. '나도 인생 경험, 세상 경험, 유치원 현장에서 너희들보다 갈고닦고 배울 만큼 배웠어.' ‘맘에 안 들면 네가 하든지’ 하마터면 소리를 내 지를 뻔했다. 헉~ 내 안에 꼰대가 아직 살아 있었구나...
진지하게 내 앞에 질문을 던졌다. 내가 이 자리에 왜 있는 건지... 왜 와야 했는지...
먹고사는 문제 때문도 아니었고 내 성공과 명예는 더더욱 아니었다. 내 아이들을 벗어나, 이 세상에 꼭 필요한 게 무엇인지, 우리 후대들을 위해 무엇을 도와주어야 하는지, 거기에 실력도 없는 나에게 풍성한 현장 경험과 물질을 공급하면서 까지 제공하지 않는가...
나의 정체성에 다시금 방향을 맞추었더니 사람의 말에, 환경에 짓눌렸던 것에 많은 영향을 받지 않았다. 되려 젊은 선생님들이 안쓰러워졌다.
아직 자녀들도 키워보지 않은 저 존귀한 존재들이 윗사람의 눈치, 학부모들과의 관계, 아이들의 시달림 속에서 얼마나 지치고 버거울까...
아무도 행복한 위치가 없어 보였다...
그래, 부족한 부분들을 차근차근 배우고 준비하자. 세상이 줄 수 없는 내 안의 빛의 능력으로...
그들을 도와주고도 남을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