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를 출산할 무렵 우리는 좀 더 넓고 숲과 가까운 곳에 있는 한적한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나름 아침이면 산새 소리가 들려오고 창문을 열면 숲에서 솔솔 풍겨오는 솔향기로 얼마나 기분을 상쾌하게 하는지.... 계절마다 자연은 각 각의 옷을 갈아입어 눈을 즐겁게 해 주고 산과 바다가 풍성한 이곳의 오일장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나의 입을 풍성하게 했다.
그러는 가운데 셋째, 넷째 출산으로 몸과 맘이 무겁던 어느 날 우리 아래층에는 아주 무섭고 반듯한 분들이 이사를 왔다.
처음에는 웃으며 인사도 나누고 반갑게 마주하던 얼굴들이 차츰 어두워지고 하루도 평안할 날이 없이 현관문 앞에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 “아이들의 쿵쿵거림, 장난 소리, 악기 소리로 우리 집은 고통스럽다.”라는 문구로 나의 심장은 점점 쪼그라 들어가고 있었다.
그래... 이곳은 나와 우리 아이들, 이웃 모두를 지옥으로 끌고 가는구나...
'남에게 피해를 줘 가면서 행복할 순 없지'라는 결론을 내리고 무작정 예쁜 단독 주택들이 줄줄이 세워져 있는 더 이상 층간소음에서 해방될 수 있는 곳으로 집들을 보러 갔다. 나를 옥죄이는 것은 그 순간 돈도 아니었고 인간이 누리고 싶은 자유 그 자체를 소유하고 싶었기에...
그 꿈에 그리던 단독주택은 우리 대 가족이 살기에 그야말로 지상낙원이었다. 봄이 되면 마당 한 켠에는 고추, 방울토마토, 상추, 부추, 딸기며 갖가지 야채들을 심고 시장이나 길가에서 꽃들과 열매나무들을 사다가 예쁜 꽃밭을 꾸미고 반듯반듯 굳어 있는 담장을 타고 어여쁜 찔레 장미며 향기 좋은 인동초를 심어서 풍성한 꽃 향기들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미소를 자아내고...
내 손으로 꾸미고 가꾸는 모든 생명체들이 정말 살아있는 공간이었다.
그곳에서는 우리 호기심 많은 아들이 아빠의 온갖 공구들을 가지고 쿵쿵 내리치는 소리도, 딸아이들의 재잘거리며 웃고 떠드는 소리도 막내의 울음소리도 이웃들의 배경음악이 되어 서로가 음식을 나누며 겉으로 보아서는 아무런 고통도 아픔도 느낄 수 없는 여유로움 들을 즐기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나 또한 아이들의 인심 좋은 이웃 아주머니가 되어 간식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함께 마당이나 옥상에서 그들의 속삭임을, 때론 광란을 들여다보며 함께 뒹굴고 뛰고 찾으면서 이들에게 무한한 상상의 공간들과 한없는 생명의 에너지들이 있음을 느끼는 정말 흐뭇한 시간들이었다.
이 시간들이 멈추었으면 하는 바람을 뒤로하고 우리의 새로운 꿈과 계획을 위해 몇 달 전 치열한 교육의 현장이 기다리는 곳으로 네 번째 둥지를 틀었다. 새로 이사 온 곳은 주변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고 모든 것이 질서 정연하게 갖추어져 있어서 나무랄 것이 없어 보였지만 우리가 진짜 살을 부대끼며 살야 할 곳의 집의 크기는 우리의 살림살이와 여섯 식구들이 살기에는 턱없이 좁고 오래된 주택이라 여기저기 벌레며 움직임들이 둔한 가구들로 모든 것들이 노후화되어 있었다.
현관문을 열면 한눈에 모든 집안의 상태가 스캔이 되고 몇 발자국을 떼면 누가 어디 있는지 그 숨결이 다 느껴지기에 아이들의 비밀스러운 자기만의 휴식시간들이 다 들통이 나고 여기저기서 부딪히고 싸우는 소리와 올여름 찜통더위까지 한 몫하며 평온하기만 하던 우리 가정은 문을 여는 순간 전쟁의 연속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화장실 앞에서 줄을 서서 배를 움켜 잡으며 문을 두드리다가 화를 내는 아이, 왜 나 혼자 조용히 집중할 수 있는 방이 없냐며 분을 내는 큰 아이들, 치워도 치워도 금방 어수선 해지는 집안 꼴을 보며 분통이 치밀어 오르는 등... 정말 함께하는 시간들이 고통이었다. 그러다가 다행히 가족 간의 불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적응이 되어가고 규칙도 세워가며 잡히는 듯 보였지만 가장 크게 가슴이 아파오는 것은 지금까지는 알 수 없었던 셋째 아들의 이상한 행동들이었다.
또래 아이들이 새로운 아이가 전학을 왔다며 함께 찾아와서는 초인종을 누르면 아이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어찌할 줄을 모르다가 문도 열어 주지 않고는 좁은 창문으로 가서는 “아, 내가 지금 놀 수 없어. 바쁜 일이 있거든... 잘 가...”하며 거절을 하기 일쑤였고 주택에서 살 던 습관대로 아침마다 현관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기라도 할라 치면 기겁을 하고 문을 닫기 일쑤였다. 모든 관심이 그 문에 꽂혀서 아침부터 힘 빠지는 설전을 벌어야 했으니...
그 아이가 일찍 나오는 날에는 문을 열기가 두려울 정도였다...
꼭 예전에 자폐증을 가진 아이들을 교육하는 기관에 실습을 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 아이들 대부분이 자기만의 세계 속에 반복되는 행동들을 되풀이하면서도 유독 문을 열어두는 것에 민감해지거나 의자 각도에 예민해져서 반드시 원래의 형태로 닫혀 놓거나 의자를 놓아두어야 한 적이 있었다. 꼭 지금의 우리 아이의 모습 속에 그 시절에 처음으로 접한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오버랩되었다. 과연 누가 이 어린 생명에게 수치와 부끄럼을 가져다줬을까?
평온할 때나 모든 것이 갖춰져 있었을 때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이미 이 영혼에게도 열등감과 비교의식들이 깊숙이 박혀 있었음을 순간순간 질문에서 느낄 수 있었다.
“엄마, 우리 집 몇 평이에요?” “우리 아빠는 무슨 일을 해요?”
“윗집 아저씨는 박사라고 하던데... 아빠도 박사 하면 안 돼요?” 끝없는 질문이 계속될수록 우리를 불행한 것처럼 끌고 가는 생각과 싸우며 아이를 기다려 줬다...
며칠이 흘렀을까? 한참을 뜸하던 아들 친구들이 오랜만에 초인종을 눌렀다. 오늘도 거절할 요량으로 말을 얼버무렸다. 그중에 용기 있는 친구가 물 한잔만 먹고 가자며 문을 열어 달란다. 그 말에 할 수 없이 문을 열어주는 틈을 타서 함께 간식을 준비해서 먹이고 차차 놀이 속으로 들어가더니 아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예전의 웃음을 활짝 터트린다... 얼마 만에 눌려있던 것에서의 자유함인가...
다음날에는 더 많은 친구가 찾아왔다. 이제는 자신의 환경에 초점을 맞추고 부끄럼쟁이로 더 이상 주눅 들어 있는 소심함의 아들이 아니라 자신의 당당함을 자신 있게 표현하며 참 자유를 소유한 영혼으로 친구를 만났기에 그들도 함께 행복함을 누렸다.
모두들 학원 가는 시간이 되어 하나 둘 빠져나간 뒤 얼굴에 함박웃음을 띄고는 나에게 다가와 귓속말로 속삭인다.
“엄마, 나 오늘 반장 선거했는데 제가 당선됐어요...”
“전학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된 것은 처음이래요.” “너무 좋아요”
몇 달간의 맘고생이 한순간에 녹아내리는 듯했다. 나에게 있었던 그 어긋난 자존심의 굴레가 내 아이에게 그대로 대물림되어 스스로를 옥죄이고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에게 까지도 그 잣대로 내리치는 나를 경험했기에...
난 오늘 아파트 뒷 산책로에 걸음을 멈춰 섰다. 이 숲 속 자연은 나에게 메시지를 전해 준다.
숲 속에 키 큰 고목은 울창한 그늘이 되어 주어 좋고, 사람의 눈높이에 맞추어 가지가지 모양을 선사해 주는 나무가 있어 눈이 행복하고, 잔잔히 바닥에 레드 카펫을 밟고 가는 주인공이 되는 기분을 선사해 주는 초록이 함께 있어서 더 좋은 거라고... 넌 너여서 최고로 아름다운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