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찌는 듯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 겨우 잠자리에 눈을 붙일 무렵, 핸드폰에서 알림 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잘까? 아니~ 이 저녁에 무슨 메시지 일까? 싶어 켜 보았더니 “모두 참석해서 슬픔을 함께해 주세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부고장이 와 있었다. 나는 그 순간 하염없이 흘러내린 눈물을 닦을 수가 없었다. 아니야, 그럴 수는 없어. 더 어려운 것도 이겨내었잖아...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있고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냥 가면 어떻게 해 뭘 했다고.... 이 바보...
항상 소박한 웃음에 우직하게 그 자리에 남아서 언제 찾아가도 ‘잘 사냐’ ‘어이 들어와' 하며 따끈한 차로 몸을 녹여주던 친구...
우리는 친구이기 이전에 더 끈끈한 피가 통하는 사촌 간이었다. 이 피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끈덕지게 죄어 오는지 모른다. 시골에서 큰집 작은집으로 유치원 때부터 함께 한 교실에서 지냈는데 이 바보는 툭하며 말썽을 부린다.
어려서는 선생님들이 개구쟁이라고 귀여워했지만 고학년이 될수록 야, 거기 너 나와! 엎드려!! 몽둥이로 엉덩이며 바지를 걷고 종아리에 매를 모질게 맞는다.
일찍 엄마를 여의고 제때 영양이 부족해서 키도 많이 안 크고 살도 없다며 엄마는 늘 걱정을 하셨었는데 그 비쩍 마른 친구의 살갗을 아랑곳하지 않고 찰싹찰싹 내리친다. 그만! 그만하세요! 제가 맞을게요!! 내속에서는 비명이 흘러나온다. 그 상황을 보고 있는 것은 정말 내 뼈가 말라 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들킬세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내 눈과 귀를 막을 뿐이었다.
중학교 때는 온 학생들이 함께 모여서 교장선생님의 훈화를 듣는 애국조회가 있는 월요일 아침이었다. 학교에서 제일 험상궂고 호랑이로 소문난 체육선생님이 줄을 맞추시다 화가 나셨는지 야, 거기 장난치는 놈 나와! 그냥 넘어갈 상황이 아닌 눈치다. 끝까지 소리를 치시더니 구령대 앞으로 올라오라 하신다. 아 ~또 나의 바보 친구다...
그나마 고등학교는 남녀공학이 아니었기에 우리는 서로를 차츰 잊혀 갔다. 그냥 방학 때나 가족 행사 때나 보는 정도였다. 친한 친구들도 많은 거 같고 잘 지내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가출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찍부터 엄마의 빈 공간이 너무나 커서 그 공허함을 세상의 풍요로 채우고 싶었을까?
아니면 찾아도 찾을 수 없는 그 무지개 너머를 찾아서 나섰을까?
친구는 한참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더니 흰 눈이 소복이 쌓여서 차가 잘 들어 다니지 않던 겨울날 마을에 도착해서는 우리를 불러 모았다.
그동안 전기를 다루는 공장에 가서 돈을 많이 벌었다며 시내에 가서 맛있는 것도 사주고 영화도 보여준다고 했다. 우리는 그 애가 얼마나 모진 고생을 하고 어린 나이에 돈을 모았을지 걱정을 하기보다는 난생처음 영화를 본다는 생각에 한참을 걸어 나가야 신작로가 나오는 길을 한숨에 달려서 버스에 올라탔다. 시내에 내려서 떡볶이도 먹고 우리를 받아주는 뒷골목 음침한 영화관에는 빨강 바탕의 에로틱한 제목의 영화였는데 그야말로 서로 몸이 굳어지고 어디에 시선을 둬야 할지 얼굴을 돌려서 눈을 바라볼 수도 없는 아주 기괴한 영화였다.
그렇게 그 친구는 지금까지 가난이라는 것에 허덕이다가 돈을 벌면서부터 그 주머니를 아끼지 않고 그 마음만큼이나 넓고 시원하게 쏟아냈다. 우리 마을 친구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하나 둘 다른 곳으로 취업을 하고 시집 장가를 가는 동안 이 친구는 객지를 돌며 사는 것이 지쳤는지 고향으로 돌아왔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닌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말이다.
사람내음에 목말라하고 사랑에 굶주렸던 친구는 그 사랑을 아들에게 흠뻑 쏟아부어 주었다. 콘크리트 벽에서는 줄 수 없었던 경험들을 아들과 이곳저곳 흙 밭을 누비며 산으로 들로 나가서 아들이 궁금해하는 온갖 것들을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행복하게만 보이던 친구에게 운명은 끝없이 찾아와서 혈액을 타고 그 몸속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도 아버지라는 존재... 그 자리를 끝까지 지켜주고 싶은 간절함으로 어려운 고비고비마다 병마와 처절한 싸움을 이겨 내었다.
친정에 갔을 때 잠깐 들렸더니 이제 죽음에서 다시금 살아났으니 정말 하고 싶었던 일,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요즘은 카메라를 들고 산에 올라가서 작은 생명체들의 이름을 찾아주고 기록해 놓고 각각 특성들을 모아 책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 조금씩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누가 아픈 사람인지 잠깐 잊어버린 체 이야기에 흠뻑 젖어 아쉬움을 뒤로하고 돌아온 지 몇 달이 지난 후에 연락이 왔다. 갑자기 병이 재발되어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아니, 별일 아닐 거야... 금방 회복되어 다시 오겠지... 지금까지도 견디었으니까... 하지만 끝내 온몸에 퍼져버린 질병 앞에 친구는 이번 무더운 그 여름날 무릎을 꿇고 말았다.
머릿속에 이름만 떠올려도 눈물이 흐르다가 조금씩 말라갈 무렵 친정엄마의 방문이 있었다. 언제나 보따리 보따리 음식을 싸 오시는 엄마... 그 속에 신기하게도 몇 년 된듯한 얼굴 만한 표고버섯이 있었다. 어제 큰 집을 정리하느라 갔더니 마당가에 미처 따지 못한 이렇게 큰 버섯이 많이 달려 있어서 따 두었다가 조금 가져왔다고 하셨다. 주인은 어디 간 줄도 모르고 충직한 버섯은 열심히 성실하게 주인을 기쁘게 할 요량으로 선택받는 그날까지 기다리고 있었으리라...
친구야, 네가 그토록 귀중히 여겼던 작은 생명체들의 소중함... 내가 대신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