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만 한 기계랑 바람이 났네

by 그날

각방에서 “킥킥”웃는 소리가 들린다. 어느 순간 스멀스멀 들어온 이 작은 화면으로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 보고 각자 웃고 생명도 없는 기계음과 바람이 난 모습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의 일방적인 선언이긴 했지만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텔레비전이 없었던 우리 집은, 제한시간을 두고 말하기를 해야 할 만큼 거실은 왁자지껄 이야기 꽃이 피었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 친구랑 대판 싸웠던 일, 발표과제까지 시연을 했으니 말이 늦어지거나 틈새를 공략하지 못하면 정치 토론회처럼 낄 자리가 없었다.


주말 아침이면 내가 읽고 감동받았던 역사서나 삶의 스토리가 담긴 어른 책들을 읽어주고 있노라면 이불속에서 꼼지락꼼지락 발가락을 움직여가며 귀를 쫑긋 세우고, 저녁이나 되어야 컴퓨터로 다큐멘터리나 영화, 간혹 오락프로그램들을 선정해서 둘러앉아 함께 보았으니 서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택함 받고자 핏대를 세웠다.

지금 언론을 준비하고 있는 첫아이는 그때의 생존경쟁이 자신을 만드는데 큰 몫을 했단다.


그런데 흑암의 아빠와 혼돈의 엄마가 만나서 무질서의 아이들을 낳았으니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을 해도 쓰나미처럼 몰려온 미디어 세상 앞에 산산이 무너지고 있었다. 또한 나도 공범자가 되어 그동안 아이들의 부름에 멈추지 못했고, 알아서 조용히 놀아주면 편했다. 영원히 아이로 멈춰 있을 것처럼....


그러던 중, 며칠 전 바람을 쐬러 나갔던 곳이 생각이 나서 주섬 주섬 간이텐트며 간식, 돗자리를 급하게 챙겨 마을 옆 바닷가로 쌩쌩 달려갔다. 코로나로 답답해진 영혼들이 멀리는 갈 수 없는지라 오랜만에 시골 한적한 바닷가가 최고의 휴양지가 되어 이곳저곳이 시끌 벅쩍 했다.


아이는 바다와 모래사장을 보자마자 손을 끌고 강가로 향했다. 대충 텐트를 치고 자리를 잡은 후, 본격적으로 먼저 와있는 아이들에게로 뛰어 나갔다. 운동화에 여벌 옷도 없는데 아무 데나 털석 주저앉아서 흙을 파고 물을 담아 작은 댐을 만들고 소라며 꽃게 조개들을 하루 종일 찾아 나설 모양이다. 겨우겨우 다음번에 제대로 준비해서 다시 오자는 약속으로 마음을 안정시키고서도 얼마나 아쉬워하는지 뒤를 보고 또 보았다.



약속을 잊지도 않은 체 그 주가 되어 마침 집에 놀러 온 친구들과 함께 조개와 게를 잡을 거라며 담을 통과 여벌 옷, 신발까지 준비하여 같은 시각에 다시 가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그때와 똑같은 시간이었음에도 물이 차올라 있어서 준비해 갔던 물건들이 무용지물이 되었으면서도 실망하는 기색 하나 없이 꽃게잡이는 뒤로하고 첨벙첨벙 물놀이에 잡기 놀이, 모래성 쌓기, 중간 기지 만들기 등을 하며 그들의 에너지를 다 뿜어냈다.


그동안 왜 몰랐을까?

아이들은 놀고 싶었고 더 재미있는 것을 찾고 있었고 그들 안에는 무한한 생명들이 꿈틀대고 있었음을...

이토록 창조주가 주는 최고의 놀잇감은 날마다 숨을 쉬고 변화를 체험하는 살아있는 공간이었던 거다...

조금씩 조금씩 깨달아간다. 참 어리숙한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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