빡빡하게 짜인 일상을 잠시 뒤로하고, 창조주의 생명의 빛깔과 숨결들을 느끼며 나의 영혼에 자유와 해방을 주는 최고의 선물... 여행을 맞이했다. 그것도 서로가 원수가 되어 하루도 쉴 새 없이 싸우고 하나라도 더 먹으려고 쟁탈전을 부리며 볼 것, 안 볼 것, 다 까발려져서 입 뻥긋하면 폭로전을 방불케 하는 한 지붕 여섯 식구의 지난여름 여행...
우리도 이 여름을 한 번쯤은 맘껏 만끽 하자며 남들이 거의 거들떠보지 않는 한 여름의 온천 여행지로 회사에서 제공되는 숙박시설을 신청해서 당첨되는 호사(?)를 나름 누릴 수 있었다.
아~ 이 얼마만의 여행이던가... 그것도 훌훌 단신 아가씨 때 온갖 치장을 하고 친구들과 함께 낭만을 즐겼던 곳... 한 번쯤은 꼭 한번 다시 들리고 싶은 깊고 푸른 바다가 있는 동해안으로...
하지만 나이를 먹고 철이 들어 가는지 좀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꿈꿔가는 요즘, 가야 할 이유를 발견하는 목적이 있는 여행이고 팠다.
그 첫여름 여행의 목적을 ‘이유가 있는 만남’으로 정해 보았다. 영혼 없는 밋밋한 반복은 맛이 없음을 알았으니까...
때마침 우리 부부와는 특별한 인연으로 나의 첫 직장생활 시절, 긴장되고 무미건조한 삶이 지속되고 있을 때 같은 회사 건물 화장실에서 만나 내 남편의 친구와 결혼을 하고 지금까지 오랜 친구로 지내오고 있는 마음속 고향 같은 푸근한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한 번쯤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온다더니 왜 깜깜무소식 이냐며 얼굴 다 잊어버릴 것 같으니 이번에는 꼭 나서 보라는 거다.
정확하게 친구네 집은 우리 목적지와 꼭 맞아떨어지는 동해안의 꼬리뼈 자락에 있는 포항이었으니 첫 만남의 주인공이 되었다.
'여름 손님은 호랑이보다 무섭다'라는 데도 우리 친구 부부 네는 먼 곳까지 찾아와 준 게 너무나 고맙다며 모든 일정을 우리에게 맞추어서 아무런 불편함 없이 이곳저곳을 보여주며 얼마나 배려를 해 주는지 내 터전에 온 것 마냥 평안할 수 있었다.
어둑해질 무렵 이곳은 꼭 거쳐가야 한다며 영일만의 밤바다를 누빌 때 우리를 위해 준비라도 한 듯 아름다운 선율이 그 넓은 바다를 메우고 있었다. 오랜만에 덩달아 자유를 망끽하는 아이들도 쉴 새 없는 재잘거림과 조약돌들을 옷 속에 담아서 검은 바다를 메꾸어 다리라도 만들는지 한량없이 돌을 줍고 나르고 던지며 에너지를 맘껏 발산했다.
우리의 만남의 시간이 너무도 빨리 지나감을 아쉬워하며 집으로 돌아와 늦은 밤까지 삶을 노래하며 인생의 빛깔들을 채색해 갔다.
다음 목적지를 향해 동해안을 따라가는 내내 넓고 푸른 망망대해에 눈이 팔려 있을 수만은 없었다. 며칠째 계속되는 전쟁 소식에 다른 때 같았으면 여름 여행객들로 이곳 저것이 북적대며 사람들로 가득 채워졌을 바닷가가 전쟁의 공포로 분위기는 한참 어두워지고 중간중간 초소에 총을 든 군인들만이 보였다. 지금까지 우리 민족은 동서로 남북으로 세대 간까지 서로 분단되고 이간되어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뤄야 하는 끝없는 가슴 아픈 역사들...
잠시 잊고 싶은 건지, 잊고 살아온 건지 우리의 현 실정을 눈앞에 바라보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 후대들에게는 과연 어떤 미래를 남겨야 할까, 무엇을 심어야 할지를 되묻게 되었다.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전쟁을 선포한 바로 그날인지라 우리 가족은 둥그렇게 모여 앉아 분리와 이간으로 지금까지 우리 민족을 하나 되지 못하게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둠의 세력을 향한 간절한 영적 싸움의 기도를 드렸다.
그 기도가 닿은 건지 하루 종일 고요함과 평온함 속에서 오래 오래간만에 온몸에 긴장되었던 것들을 온천 물속에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때만큼은 삶의 경쟁 속에서 아등바등 대며 묶여 있던 모든 사슬들을 풀고 싶었다. 행복에 젖어 온천여행을 하는 동안 계속 마음속에 담긴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시어머님..
우리 여행의 목적을 따라 꼭 만나야 할 사람...
자식들을 언제쯤이면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손주들의 커가는 모습을 한없이 보고 싶어도 자식들에게 불편함을 줄까 말씀을 아끼시는 분... 기대가 아쉬움으로 늘 반복되는 삶을 살아가시는 혼자 외로이 계실 어머님을 생각하며 동해안의 특산물들을 이것저것 골라 다음 목적지인 시댁으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타고 아래로 아래로 왔던 길을 다시 내려오는 동안 창밖을 내다보며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삶 속에서 참 많은 부분들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과의 만남...
그 만남으로 인해 지우지 못할 상처가 되기도 하고 때론 삶의 방향과 목적을 깨닫게 하는 영원한 만남의 선물을 받기도 하는 것... 그 속에 눈물도 있고 진한 감동도 있었으니 이제 이 불혹의 나이를 지나는 즈음에 여행이라는 선물 앞에 삶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만남이라는 주제로 시작한 이 여름 여행...
포항 친구네로 시작하여 영덕, 울진, 함양, 진주에 있는 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계시는 친척분에게 문병 차 잠깐 들리고 난 후, 마지막 지인에 죽음의 소식에 장례식장까지 들려왔으니 참 인생을 한 바퀴 돌고 온 것 같았다.
이 여정 속에서 한 팀 되어온 가족...
그렇게 밉다가도 돌아서면 그대들이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