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잃은 그대에게

by 그날


아이를 키우면서 세상과 단절됨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려고 하루에 3시간씩 컴퓨터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오후 1시가 넘은 시간이라 배도 고프고 두 다리도 쭈욱 뻗고 싶은 마음에 차를 쌩쌩 몰고 내가 항상 주차하는 그곳, 나의 애마를 위한 그늘을 찾아 주려고 서서히 속도를 늦추고 있는 순간 앞에 펼쳐진 광경은 나의 칼날과 같은 율법을 뒤집어 놓는 풍경이 있었으니 그 자리에서 아무 미동도 없이 꼼짝을 못 하고 내 심장을 붙들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최종 목적지가 100미터 정도 남아 있었지만 이 끓어오르는 분을 쉽게 삭이지 못했다....


살고 있었던 집이 여중, 여고 근처 놀이터가 있던 곳이라 청소년들의 아지트였다. 주변 이웃들이 가장 힘든 모습은 여학생들의 재잘거림으로 소란함과 그 들이 남기고 간 쓰레기 더미가 아니라 남녀 학생들의 애정행각이었다. 그것도 버젓이 교복을 입고 한 대낮 사방이 트여있는 벤치에서 지나가는 그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한 치도 떨어지지 않는 모습을 온전한 정신에서 모른 체해야만 하는 씁쓸함이었다.


그래서 이웃 모임이 있는 날에 이 일이 이슈가 되어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 토론의 주제가 되었지만 뭐 뾰족한 수가 없었다. 지금 세상이 남의 일에 과한 참견은 되레 내가 다칠 수도 있고 내 집에 피해가 될 수 있다는 생각들이 이웃 간에도 사회 안에도 비일비재하여 알아도 모르는 척, 안 좋아도 눈감아 주는 포기 아닌 포기를 하고 있는 상황에 오늘 나의 눈에 포착된 두 아이들은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다. 너무나 어려 보여서 아직도 엄마 아빠의 품이 더 포근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의 피부는 싱그럽고 사랑스러웠다.


요즘 한창 아이들 사이에서 당연시하는 기초화장에 색조화장까지 화려함으로 채색을 했을지언정 그 속살은 아직도 맑은 햇살을 좋아하고 해맑은 웃음을 담고 있는 가공되지 않은 원석, 그대로였다. 그래서 더욱더 마음이 떨려오고 아파 와 그 자리를 쉽게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20대 중반 한 창 젊음을 소유했던 때에 나를 오래오래 보아 오고 나만을 사랑해준 친구와 나는 결혼을 했다.


남들은 전문성을 찾아 나아갈 때였고 산으로 바다로 여행을 다니며 자유 함을 맘껏 누리고 날개를 달던 시기였지만 좀 이른 시기에 결혼해서도 내가 찾은 전문성, 생명을 키우는 교육현장에서 더욱 든든한 남편과 함께 알콩달콩 새롭게 시작하는 삶에 자신 있게 발걸음을 내디뎠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을 했고 나의 몸은 내 것이 아니었으며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씨름하며 지쳐서 집에 올 때면 오만가지 일들이 나를 문 앞에서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에 허둥지둥 몸만 빠져나가느라 보지 못했던 그 잡동사니 허물들이 천지에 널려 있고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기다리며 뒹굴고 있는 남편이라는 사람은 온 맘을 바쳐 나를 구원해준 왕자님에서 한 야수가 되어 있었다. 나의 삶을 누가 훔쳐가고 지옥으로 나를 몰았나 한탄의 얼굴로 집안은 냉전시대를 거쳐 로켓, 미사일, 대포가 순간순간 오가는 전쟁의 연속이었다.


마침내 산부인과를 찾아가서 의사 선생님에게 대뜸 “제가 지금 일을 하고 있는데요, 임신을 한 것 같은데 아이를 뱃속에서 조금 미루는 방법은 없나요?”라고 물었다. 어처구니없어하는 의사 선생님은 그런 방법은 없다고... 생명은 계속 자라나고 시간이 되면 밖을 나온단다. 내가 생각해도 가정 시간에 죽어라 외었던 것을 의사 선생님이 무슨 신인 양 그분에게 황당한 것을 물었을까?

그 이후로도 나는 행복하지 않았고 그 아이를 맘에 품지도 않고 원망하고 미워했던 탓일까?


처음 본 아이의 모습은 달력에 나오는 모델처럼 큰 눈에 쌍꺼풀 지고 앵두 같은 입술은 하나도 없고 얼굴은 잡아당긴 것 같은 길쭉함에 눈은 찢어지고 누굴 닮았는지 못생긴 얼굴이었다. 그래도 많이 많이 보듬어 줘야지... 내가 어릴 적 느꼈던 그 허전함은 주지 않을 거야... 다짐하며 짧은 몇 개월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다른 집에 아이를 맡기고 다시금 일을 나가는데 아이는 그 떨어짐의 고통을 몸서리치게 싫어했다. 발버둥을 치며 울고 엄마 손에서 혹여나 놓칠세라 내 옷이며 가방을 붙잡고 몇 분간의 씨름을 하다 나의 필사적인 탈출 시도에 울음과 소리로 온 우주를 울렸다.


갈수록 아이는 날카롭고 심지어 누군가 다가와서 ‘귀엽다’라고 만지기라도 하면 악~하고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꼭 아이는 “얼마나 내가 살고 싶었는지 아세요?” 내가 나를 지키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라는 아이의 몸서리를 바라보며 내가 참 몹쓸 짓을 했구나... 저 어린 생명, 내 뱃속에서 그저 형체도 다 갖춰지지 않은 연약한 존재였지만 살고 싶고,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생존 욕구가 있었음을 한참이 지난 후 호되게 야단을 맞은 후에야 알게 되었다.


나에게 신비롭고 경이로운 경험을 준 첫 아이..
아주 살아 있어서 반응하며 꼬물대는 생명체... 내 아이... 정말 기쁨의 눈물이 흘려졌던 내 아이... 나도 이제 세상의 가장 큰 가슴... 엄마가 되는구나...
나도 이제는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나눠보는 소중한 시간들이 오겠구나..라고 느껴졌던 시간들. 이 짧은 순간에 이런 나의 과거가 떠올랐던 것은 그 애송이들의 불장난이 과연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를 고민하면서 그 아이들이 그렇게도 간절히 받고 싶은 것도 사랑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자신들이 누구인지 조차 잊어버리고 무엇을 지니고 있는지 모른 체 살고 싶어서 발버둥 치는 모습들...

그들에게 얘기해 주고 싶었다. “너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아가며 도둑질하고 죽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이 친구가 나를 가장 사랑해 주고 나의 꿈이고 희망일 것 같지만 아직 자신의 짐도 혼자 감당하기엔 버거운 삶이라는 것을...

“그 보드라운 손길과 나만 바라봐 주는 눈빛으로 가장해서 어린 후대들을 족쇄로 가두고, 가장 가치 있는 생명 살리는 일, 창조주가 주신 가장 기쁜 일에 도전하지 못하게 하는 더러운 흑암 세력은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질지어다”

“이 후대들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생명의 빛이 이 순간 비추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담아 여름 한 낮보다 더 뜨거운 눈빛을 보내며 공원 입구를 향해 힘찬 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