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 미술관에서 열리는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에 다녀왔다.
그림을 잘 알진 못하지만 그분이 생애 간직하고픈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너무나 궁금했다. 한참을 보고 나더니 함께 동행한 딸아이가 묻는다.
“엄마, 그림을 어디에다 걸어두었을까? 왜 이렇게 깨끗하고 반듯반듯해요?”
그랬다... 정말 작품을 평생 소장하고 소중히 간직할 만큼 사랑했나 보다...
여러 작품 중에 그림에 문외한인 나에게도 우리나라 최고 여류화가 중의 한분으로 꼽는 작품이 눈에 띄었다. 그 화가의 작품에는 눈에 띄는 몽롱한 고독과 등장하는 대상들의 눈빛이 남달랐기에...
이 작가는 자신의 배경이자 추억을 함께한 고향에 그림을 기증했다가 작품을 함부로 다루고 관리를 소홀히 하는 것을 알고 참지 못해 다시 환수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버려지는 모퉁이 돌이 그 가치를 아는 자에게는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는 것이니까.
모르는 것에 대한 알고자 하는 호기심에 꼬리를 물고 지역에서 꾀나 이름이 알려진 미대 교수님의 강의가 있어서 설레는 마음으로 참석을 했었던 적이 있었다.
자신은 원래 보이는 대로 정확하게 구도에 맞춰 사실적으로 그리는 완벽함을 추구하다가 나름 이 세계에서 성공하고픈 마음에 프랑스로 유학을 갔단다. 그곳에는 한국인 유학생들과 유럽인들이 뒤섞여 있었는데 본인은 잘하고 싶은 마음에 최선을 다해 수업에 임하며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그림을 잘 그렸다고 자신만만하게 그려 냈는데 교수님은 한국 학생들을 유독 잘 골라내어 "너희들은 똑같이 복사하려면 사진을 찍지 왜 그림을 그리냐"고 묻더란다.
정말 아닌 게 아니라 다 그린 작품을 한 사람씩 나와서 스토리텔링을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한국 유학생들은 이미 그림에 다 표현이 되어 있어 최대 5분이면 끝날 얘기를 그 나라 친구들은 쉼 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질문을 하며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는 것을 보고 충격에 충격을 받아 그림의 기법을 완전히 바꾸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훨씬 자유롭게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 갔더니 돈도 명예도 다 따라왔다는 것이었다.
설명하는 강의보다는 서로 묻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강의인지라 처음에는 조금 낯설었는데 한참을 웃고 내 생각을 말했더니 두 명의 사람을 지명하여 앞으로 나오란다.
하필 가장 자신 없는 그림을 그리는 것에 지목이 되다니....ㅜㅜ
몇 줄의 글을 읽어주시더니 최대한 도형을 이용하여 간단하게 표현해 보라는 것이었는데 옆에 서계신 남성분은 그림을 꾀나 그리신 분처럼 구도와 각을 잡아가며 그려나갔고, 나는 문득 오늘처럼 바람이 세게 부는 숲 속의 물가는 어떨까를 상상하며 '바람 부는 숲 속의 어느 날'이라는 제목으로 연못가 나무에서 열매가 떨어지는 장면과 그 소리에 놀라 생명체들이 튀어 오르는 장면을 나름 표현하며 그렸는데...
나를 바라보며 와! 유학 가서 깨달은 것을 표현했다며 큰 칭찬을 해 주셨다. 내가 유럽형인가??ㅎㅎ
모든 것을 한 줄로 세워 똑같은 잣대로 판단하고 평가해서 잠재력을 쓰임 받지 못하도록 난도질을 하는 이 나라에서 태어나지 않고 나의 섬세함과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교육환경에서 자랐다면 어땠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특히나 어린 생명체들을 교육하는 현장에 있다 보니 나의 수준과 세상을 보는 눈이 열려야 우리 후대들에게도 자신의 가치를 알고 눈을 뜨게 하는 살아있는 교육을 심어 생명적인 만남, 영혼을 살리는 힘을 전달할 수 있음에 절실히 깨달아 가고 있는 중이니까.
세월이 흘러 내 묘비 앞에 섰을 때에 “밥 세끼 먹다 감”이라고 쓸 수밖에 없는 괜히 왔다가는 인생이 되면 안 되지 않는가?
그럼, 후대들에게 남겨줄 나의 소중한 가치는 무엇일까? 돈, 명예, 권력은 없지만 창조의 언어를 통해 감동을 뛰어넘어 생명을 살리는 치유의 작품, 소망의 작품, 능력의 작품을 이뤄 나갈 발걸음을 시작했다는 도전에 가슴이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