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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날 May 06. 2022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며


  2년 6개월 만에 코로나가 하향조치되면서 드디어 실외 마스크가 해제되었다. 산책을 하면서 사람이 없을 때는 몰래몰래 마스크를 내려놓곤 했었는데... 이제는 눈치 보지 않고 그 뿜어내는 싱그러운 연초록들의 

생명력들을 맘껏 받아들일 수 있다니...


마스크 해제가 시행되는 5월 2일 첫날.  당당하게 마스크를 벗고 밖을 나가보리라 마음먹고 낮 동안 바쁜 일상으로 미뤄두었던 쓰레기를 한가득 가지고 어스름한 저녁에 밖을 나갔다. 이 얼마만의 자유인가?

아파트 재활용 수집장에서 쓰레기를 버리는 일도 신이 나서 콧노래를 부르며 일을 진행하는데 오랜만에 이웃 언니를 만났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소식을 전하며 반가운 이야기가 오가다 점점 다가오더니 드디어 얼굴 이곳저곳을 살핀다. 그동안 몰랐는데 살이 왜 그렇게 빠졌느냐? 치아는 왜 그렇게 안 좋아졌느냐? 피부에 주름이 생겼다느니...

아~ 아뿔싸 그동안 약간의 거리두기가 너무나 과한 관심을 차단할 수 있는 방패막이된 것도 있었는데... 앞으로 점점 노화가 진행될수록 이 수많은 힘 빠지게 하는 지적들을 어떻게 감당할꼬...


그런데 나의 내면이 많이 여물어졌는지 집으로 돌아와서도 화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가족들에게 “더 이상 예뻐지면 피곤해질 텐데... 앞으로 큰 일을 해야 하기에 이런 말도 듣게 하셨나”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면 감정에 시달려 좋은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기대감을 가지고 내 육신까지도 살려야겠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번 생일날도 마찬가지였다. 실제 생일과 서류상의 생일이 다르고 우리 때의 음력 생일이 번거로워 임의대로 정해놓은 양력 실제 생일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요즘같이 바쁜 시기에 생일까지 챙김을 받는 것은 아직 과분하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누군가 날짜를 물어보면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기에 매일이 나의 생일이라고만 했다. 


그런데 정작 생일이 다가오자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슬픔의 날이 될 것 같아 가족들에게 미리 선전포고를 했다. 나는 다른 무엇보다 편지 받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고... 아이들 나름대로 정성스러운 마음을 담은 편지와 케이크와 용돈, 막내는 MZ 세대답게 영상편지를 만들어 보냈다. 우리 집에 남자들은 반응이 한 참 늦다가 누나의 스매싱“이 자식아, 엄마가 너를 어떻게 키우고 생일이면 얼마나 거한 생일상을 차려주던? 누나는 이웃나라 왕자님의 취임식인 줄 알았다. 누나들이 곁에 없을 때는 네가 챙겨야지”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는지, 시험 기간 중에 공부를 하다 말고 갑자기 뚜벅뚜벅 나가더니 내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노란색 꽃 화분을 사 와서는 “엄마, 내가 얼마나 엄마를 사랑하는 줄 알지요?”라며 안겨준다. 

눈물이 찔끔찔끔...

벌써 아이가 많음의 뿌듯함을 맛보아 가나보다.


다른 사람들의 이벤트를 보고 즐기기만 하던 남편이 급기야 자신의 사태가 위태로움을 보고 이대로 가다가는 삶이 평탄하지 않을 것 같았는지 퇴근시간에 맞추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미역국과 잡채밥을 준비해 놓았다. 히야~ 거의 생일이 명절인 양 계속되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나를 챙겨주지 않음에 무가치한 감정으로 쉽게 깨져버렸던 과거의 나로 내 내면에 상처와 분노가 쌓이기 전에 미리미리 나를 살려 놓기로 했다.



거의 2년 여만에 모두가 함께하는 어린이날 행사가 열렸다.

아이가 관현악 합주를 해야 하기에 우리 가족들도 서둘러 행사에 참석하였다. 우리 지역에 이렇게 많은 가족들과 후대들이 있었나 싶을 만큼 오랜만에 열린 행사에는 많은 인파가 몰려왔다.

시에서는 모든 지원을 쏟아부은 것 같은 많은 놀이기구들과 활동들을 무료로 제공하였다.


이토록 아름답고 행복한 후대를 살리고 그 이웃과 가족들의 저주와 재앙을 막아주는 귀한 일을 맡기셨기에 오늘도 나의 분은 있을 곳이 없을 만큼 바이 바이!!!~~~


5월 5일 어린이날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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