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떠나보낸 후

by 그날

큰딸은 새로운 도전 앞에 서울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딸의 가는 편에 편지로 나마 잠깐의 위안을 주면

될 줄 알았다. 친정엄마가 병원에

입원을 했다는 소식에.


그런데 갑작스러운 통보.

가족들은 모두 준비를 하라는 메시지가

날아왔다.

그 이후에 나는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어떻게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회사에

필요한 서류들을 작성하고 주변의 이웃들에게

아이들을 부탁한다는 연락을 했는지…

눈물이 범벅이 되었다.


14시간의 비행과 6시간의 공항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내내 들려줘야 하는 말이

있기에 불쌍한 그 영혼을 꼭

지켜달라는 기도 속에 있었다.


항상 마을 어른들이 하신 말씀에 “너희 엄마에게

보물 1호는 윤이 너야 “ 그래서였을까?

엄마는 큰 병원으로 이송 중에 심정지가 왔음에도

심폐소생술로 가까스로 맥박과 호흡을

찾았고 내가 도착할 때까지 온 힘을 다해 생명줄을

부여잡고 있었다.


극히 병문안이 제한되는 중환자실에서

“엄마가 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어요.

잠시만 뵙게 해 주세요 “라는 마음이 전달되어

날마다 문 안과 밖에서 일주일 간을 우리는

함께 할 수 있었다.


코와 입과 온몸에 호스를 꽂은 상태 속에도

귀를 열어 나의 목소리를 받아주었고

눈을 살짝 열어 눈물을 보여주셨다.


엄마가 가는 길이 외롭거나 슬픈 길이

아니라 이제 나그네 인생을 정리하고

더 이상 아픔과 고통과 슬픔이 없는

우리의 본향. 천국으로 향하는 것이기에

천사들의 수종을 받으며 영원한 복락을

누리는 것임을 기도와 찬양 속에서

마지막 임종까지 보내드릴 수 있었다.

더 이상 이렇게 만져볼 수도 안아드릴 수도

없는 이 땅에서의 이별은 너무나 아프지만…


엄마는 그렇게 평소에 늘 하시던 말씀처럼

자식들 고생시키고 영영 아픈 상태로

숨이 끊어지지 않는 서로에게 못할 짓은

안 하고 싶다고 하시더니 누구보다 건강하게

베풀고 나누고 무한한 사랑을 실천하시다가

환자복이 구겨지기도 전에 너무나 짧은

작별을 통보하였다.


모든 장례와 유품들을 정리하며 그동안

잘 몰랐던 우리의 아픔과 삶들의 여정들을

오빠들과 언니들과 눈물짓고 웃으며 나눈

그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했다.


한국을 뒤로하고 미국땅을 다시 밟은 지금

아직도 이 5월이 무진장 아파와서

아이들과 함께 길을 걷다 잠시 멈추었다.

“나 이제 엄마도 아빠도 없는 고아가 되었네”

라고 조용히 속삭였다.

“엄마, 엄마에게는 한 보따리나 되는 우리와

아빠, 그리고 이번에 보니 엄마를 너무나

아껴주는 언니 오빠들이 든든히 옆에 있는데

무슨 말이에요. “


“이제 할머니는 가장 행복한 곳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하시는데 지금에서야 평안히 쉴 수 있도록

놓아드리세요. “

“그래, 이제는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을 위한

시간을 주어 드려야겠지?. “


엄마, 그 힘들었던 삶 속에도 보여주셨던

그 사랑의 깊이를 간직하며 따라가며

그곳에서 흡족히 바라보실 수 있도록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빛을 발하며

살아갈게요. 사랑합니다.

고마워요.

나의 어머니!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지금, 어디쯤에 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