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2막을 시작하며

졸업과 입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by 그날


이곳에 이민을 온 지 1년 하고도 9개월.

그동안 숨 가쁘게 정신없는 시간 속에서 한 아이의

졸업을 맞이했고 두 아이의 대학입학을 치렀다.


한국에서의 눈물 나는 고교입시의 전투가 있었고

온 가족이 앞도 보이지 않는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떨리는 몸을 부여잡고 오르락내리락했던

대학입시를 이미 경험했기에 이곳에서의

우리가 치른 입시는 그 떨림의 정도가 심히

가벼웠다.


특히나 고등학교를 몇 해나 더 다녀야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졸업을 할 수 있다는 자체만 해도

가히 신기할 정도였다.

그리고 온 힘을 다 쏟아 자신의 대학 등락에 따라

울고 웃고 했던 우리의 고교졸업식과는 사뭇

다르게, 학교를 성실하게 다니고 많은 활동들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한 친구들에게 선사하는

리본과 메달.

모두가 함께 착용하는 가운과 졸업모.

큰 대학강당을 빌려 온 가족과 친척들, 지역사회의

축하무대등 한 아이 한 아이의 수고와 미래를

축복해 주는 모습들은 정말 감동의 순간들이었다.


특히나 이곳은 각 주마다의 영향력과 혜택들이 다양하고 자신의 미래와 꿈을 찾아 다른 곳으로의 편입제도가 잘되어 있어서인지 한 아이 한 아이 호명할 때마다

기쁨의 환호성에 익살스러운 표정들로 화답했다.


지금 어떤 지역 어느 학교를 가든지, 갭이어(gap year)라는 일정기간 쉬면서 자신을 돌아보거나 다양한 경험들을 쌓는 시간을 갖고 싶다고 하든지~~~


우리는 함께한 이 경험들을 축하하며 새로운 시작을 위해 미국에서의 첫 여행! 보스턴으로 향했다.


보스턴은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교회아이들이 유학길에 오른 곳으로 10년 전부터 꾸준히 기도 속에

있었고 더군다나 우리 아이들이 전공하고자 하는 바이오와 음악이 만나는 곳이기에 꼭 밟고 싶었던 곳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지금도 공부하고 있는 청년들을 만나보고

싶은 기대감을 안고서.


처음으로 밟아본 곳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이곳은 낯설지 않았다. 깨끗하고 정돈되며 많은 대학들이

자리 잡고 있어서 인지 젊은 학생들의 생동감이

느껴지는 서울의 한복판에 있는 기분이었다.

특히, 무료의 공항버스들의 이동과 몇 노선이 안 되는 지하철들의 순조로운 코스로 처음 방문한 우리가

구글지도와 쳇 GPT의 도움으로 어디든지 찾아갈 수 있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4일이라는 시간.

첫째 날은, 우리 숙소와 가까운 뉴버리 스트리트

쇼핑과 브런치와 카페들로 길게 늘어서 있는 보도블록 위에 많은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느라 테이블은 모두 꽉꽉 채워있었고 그 길을 따라 걸으면 브라운스톤의 벽돌건물에 럭셔리 브랜드부터 250여 개의 상점이 줄지어 있다고 하니 여성들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무작정 걸었다. 다음을 기약하며.

그리고 해리포터에서 본듯한 보스턴 공립도서관과

미국의 최초 공공 식물원으로써 그 역사와 아름다움,

자유를 모두 품고 있는 듯한 100종 이상의 나무가

가득한 정원박람회의 현장.

퍼블릭 가든(Public Garden), 그 넓이와 초록 속에

파묻혀 모든 피로를 풀어내었다.


둘째 날은, 하버드대 근처 돌아보기

역시나 세계 최고의 명성만큼 하버드 스퀘어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수많은 형태의 학생들과 관광객들이 즐비하고 배움을 갈망하는 젊음의 소리들로 꽉 차있었다. 다양한 기념품샵들과 서점가들을 돌고 난 후

본격적으로 학교 안으로 들어가 보니 역시나 존 하버드동상 앞에는 사람들이 줄지어져 있었고 미국 최초의

대학 도서관으로 유명한 와이드너 도서관 앞 계단에는 많은 사진촬영들이 진행 중이었다.

모두의 마음 안에는 배움에 대한 갈망이 끊임없이

자리 잡고 있나 보다.

특히나 고대부터 현대까지 아우르는 미술작품들을

시대와 나라별로 전시해 놓은 유리 피라미드형 지붕의

하버드 미술관은 2023년부터 한 사람의 기부로 인해 무료관람이 가능했다. 곳곳마다 깃들여진 나누고

베푸는 문화들이 참 크게 다가왔다.


셋째 날은, 현지의 음식과 거리공연. 바닷가를 거닐 수 있는 퀸시마켓으로 향했다.

보스턴 시청이 있고 예쁜 항구가 있어서 인지 35개의 푸드점들이 곳곳에 큰 상점들을 이루고 있었고 특히나 해산물요리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은 마침 주일날이어서 동부 보스턴에 유학을 왔던 한인들이 모여 최초로 예배를 드렸다는 교회에서 함께 말씀을 받았다.

우리가 여행자임에도 오가는 발걸음 속에 평안함이

함께하기를 기도해 주었다.

이제는 그들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고 어린 손주들을

이곳에서 마주해야 함에도 한국의 뿌리를 그대로

전달해 주는 수고도 잊지 않은 듯했다.

잠시 이 여행길에서 생각해 본다.

지금 왜 내가 이곳에 서 있을까?

하루에 버스가 몇 번 다녀가지 않은 깡촌에서 나고

자란 내가, 무료함을 이길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책 속 이곳저곳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이었다.


그것이 중학교 때 배운 영어라는 외국어를 배우면서는

거칠지 않은 이 음률의 언어를 더 깊이 접하고 싶었고

신앙생활을 하면서부터 이 땅에 함께 살아가는

이 들을 만나고 부대끼고 돕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동안 바쁜 일과 속에서 생존만을 위해 애쓰는

내 자신을 대하고 잠시 멈춰 서서 발길을 뗀

이번 여행길.

다시금 나를 돌아보고 내가 나아갈 꿈과 방향을 향해

도전이라는 씨앗을 마음밭에 심어 본다.

그것이 나고 자라도록 다시 내가 있는 자리로

돌아와 한걸음 한걸음 생명을 넣어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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