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자리로의 초대

by 그날

린, 이곳에 생활은 맘에 들어?

일하는 것은 좀 어때? 계속 지내고 싶은 게 맞는 거야?

남편과 떨어져서 혼자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모습이 정말 궁금하다는 얼굴들로 동료들은 계속 물어온다.


아니, 나는 이곳에서 이런 삶을 원하지 않았어. 온종일 일하고 아이들 라이드와 살림살이, 그리고 틈만 나면

살아남기 위해 영어소리를 집중해야 하고…


그렇다고 다 싫은 건 아니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경쟁이 심하지 않아서인지 사람들은 언제나 따뜻한

미소로 다가왔고 스몰톡이라는 문화로 나의 소소한 것들을 물어봐 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진로 앞에

누구의 눈치나 보이는 것들에 훨씬 자유로울 수

있었으니 마음만은 많이 여유롭고 평안해졌다고

해야 할까~~


4일 간만 하든지, 아니면 파트타임으로 오전이나

오후만 하고 싶어. 내가 좋아하는 책도 보고 글도 쓰고

한 번쯤 학교도 다녀보는 경험도 좋고,

여유 있게 하고 싶은 일이 정말 많은데…


그 말이 씨가 된 건지 그렇게 승승장구하며 부채가 하나도 없이 오로지 현금자산으로 운영되던 이곳 회사가

폭발사고가 있어 인명피해를 입고는 한 공장이 언제

끝날지 모를 가동이 중단되었다.

그래서 많은 직원이 한 곳에 넘쳐나다 보니 초과근무를 할 수없고 내가 속해있는 연구개발팀은 일이 급격히

줄어 우리 랩팀은 4일 근무가 되었다.

그때만 해도 숨을 쉬고 좀 살 것 같았다.


그런데 우리 가정이 이민을 온 초기에 아무것도 몰라 정신없이 방황하던 때가 지나고 이제 정신을 차려보니

본격적인 문제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너무 바빠서 아플 틈도 없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돌아가며 열이 나고 앓아눕기 시작했다. 그래도 한국에서

겪었던 독감(플루) 정도인지라 며칠간 약을 의지 하며

겨우 겨우 안정을 찾은 듯했지만 큰아이는 처음

겪어보는 이석증의 증상을 보였다. 걷기조차 힘들고

어지러워 병원을 가야 했다. 하지만 미국의 시스템은

예약이 없으면 동네병원도 못 가고 특히나 우리는 아직

패밀리닥터도 정해놓지 않은 상태라 앞이 막막했다.


어쨌든 어디든 가야 했기에 소개받은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가서 닥터도 정하고 정 안되면 오늘 가능한 의사라도 만나보려 했는데 우리가 만나려는 의사는

아내의 출산으로 한 달간 휴가이고 진료를 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날이 일주일 후라니…..

의사의 이름이 10명 정도인데…

역시나 우리 동료들이 말한 대로 이곳은 예약하는 데만 몇 달, 의사 만나려면 내년. 나는 이미 죽었다고 하더니만.


병원직원은 너무나 환자가 힘들어 보였는지 최대한 가까운 같은 재단의 우선진료(Priority care) 센터를

소개해 주었다. 미국에서의 치과를 제외한

첫 병원진료의 경험이었다.

그래도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제대로 약을 처방받았다고 느껴서인지 아이는 빠르게 호전되어 갔다.

병원비가 얼마가 될지 여기는 보험회사와 처리속도도

느리기에 기다리는 수밖에…

우리 집에 사람만이 아픈 게 아니었다. 이곳은 자동차가 없으면 생활이 안되기에 급하게 구입했던

중고차(used car)가 갑자기 계기판이 흔들리고

차량속도가 나오지 않더니 엔진경고등에 불이

들어왔다. 겨우겨우 회사까지 끌고 와서 차를 잘 보시는 분이 변속기액(transmission oil)을 우선 갈아보고

차를 다시 집에 가져다 놓으라고 하셨다. 다른 부품들도 더 갈아야 하기에…

한국에서는 한 번도 갈아본 적이

없는 변속기오일. 이 정체는 또 무엇인고.


그 아픈 차를 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정말 온몸이 두려움으로 땀이 젖었다.

그런데 고속도로를 타고 갑자기 속도를 내려고 하자

차는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고 경고등이 들어오니. 더 이상 운전을 할 수가 없었다.

서둘러 비상등을 켜고 갓길에 세워두고 있으니

어디선가 사이렌이 들렸다. 바로 내차를 보고 달려온

레카(토우) 차량이었다. 다행히도 나의 떨리고 어리숙한 영어에도 귀를 쫑긋하고 도와주려고 엔진과 변속기들을 살펴봐 주었다.

내가 오늘은 바로 앞에 집이 있기에 엔진을 조금만

식혔다가 천천히 집으로 가려고 한다고 하자 언제든

필요하면 도로위치 번호를 보고 연락하라며 내 차가 도로에서 빠져나갈 때까지 트래픽 콘(traffic cone)을

세워 주셨다.

2년 동안 2대의 차량을 보내야 하는 아픈 경험이었다.

이제는 그만. 정말 울고 싶어 졌다.

더 이상은 너무 힘들다.라고 느낄 무렵 집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것도 다 똑같은 것이 아니고

큰 것들은 안되고 작은 전력들은 깜박거렸다.

이게 무슨 일인가? 그 가운데도 딱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의 냉장고와 물은 나왔다.

아무리 두꺼비집을 만져도 방법이 없어 한밤중에

일을 끝내고 오신 예전에 전기공의 일을 하신 한국분의 도움으로 원인을 알아냈다.

바로 외부 어떤 물체로 인해 220 볼트가 나가고 110 볼트만 들어온다고 하셨다. 이것은 개인이 할 수 없고

전기를 공급해 주는 듀크에너지에 연락을 하라고

하셨다. 5분 정도의 확인으로 150불의 출장비를 달라는 것만 빼고는 정말 좋았는데….

이곳의 룰이라니 어쩌랴…


그래서 그다음 날 듀크에너지에서 오고 또 다른

기술자가 필요해서 우리 단지를 관리하는 HOA의

전기기술자(Electrician)가 와서 문제의 원인인

화단의 나무뿌리를 제거하였다.

3일여 만의 씻을 수 있는 생존의 기쁨을 느꼈다.

참 올 한 해의 거한 신고식이었다.

이 문제 속에서 정말 슬펐던 것은 어른으로써 나의

언어의 한계 속에서 전혀 역할을 할 수 없음을

느끼는 나 자신의 부끄러움이었고

그렇기에 그 결핍 속에서 가족이 하나가 되어

누구나 할 것 없이 나의 일이라 생각하고

머리를 맞대고 생각을 모아가는

아이들의 어른스러움이었다.


언제 이만큼이나 자랐을까?

우리에게도 함께하는 시간이 영원하지 않고

내가 항상 뒷바라지로 주는 것만 같은 이 과정도

소중하고 감사함으로 느끼지 못한다면….

이미 내가 그 사랑을 받은 존재이기에

이렇게나 부족하고 나약한 나에게

그 받은 사랑을 조금이나마 흘려서

나눠보게 하는 것이겠지…..


길고도 힘든 터널을 지나 한 텀 더 여물어져

간 것 같은 우리에게 이 봄에 단비와 같은 이웃이

문을 살짝 두드린다.


남편이 애틀랜타 출장 갔다 오면서 조금밖에

사 오지 못했다며 제주산 광어와 족발을 빼꼼히

내민다. 오히려 넉넉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하나님, 이렇게 따뜻한 이웃들의 사랑을

다 어찌 갚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