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녁 종로께에서 시작된 술자리는 밤이 깊어도 끝날 줄 모르고 을지로로 또 논현동으로 그렇게 강을 넘나들며 술 한잔 한잔 얹고 또 얹다가 그래도 술이 모자랐는지 누군가의 호기로 인해 새벽 3시가 넘어 알코올에 재여진 몸을 이끌고 찾았던 노량진 수산시장…
지난 밤 늦은 시간까지 수많은 사람들과 그 수만큼의 사연들로 북적였을 시장은 상인들도 손님들도 철수한 파장이라 어둡고 한산했다.
평상시였으면 문에 달라붙어 서로 자신의 가게로 들이려는 이모들의 호객행위로 이동조차 쉽지 않았을 텐데 이 시간의 시장을 찾은 취객들은 아무래도 달가운 손님이 아닐 터…
호객은커녕 몇 안 되는 불 켜진 식당들도 대부분 비어있었고 졸음을 참느라 연신 하품 중인 이모들의 심드렁한 표정만이 우리를 맞고 있었다. 그리고 그 표정에는 모두 한마음으로 저 이상한 술꾼들의 마지막 술자리가 우리 가게가 아니었으면 하는 염원이 담겨 있는 듯해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렇게 환영받지 못하는 손님이라니…풉~’
그래도 그나마 표정이 나은 이모를 찾아 평소엔 와보지 못했던 외진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술이 두어 순배 더 돌고 취기에 잦아진 요의가 느껴져 화장실을 찾아 가게를 나섰다.
낯선 건물의 지하에 자리 잡은 화장실에서 시원스레 볼일을 마치고 나오는데 어디선가 노래자락이 흘러나온다. 오래된 축음기 소리마냥 앵앵 거리는 소리에 이끌려 들어온 방향과 반대편 복도로 들어서자 노래는 좀 더 뚜렷이 들려온다.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 백설희 할매의 ‘봄날은 간다.‘ 의 2절이다..
그래 봄이었다… 흐드러지게 피어 대어 밤이 밤인 줄도 모르게 밝게 비쳐주던 벚꽃들도 져내리고 그렇게 노래 가사처럼 가버리는 그 짧고 찬연했던 봄날의 끝자락이 노래를 통해 전해졌다.
그리고 바닥에 흘러내리는 붉은 핏물과 노랫소리를 따라가다 도착한 곳…
구슬픈 노래자락에 붉은 핏물을 실어 보내던 원천…
아뿔싸 나에게는 아직 마무리 짓지 못한 전날이 누군가에게는 이제 막 시작하는 새날이었다.
신성한 작업장을 침범한 한량에게 꽂히는 날카로운 시선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빠져나온다
그리고 돌아 나오는 길에 손질을 마친 채 얌전히 상품이 되어 있는 녀석들..
상품이 되기 위해 대기 중인 녀석들과 이미 망가져 상품조차 될 수 없어 격리된 녀석에게 뜬금없이 나 자신이 투영되는 통에 괜스레 울컥한다.
그러나 감상도 잠시 화장실에 빠져 죽었냐는 일행의 전화에 부랴부랴 남겨진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식당으로 돌아가는 그 길목에는 부지런한 사람들의 새로운 날이 시작되고 있었다..
어느 봄날 끝자락의 새벽녘..
취했으나 말짱하고 말짱하나 비틀거렸던 한량의 화장실 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