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지켜준 ‘모든’ 시민들에게
호텔 라운지 같은 쾌적한 병원의 모습, 운이 좋게 창가자리에 병실을 구했다. 지난번보다 더 넓고 창문 밖풍경이 좋아서 처음에는 고급 여행을 온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자유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 매일 정해진 밥만 먹을 수 있고 매일 마시던 커피는 못 먹고. 아파서 누워만 있어야 하니 속은 점점 더 더부룩. 밥 먹는 게 고역이라고 느껴지는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자유를 빼앗긴다는 건 빼앗겨보면 제대로 알게 된다. 밥 메뉴 선택의 자유, 좋아하는 사람들과 수다할 수 있는 자유, 먹고 싶은 간식을 먹을 수 있는 자유, 운동할 수 있는 자유, 앉아서 생산적인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자유, 밖에 나가서 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자유가 없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요양원에 들어가 살게 될 나의 노년. 군대에 징집되어 시간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싶은 장애인들의 이동권투쟁도 마찬가지. 그리고 공장식 케이지에 갇혀 있는 동물들. 나는 조만간 퇴원을 하겠지만 기약 없는 그들의 탈시설 욕망은 클 수밖에 없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포고령이 그대로 유지되었더라면 온 국민이 자유를 다시 한번 더 빼앗겼을 테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러 온다는 한강의 말처럼 자유를 빼앗겨본 자들이 자유를 빼앗길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러 온다. 민주화 투쟁을 했던 중년이 청년을 구하고 여성들이 남성을 구하고 성소수자들이 이성애자들을 보살핀다. 장애인들이 탄핵 집회에 오고 동자동 주민들이 떡을 들고 우리를 구하러 온다. 농민들 곁에 젊은이들이 함께 밤을 새운다. 백남기 님을 구하지 못했던 기억이 다시 우리를 구한다.
서로가 서로를 구하는 데에는 편이 없다. 뺏겨보지 못한 사람들아. 구함을 받았으니 잘 기억하자. 추운 밤거리에서 덜덜 떨며 우리를 구해준 이들은 편 가르지 않고 모든 생명을 구한 거다. 대신 우리가 진 빚은 다시 우리가 그들을 구하는데 쓰면 된다. 배신 때리기 없기. 딴 말하기 없기. 모른척하기 없기. 의리 지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