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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한 인간들 대처법

영화 <얼굴>을 보고 나서

by 라라라


*스포일러 있음.












외모 지상주의


영화 제목에서도 영화 내내 나오지 않는 영희의 얼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얼굴이 메인인 이야기다. 비어있는 영정사진은 너무나 낯설어서 계속 물음표를 가지게 한다. 등장인물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희에 대해 "못생겼어, 괴물 같아."라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다들 같은 반응인 것이 무섭기도 했고 가짜 같기도 했다. 못생겼으니 그런 꼴을 당해도 싸다고 한다. 못생기면 핍박을 받아도 폭력을 받아도 싸다.


영화의 영어 제목이 'The ugly'이다. 못생김이라는 것은 뭘까? 못생겼다고 하는 영희가 못생긴 걸까, 못생겼다고 말하는 무례한 인간들이 못생긴 걸까.


키와 외모에 집착하는 대한민국. 오늘 예쁘다는 칭찬과 오늘 외모가 어떻다고 얘기하는 시시껄렁한 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들. 무작위로 오고 가는 외모 평가 속에 진짜 무례하다 생각한다.




무례한 인간들


이 영화에서는 무례한 인간들이 가득하다.


거절을 거절로 받아들이지 않고 튕겨내는 피디. 자신이 원하는 대로만 상대방의 말들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사람. 인터뷰를 한다는 핑계로 백사장의 집 대문을 허락 없이 열고 방문도 허락 없이 열며 방 안에 허락 없이 들어가 앉는 오만함.


못생기면 천대받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못생긴 게 집안을 풍비박산 냈으니 집 나간 아이를 구해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영희의 가족들.


영희를 똥걸레라고 회상하며 웃고 떠드는 직장 동료들. 똥걸레라는 말도 영희의 실수(또는 미련함)로 비롯된 것이고, 괴물같이 생긴 탓도 영희의 탓이니 자기들은 그런 말을 해도 된다는 착각. 또한 모두가 그를 똥걸레라 부르니 자기도 불러도 된다는 비겁함.


너는 나를 이해해야 해, 너는 내 돈에 빌붙어 사는 기생충이니까. 네가 내 자식일지라도.



자신의 살인을 정당했고 잘한 일이었다고 착각하는 영규의 무례함. 아들이 자신의 돈에 빌붙어 살고 있으니 심지어 '네 엄마를 죽인' 내 살인을 이해해야 한다는 무례함.



그리고 엄마의 용기와 진심을 알았음에도 아빠의 돈에 기대어 사는 삶을 택한 아들의 무례함.



이 모든 무례함 속에서 영희만이 불의에 용기를 내고 진심으로 세상을 대하는 투사다. (비록 진숙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고 성폭력 피해 상황을 세상에 알리긴 했지만.)



영희는 아빠의 부정과 사장의 폭력에 대항하고 말을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그런 용기를 준 남편을 고마워한다. 자신을 처음으로 똥걸레나 괴물이 아닌 인간으로 대해준 영규 덕분에 더욱 용기가 생겼다고 말한다. 결국 세상 사람들이 용기를 내려면 서로를 다른 잣대 없이 그저 인간으로만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외모, 학력, 돈 잣대가 아닌 그냥 한 존재로. 영규도 영희 덕분에 따뜻한 삶을 살아가다가, 다시 인간들의 잣대에 휘둘려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된다.






비뚤어진 세계관


시각장애인 도장 장인 임영규는 이유도, 누가 때리는지도 모르는 채로 평생 맞아왔다. 세상으로부터 학대를 받아온 거다. 그는 시각 장애가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차별 어린 시선이 느껴진다고 했다. 그러던 그가 영희를 만나고 그녀가 베푼 차별 없고 따뜻한 태도에 호감을 느낀다. 이웃이 "절세미녀를 얻고 좋겠다."라고 말하자 그는 더욱 기뻐한다. 영희와 결혼 후 우연히 친구로부터 "사실 너의 부인은 못생겼다."는 말을 듣고 그는 분노와 배신감에 빠져든다. 부인 또한 남들처럼 자신을 놀리고 이용해 왔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더 이상 놀림 당하기 싫었던 그는 못생긴 부인을 죽임으로써 놀림당할 수 있는 원인을 제거하며 자신의 인생을 깨끗하게 개척한다.


자신을 진심으로 대해준 부인마저 믿지 못하고 분노하는 비뚤어진 세계관. 자신이 받은 폭력에 대한 분노가, 가장 약하고 자기가 부리기 좋은 부인을 향한다. '자신을 혐오하던 시선'에 대한 보복이 '자기가 이제는 믿지 못하고 혐오하게 된 사람'으로 향한다. 왜 분노의 방향이 일그러져서 아무 잘못도 없는 영희에게로 향하는 거냐.


영희가 영규에게 사랑에 빠지기 전(또는 결혼하기 전에) "사실 저는 못생겼어요."라는 고백을 했었어야 한다는 거냐.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영희도 영규를 놀려먹은 것이 된 거냐. 만약 놀려먹은 게 맞다면 그렇다면 죽여도 되는 거냐. 죽이지 않으면 영규 너의 인생은 '못생긴 것'으로 '더럽혀진' 것이냐. 너에게 장애가 있어서 '더럽다'라고 차별을 가하던 세상 사람들의 말이 맞다는 거냐.


영규는 성인이 된 자식에게 자신의 살인을 고백하며 자신은 죄가 없다 말한다. 자신은 '아름다움을 만드는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고, 못생기고 더러운 것은 멸시받거나 심지어 죽임을 당해도 마땅하다고 한다. 자신의 살인은 이해받아야 하고 정당하며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 부인을 죽임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구원했다는 착각과 과대망상. '대의'를 위해서 폭력은 정당하다고 하는 극우 세력과 신자유주의자들의 말들과 일치한다.



최근에 읽었던 '내란, 대중 혐오, 법치'(피에르 다르도 외, 원더박스)라는 책에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신념(개인의 자유가 최상위의 가치)을 지키기 위해서는 군사 쿠데타도 폭력도 어쩔 수 없다, 정당하단다. 왜 그렇게 다들 어쩔 수 없다, 정당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변명들 뿐일까. 일이 일어난 순서대로 따져보면 될 텐데. 또는 역순으로 풀다 보면 해답이 나올 텐데. 수학 방정식 같은 생각을 좀 하면 좋겠는데. 영규도 극우 세력들도 신자유주의자들도 논리에 맞지 않는 말을 무례하게 주장한다.



"아유, 걔가 못생겨서 그래. 아유, 걔가 미련해서 똥을 싸버렸다고."라고 할게 아니라 "화장실 갈 시간을 충분히 주세요! 그리고 화장실을 더 만들어 주세요!" 하거나 "영희가 착하고 일을 얼마나 잘했다고. 사장이 벌을 받아야지."라고 말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얼굴이 못생겼다니 죽여야겠군."이 아니라 "얼굴이 못생겼어도 괜찮아. 나를 존중하고 사랑해 주는 소중한 내 부인인걸."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최근에 개발해 낸 정신승리 방법


얼마 전 금강에 다녀왔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 강물은 쉬지 않고 계속 흐른다. 폭우로 금강의 물 색은 흙탕물이었다.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 보니 강물은 언제 그랬냐는 듯 흙들이 모두 바닥에 가라앉아서 깨끗했다. 불었던 물도 많이 빠져나갔다. 콸콸 흐르던 물의 속도도 고요하게 바뀌었다. 우리가 싸우면 세상이 얼마간은 흙탕물이 되어도 시간이 지나면 그 모든 방향이 맞지 않는 말들도 다 빠져나가고 없어지겠지. 시간은 가고 있고 역사는 흐르고 있으니까. 또한 지구는 조금씩 태양으로 가까이 가고 있고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으니까. 우리가 죽고 난 뒤에도 강물은 흐르다가 언젠가는 태양과 지구가 합쳐져 재폭발이 일어날 테니까. 어리석은 주장들은 우리의 기분을 잡치지만, 다행인 건 너도 나도 유한한 존재니까.




무례한 사람들을 만날수록 경험치는 늘어간다. 나도 이제 어느덧 그들에 대한 분노를 조금은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진짜 이해가 안 가고 왜 저러나 싶은 사람들을 보며 "(저러지 않는) 나는 진짜 멋진 사람이었어."라고 스스로에게 다독인다. 같이 분노하고 있는 친구에게 "우린 진짜 멋진 것 같아." 말한다. 그것이 정신 승리일지라도. 내 안의 평화를 유지하며 너의 어리석음에 꾸준히 대항할 힘과 여유가 있어야 하니까. 영희처럼 용기를 내야 하니까. 자, 일단은 정신 승리 계속 훈련합시다. 그리고 멋진 (내 기준) 페미니즘 영화를 만들어준 연상호 감독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나는 절대 저런 행동 안 하는데, 생각해 보면 나 좀 되게 멋진 듯?!

그리고 이 글을 끝까지 읽고 있는 당신도, 아마 좀 되게 멋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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