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온전히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기
언제부턴가 ‘나’로 온전히 살아가는 것이 어려워졌다. 사회적 기대치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은 환경이다. 가장 작은 사회라 일컫는 가정에서 '김씨의 첫째 딸'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님이나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게 된다. 어릴적 나라는 아이도 남들과 마찬가지로 스폰지처럼 사회 모든 모습을 흡수했다. 그 때를 떠올려보면, 잘 하는 것을 통해 사랑받기 위해 살아오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한 장면. '어쩜 너는 이렇게 만두를 예쁘게 빚니, 천상 여자네. 시집가서 예쁜 딸 낳겠어!'라는 말도 칭찬인 줄 알고 살던 때가 있었다. 지금의 나는 물론, 여전히 만두를 예쁘게 빚을 줄 알지만 시집도 가지 않았고(시집을 간다는 표현도 굉장히 수동적이고 도구같은 느낌이 든다. 그냥 배우자나 동반자를 만났다고 하면 안될까?), 당연히 딸도 없다. 여전히 나는 김씨의 딸인것 외에는 다른 가정을 꾸리거나 또다른 사회적 역할을 부여받지, 아니 갖지 않았다. 하지만 나 역시 인간으로서 사회생활을 충실히 하며 경제활동을 하며 스스로를 책임지고 살고있다. 그리고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 동안 이게 무엇인지도 모르다가 삶이 무너진 기간이 있었다. 정신을 돌볼 겨를 없이, 와르르 무너지듯 그냥 갑자기 한 번에 찾아왔다. '뭐가 문제였을까? 난 변함없이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왜, 아니, 이게 무슨 일이지? 그냥 내가 약해진걸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나를 자책하기도 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약간 멀리서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제서야 깨달았다. 내가 나를 계속 학대하고 있었구나. 이 세상에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나를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추고 구겨 넣느라 이렇게 마음 고생을 하면서도 애써 괜찮은 척 남들도 다 겪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외면해 왔구나. 남들과 다르지만 완만하게 살고 싶던 나는 언제 이렇게 파도처럼 밀려오는 외부 자극에 깎이고 깎여 지층이 드러난 암벽처럼 되어버린 건지 그 원점으로 돌아가서 내가 살아온 여러 상황을 다시 마주해 보았다. 파도가 아닌 호수처럼 잔잔했던 그 때 누군가가 던진 돌들로 작고 큰 파장이 중첩되지 못하고 파도를 만들었구나. 결국 그 파도가 나를 삼켜버렸구나. 생각보다 내가 이렇게 작은 돌들에 영향 받고 있었구나. 나에게 미안해졌다.
나이가 들 수록 겁이 많아진다는 얘기가 이제 누군가가 한 말이 아닌 내가 한 말 처럼 인식된다. 똑같은 상황을 마주했을때, 20대의 나보다 지금의 나는 겁이 많아졌다. 미움받을 용기도, 적당히 무시할 수 있는 여유도, 내가 괜찮으니 상관 안할 수 있는 뚝심도 어디간지 사라진 듯 하다. 거리를 두고있다고 생각한 것들도 어쩌면 선을 긋는 동안 내가 나를 한정해 버린건 아닐지, 어쩌면 그러면서 스스로가 만든게 아닌 외부에서 온 자극들로부터 멀리하려는 그 틀을 만들면서 범위를 제한해 오며 살아온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20대의 너는 정말 뭘 모르고 용감했구나'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다고 지금 내가 용감하지 못할 이유는 없는데 이렇게 저렇게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곳에 선을 긋고 벽을 치며 살아오다 보니 높게 쌓아올린 보이지 않는 벽에 둘러쌓인 내가 보였다. 아, 자기 방어를 너무 열심히 했구나. 잘 살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나에게 '잘 사는 것'이 결국은 피하고자 했던 다른 사람들이 만든 틀을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무너뜨리지 못한 채 갇혀 지냈던 것이다.
난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나 스스로가 다시 될 수 있을까?
다양성, DNA, 자기만의 삶. 태어난 이상, 나는 나만의 삶을 사는 것 만이 삶을 충실하게 살게 되는 의미있는 삶이 될 것이다. 의미를 억지로 만들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태어난 이상 나는 나의 삶에 책임이 있고 그 책임을 다 하는 것이 나와 세상에 존재만으로도 의미가 있게 만들어 준다. 스스로의 존재에 감사하며 살아야한다는걸 알면서, 잠깐 잊고 지내 망가진 나에게로 부터 다시 배운다. 나는 나처럼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