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위탁

불편함이 주는 편안함

by 레이지썬데이

편리함을 좇다보면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언제부터 편리함이 주는 부가적인 것들에 당연함을 느낀걸까? 왜 편리하게 살아야 하지?’. 게으름을 이겨내려는 방법이 편리함이 될 수도 있고 그저 불편함이 싫어서 일 수도 있다. 또는 더 큰 가치를 만들기 위해 효율을 찾고자 하는 마음일 수도 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위탁하고 살아간다. 아파트 공화국이라 일컫는 한국 사회에서 대표적 주거의 형태도 마찬가지다. 주차, 시설관리, 조경 및 환경 정리, 치안 등 여러가지를 아파트라는 하나의 객체에 맡겨두고 산다. 어쩌면 그런 ‘당연한 위탁’에서 오는 편리함을 거부할 이유는 없지만 그로 인해 인생의 꽤 많은 부분도 같이 맡겨진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는 것 같다. 내가 매일 마주하는 공간도 결국은 각자의 가치관에 맞는(또는 선택지에서 꽤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최종의 한 두 후보를 골라 낸) 선택이다. 경제 논리에 의해 아파트가 주택보다 가치가 높게 책정되는 이유도 이런 것들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소위 편의 공간과 서비스를 공공주택이라는 이름 하에 디폴트로 공유하는 것이다(공유 경제라 불릴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조합이나 입주민 회의를 가보면 무슨 말인지 금방 이해된다). 어쩌다보니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자연스러운 것을 넘어 점점 더 큰 시장가치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잠시 생각해보자. 나는 그 시장 가치에 동의하는가?


꼭 아파트가 아니어도 누릴 수 있는 공간은 많다. 아파트가 갖고 싶은 이유? 어릴 적 1등을 하고 싶은 이유와 같은 것은 아닐까.


필자는 아파트의 삶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서비스의 PO로 일한 경험이 있다. 단지에 들어서면 아파트는 내 차를 기억하고 주차장 문을 열어준다. 주차를 하고 뚜벅뚜벅 걸어 나의 집으로 가는 공동현관 앞을 지나면 나를 알아보고 손 하나 대지 않고 문을 열어준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엘레베이터는 나에게 온다. 단지에 사는 이웃들과 중고 거래도 하고, 집에서 휘리릭 나와 운동도 하고, 아이들을 같이 키우며 모든 생활을 무리없이 해내는 하나의 마을을 만드는 일에 꽤나 즐거움을 느꼈다. 작고 큰 서비스가 추가되고 고도화 해나감에 따라 사용자에게 편리함과 심리스한 경험을 더해주었다. 사람들은 기꺼이 그 가치에 지불하며 서비스를 누렸다.


나 또한 거의 모든 생애를 아파트에서 보낸 아파트 키즈이다. 줄 곧 아파트가 아닌 곳에 살았던 적은 정말 어릴적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몇 년과 해외 거주할때의 경험이 다였던 것 같다. 거의 모든 학창시절을 아파트에서 보냈고, 이사를 가도 새로운 아파트에서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나의 청소년기에 가치관을 아파트에서 만들었고, 20대가 되어 성인으로 무르익어가는 기간에도 아파트에서 보냈다. 나를 형성하는 중요한 시기였다. 다만 ‘부모님의 집’이라는 인식이 다른 사람들보다 강했던 것 같다. 내가 결국 선택하고 지내는 공간은 아파트이기를 거부했다. 주택에 대한 로망일까? 아니 어쩌면 귀찮고 불편한 시간과 공간이 주는 이로움을 미리 인지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한창 투자할 가치가 있을 나이보다는 내가 나이들어 손 하나 까딱 하기 어려워 졌을 때 쯤엔 다시 아파트에 살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편리함이 주는 이익과 안도감을 모르는게 아니다. 여전히 ‘왜 편안함이 아닌 편리하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내 몸을 직접 움직여서 하나씩 만들고 고치고 유지하고 사는것이 진짜 쓸모가 아닐까? 앞에 언급했듯, 이것을 서비스로 만들면 사람들이 충분히 지불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충분히 가치를 만들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실로 스스로 공간을 유지하며 사는 것도 능력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지불하고 사용하는 서비스들을 대행이나 위탁하지 않고 스스로 행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여기서 오는 불편한 것들이 나에게 가치가 된다는 것은 딱히 부정할 이유가 없다. 패시브하게 경제적 이득이 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남들에게 잘보이도록 그럴싸한 것을 해야한다는 강박이 있다면 조금 시선을 돌려 작고 가볍고 기민함이 주는 매력을 알아보자. 자산도 사업도 집도 삶도 가벼우면 멀리 갈 수 있다.


편안함은 편리함과 다르다. 내가 무언가를 직접 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 줄 수 있는 편안함이고, 그로부터 내 가치와 삶의 모습이 우러나오기도 한다. 스스로가 모든걸 결정하고 직접 할 수 있는 환경이야 말로 나에게 최적인 삶으로 데려다 주기 때문이다. 필요에 의해 어쩔수 없이 하는 일들도 있을거다. 효율에 의해 또는 동시에 여러개를 할 수 없거나 기술이 없어서 누군가에게 잠시 위탁해야하는 일이 생길수 있다. ‘항상’이 아닌 ‘필요할 때 잠시’ 위탁하는 것이 디폴트가 되는 것이 삶은 안정적이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근본이다. 그리고 그 근본이 모여 나를 한층 더 성장시키고 ‘잘’ 살 수 있게 해준다. 오늘 지금부터라도 직접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면 위탁하지 않고 스스로 해보는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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