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었어, 오늘.

2026년을 당겨 쓰고 싶던 날들

by 레이지썬데이

작년 말쯤부터 부쩍 날짜를 잘못 쓰기 시작했다. ‘2026년 12월 2일’ 뭐 이런 식으로. 누군가가 ‘아니 미래에서 오셨어요? 2026년이라뇨’라고 웃었다. 아차차. 근데도 자꾸만 연도를 앞서 적었다.


진짜 몰랐다. 타인의 발견으로 다시 수정한 날짜.


아직도 2025년이라고? 마음은 벌써 2026년에 가 있었다. 왠지 지금(2025년) 보다 나아져 있고, 활기도 있고, 신나는 일도 겪으며 내실을 다지고 있을 내가 보였다.


바람이다. 2025년은 예상치 못한 변수는 무한정 찾아왔다. 아이러니하게도 변화 없는 날들이 이어졌고, 그 안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았다. 당장 생계를 위협하는 어려움은 아니었지만, A to Z까지 그려보았던 시나리오가 말 그대로 ‘박살’ 나버린 생활은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나를 빠르게 소모시켰다. 삶에 너무 의미를 찾으려다보면 오히려 병이 될 거라지만, 이건 의미의 문제가 아니었다. 삶 자체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감각에 더 가까웠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와 어긋난 상황들, 설명되지 않는 목표를 좇으라며 채찍질을 하던 사람들, 도움은커녕 자신의 빌런 행위를 영웅담 삼아 하던 이들, 그리고 배가 침몰하기 직전까지 구명보트를 내리지 않고 방향키만 이리저리 흔들던 사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생존 위협 속에 있었다.


벗어나는 것만이 답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 배에서 내려 수영 쳐 도망가봤자 식생마저 포기한 무인도 밖에 갈 수 없는 상황에서 쉽사리 배에서 내릴 수 없었다. 멀미로 정신을 차릴 수 없었을뿐더러, 지금 상황에서 믿을 수밖에 없는 저 키잡이는 이 방향이 맞다고 닥치고 돛을 내리라고 소리를 칠 뿐이었다.




2025년이 끝날 때 즈음 회고를 해보려는데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되짚어 볼수록 잊고 싶은 기억만 떠오를 뿐 무의미하고 생존에 급급했던 흔적 투성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내가 한 해를 어떻게 보내고 싶었는지는 여전히 생존 박스 안에 담겨있었다. 그 박스는 2026년으로 고스란히 옮겨졌다. 목표의 본질은 그대로 둔 채, 지금의 나에게 맞게 다시 각색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오지도 않은 미래의 날짜를 써가며 2026년을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보고 싶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만났다.


나를 포함해 각자의 이유로 2025년을 잘 버텨낸 모든 이들이 2026년에는 다음 버전으로 도약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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