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이라는 파도를 타는 연습

겁 한 방울이 파장을 일으킬 때

by 레이지썬데이

아무 일도 없는데 몸이 먼저 반응할 때가 있다. 심장이 갑자기 빨라지고, 숨이 얕아지며, 이유 없이 울컥 몸이 아프다. 위험한 일이 벌어진 것도 아닌데, 마치 곧 큰일이 날 것처럼 몸은 나를 앞서 달린다. 알 수 없지만, 동시에 알 것 같은 감각. 이건 내가 몇 번이나 겪어온 익숙한 시작이다.


세상에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그냥’ 존재하고 있었음을 깨달았을 때, 내가 진실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무너졌을 때, 무엇보다 나라는 존재의 이유가 흐릿해졌을 때 나는 크게 흔들렸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각자의 자리에서 고유하게 존재하며 서로의 영향 범위 안에서만 메커니즘을 주고받는다. 강한 연결이 약한 영향으로 바뀌는 순간, 외로움과 동시에 자립의 형상이 또렷해진다.


영원한 것은 없고, 시간을 논하는 동안에도 그 시간은 지나가버린다. 그저 지나가는 것임에도 나는 끝없이 이어지는 두려움의 열차, 다시는 내리지 못할 것 같은 그 열차에 탑승하여 출발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초조해진다. 출발하기 직전까지 고민한다. 당장 내리면 모든 것이 끝나지만 그것은 곧 나 역시 그 자리에서 멈춰버린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된다. 주위를 둘러본다. 아무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느끼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내 안에서만 오롯이 공명이 일어날 뿐이다.




마음속 작은 점에서 시작한 울림이 온몸으로 퍼져나가 몸이 파르르 떨린다. 세포 하나하나가 반응하며 이미 시작된 그 파장의 에너지가 0이 될 때까지 가능한 멀리, 오래 치닫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파장을 온전히 느끼며 몸 구석구석 어디까지 떨림이 전달되고 있는지 바라보는 것과 또 다른 점에서 파장을 일으켜 중첩을 만들어 상쇄시키는 것뿐이다. 선택의 시간이 올 대 까지 계속해서 진동은 퍼져나가고 있다. 어느 시점에서 증폭되기 시작할 걸 알기에 더는 선택을 미룰 수가 없다. 선택한다. 그냥 이 물결을 맞이하고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그렇게 온몸을 통과한 진동은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오직 느낌만을 전달한 채 지나쳐간다. 그 이후로 나는 이게 무엇인지 인지할 수 있게 된다. 또다시 한 점으로부터 신호가 오면 ‘아, 또 이 파도가 나를 당분간 잠식하겠구나’하는 해석이 따라온다. 한 번 떨린 몸은 그다음에도 여러 차례 반복해도 똑같이 낯설다. 매번 같지만 다른 물결을 그린다. 그날의 상태에 따라 작은 물방울이 남긴 은은한 일렁임이 될 때도 있고 선박을 집어삼킬듯한 해일이 되기도 한다. 한 방울의 물방울이 없이도 파도치듯 정신없이 강타하고 지나가기도 한다. 이 작은 자극이 나를 겁준다. 겁주는 걸 알면서도 겁을 먹는다. 몸이 기억한다. 이성적으로는 이해하지만 생각처럼 중첩을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다. 잘 움직이지 않는다. 무의식에서 시작한 현상을 의식으로 잠재우기에는 너무도 큰 에너지가 필요하고 내가 조절할 수 없는 종류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하다.


파도는 잔잔한데 해안선을 따라 무섭게 파도가 모래를 쓸고 가던 날


언제 그 잔인한 물방울이 떨어질지 바라보며 예측 가능한 상태가 온다. 그럼 어김없이 그 예측대로 일이 벌어진다. 어쩔 수 없지 하고 포기하다가도 때론 주체할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오기도 한다. 제발 그만하라고.




얼마나 무엇을 참은 걸까? 제법 나답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상상하는 이상적인 내 모습과 실제 내 모습이 너무 충돌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 속은 언제쯤 평화의 시기를 마주할 수 있을까?


“그거, 별일 아니에요. 죽을 것 같아도 마음이 그런 거거든요. 오래 참아서 그래요. 겁주는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 한마디가 중첩을 만들어 주었다. 신기하다. 스스로 그렇게 스펠을 외울 때는 아무 반응이 없었는데 타인의 언어로 들으니 이게 뭐라고 위안이 됐다.


그래서 이게 진짜 겁주는 거였구나 하고 다시 알게 된다. 그래. 겁나는 거, 겁 밖에 뭐 있겠어. 겁나도 뭐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실제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거 아니까.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게 되니 마음이 안정된다. 마음의 방파제를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본다. 가장 파도를 잠재울 수 있는 방파제가 무엇일지 여러 방법을 도모해 본다. 그렇게 나는 그 두려움을 한 발씩 멀리 내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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