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견디는 존재의 방식
한 시간 이동하는 것도 힘들어하던 내가 이제쯤 괜찮아졌을까? 나는 외딴곳에서 혼자 괜찮을까? 한 달의 시간을 두고 예약해 둔 내 나름의 극복 여정이 시작됐다. 떨리는 마음으로 김포에 도착했고, 여유 있게 수속 후 제주행 비행기를 탑승했다. 기체에서 나는 소리가 시끄러웠지만, 생각보다 괴롭게 하진 않았다. 옆자리엔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손주와 함께 비행기를 탄 할머니가 계셨다. 괜히 나도 같이 가족여행을 가는 듯한 마음이 들어 알 수 없이 편안했다.
제주 공항에서 반가운 이를 만났다. 이틀은 제주로 떠나온 나의 요가선생님과 함께 했고, 3일째부터는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되도록이면 제주의 자연과 좋은 음식, 그리고 도시와 차단된 곳에서 생각 정리를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가고 싶은 마음에 고르고 고른 책을 읽고, 신호가 없는 산길을 따라 운전을 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펜을 들고 혼자만의 글을 썼다. 피하고 싶었지만 마주해야 했던 문제들을 제주에서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하나씩 꺼내어 열어보았다.
내가 살아온 날들 중 최근의 꽤 많은 날들은 생각이 생각을 만들고 생각에 지배되기도 하는 날들이 많았다. 처절하게 떨쳐내 보려고 산책을 해보고 명상을 해봐도 계속 머무르던 생각들. 도구를 좀 활용해 보는 걸로 바꿔봤다. 집중하거나 몰입하면 생각을 할 수 없으니 스도쿠를 한 권을 다 풀고, 책을 몇 권씩 읽어보고, 요가를 하고 러닝을 했다. 몸이 힘들거나 머리를 쓰는 순간에는 잡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처럼, 몸이 건강해지면 이 괴로운 생각들이 조금은 줄어들고 무언가 뚜렷해지는 것들이 생기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냥 생각을 잠시 중단하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두었을 뿐, 사라지지는 않았다. 머릿속이 좀 더 조용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계속 들었다.
어느 날은 작정하고 생각을 끝까지 밀어붙여 봤다. 답을 찾으려는 게 아니었다. 생각도 하다 보면 고갈되어 더 이상 남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러나 생각이 흘러 사라지기는커녕, 비대해지더니 오히려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웠다. 아. 나란 인간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 걸까? 누군가가 솔루션을 주었으면 좋겠건만, 그건 불가능한 것이라는 걸 이미 인지하고 있는 나였다. 내가 찾아야지. 나 아니면 찾을 수 없는, 무얼 숨겨 놓은지도, 숨겨 놓은 게 보물인지도 알 수 없는 보물 찾기를 ‘어디에서’부터 할지 몰라하는 내 모습을 마주했다. 나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내가 바라보는 나는 이렇다. 치우는 것이 싫어서 비교적 재미있다고 느끼는 정리를 잘하고, 효율을 핑계로 꾀를 부릴 줄 알며, 오만하고, 불편한 것을 극도로 견디기 어려워하며, 좋은 사람이고 싶은 가짜 착함을 가지고 있고, 양손 가득 사탕을 쥔 아이처럼 무엇 하나 포기하기 싫은 욕심쟁이 이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단순해지고 싶은 미니멀리스트 추구미가 있는 복잡한 인간이다. 무엇을 내려놓을지, 왜 내려놓아야 되는지 생각하느라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나는 그렇게 생각도 쉽게 흘려보내지 못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이것도 나, 저것도 나. 여러 면 중 하나를 내려놓으려니 어려웠을 거다. 하지만 내려놓을 필요는 없었다. 부정할 수 없이 나는 항상 나로 살아왔는데 그 모습이 여러 개인걸 어쩌나. 정답이 없기에 그때그때 맞는 삶의 옷을 계절 변화에 맞춰 갈아입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이제 여러 스타일의 옷을 입고 시도했던 나에게, 가장 편하고 좋은 옷만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진심으로 마음에게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물어봤다. 그냥 느낌으로 ‘이 정도면 좋을 것 같아’라고 또 마음이 아닌 생각으로 얼버무렸다.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순수한 마음으로 얘기할 수 있나? 그리고 그게 순수한 마음과 닿도록 노력해 보았나? 일 하면서 항상 ‘의도’를 세워왔던 나의 방식이 삶의 영역까지 들어와 생각의 패턴을 바꾸어 버렸다는 걸 알게 됐다. 목적주의적 삶, 의미가 있는 삶, 내가 아닌 세상이 말하는 좋은 삶에 세뇌되어 나도 모르는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고 생각하고 ‘이것’이야 라고 말하고 있었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아 머리가 시끄럽고 복잡했던 시간이 계속 쌓여, 관성인지도 인식하지 못한 채 언제부턴가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 같아서 잔인하고 차갑고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이 밀려들었다.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창 밖으로 자연의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고 소리를 들으며 내가 애써 지금껏 생각해 본 것들을 자연에 녹여보는 작업을 했다.
제주의 변덕스러운 날씨를 따라갔다. 잠시도 서있기 힘든 통창을 깨 부술 것 같은 강풍, 눈이 펑펑 내려 세상이 하얗게 변한 날, 그러다가 구름 사이로 맑은 섬광이 비치는 따뜻한 햇살, 그 사이 녹아내린 눈으로 깨끗해지고 반짝이는 나뭇잎과 일렁이는 파도를 느끼며 시시각각 변화에 마음을 맡겼다. 변화는 본질이었다. 그제야 나의 변덕스럽고 다중적인 마음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이 발견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시간. 벌써 며칠 만에 마음에 틈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고, 세상에서 계속 작아지는 듯한 내 모습에서 점점 더 큰 세계로 뻗어나가고 더 깊게 진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느꼈다. 혼자 오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감정이다.
눈앞에 나무와 갈대들이 바람에 이끌려 살랑이며 흔들리다 멈추기도 한다.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결국 그들도 그 자리에 자신의 생명을 지키고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