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순찰
지긋지긋한 프로젝트가 마무리 되었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운 사실 마무리가 되어가는 과정중에 있다. 오후 2시까지 서류를 제출해야 마무리가 되는 것이지만, 지금은 아직 제출하기 이전이기 때문이다. 최종 입찰서를 제출해야 종료가 되는 미션이므로 아직은 진행 중인 것이 더 맞다.
이번 합사는 여러모로 힘들었다. 대외적으로는 일반적인 기술형 입찰과는 다르게 1차, 2차 대상자라는 것이 있고 그에 따른 평가방식도 상이하여 공사를 발주하는 발주기관도 갈피를 잡지 못하였고, 입찰에 참가하는 참가자 또한 불명확한 기준에 따라 좌지우지 되다보니 체력을 낭비하는 일이 잦았다.
대내적으로는 부서간 사전의 조율이 충분히 있지 않음으로서 발생하는 부서 이기주의로 인해 역할과 책임한계에 있어서 그레이존이 생겨 피곤한 일이 많았다. 일만 하기도 벅찬 상황에서 행정적인 일까지 처리해야하는 부분이 매우 힘들었다. 사실 세 명이서 해야 할 일들을 두 명이서 처리한다는 것이 매우 빠듯한 것이 자명했다. 그렇다면 일의 양 자체를 줄여야 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책임을 맡은 내가 조절을 하거나 보고 시 한계를 말씀드려야 했지만 듣는 사람(보직자)는 그렇지 않았다. “기왕이면” 더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보직자의 생각을 것이가. (나라도 그렇게 말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밑의 후배직원에게 많은 내용을 가르쳐 주지 못했던 점이 매우 크다. 일을 알려주고 처리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고, 중간의 행정업무 또한 많았기 때문에, 일의 양을 정확히 가늠하고 예상하여 분배 하는 역할에 있어서 다소 부족했던 부분이 사실이며 가장 크게 아쉬운 부분이다.
일을하면서 발생하는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후배 직원이 “꿔다놓운 보릿자루”같다는 말을 할 때에는 내가 너무 일을 나 혼자 다 하려고 했다는 생각에 많은 반성을 하게 되었다. 겉으로는 후배직원에게 일을 위임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중요한 업무애는 배제되었다는 느낌을 받았기에 그런말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새벽 한 시가 넘어가고 두시가 되어 잠을 자고, 다시 일곱시에 택시를 타고 출근을 하면서 택시에서 쪽잠을 자먀 출근하여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일을 시작하고, 점심시간에 충분한 휴식을 갖지도 못하고 화장실 가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에 18시간씩 일을 하는 일이 일주일 정도 지속될 때 즈음해서는 뒷목기 뻣뻣해지고 잠에 들었을 때 내일 무사히 일어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어느날 새벽볔 퇴근을 하는 택시 안에서 램프에서 내려오는 순찰차를 보았다. 그 순간 “순찰”이라는 단어가 스치듯 지나가다 머리에 걸렸다. 순찰은 사전적 의미로 “여러곳을 돌아 다니며 사정을 살핌”이다.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역 한달 동안 나는 내 마음과 주변을 살피지 못한듯하다. 특히나 내 마음의 순찰을 하지 못하였던 것이 가장크다. 일에 매몰되어 내 마음과 건강이 병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방방곳곳 찾아 사정을 살폈어야 했지만 그것이 부족했다. 물론 시간이 없기도 하였지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살핌에 실패한 꼴이 되었다. 일 또한 중요하지만 시간을 내어 나의 마음 순찰을 하지못한 점을 다시 상기하고, 아무리 바빠도 내 마음돌보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마음을 순찰하지 못하면 경계하여 살피는 경찰의 단계까지 가게될텐데, 이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연차가 쌓이면서 발생하는 부담감은 더 커지고 회사가 요구하는 사항도 더 많아지는 상황에서, 더 좋은 판단과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바빠짐으로부터 발생하는 성급한 판단을 지양하고자 ”마음 순찰“을 하는 것을 습관화, 루틴화 해야겠다.
두서없이 졸린 상태에서
김천으로 향하는 KTX 16호 5B자리에 앉아,
수주의 소식을 고대하며.
래리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