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이야기를 한 시간으로 줄이면
블로그를 하는 이유는 나중에 나의 이야기를 하나의 책으로 묶어 내기 위함이다. 그 일을 차근히 하루에 한 장씩이라도 쌓어두는 것이다. 일전에도 비슷한 비유를 한 적이 있던 것 같은데, 책은 하루에 한 장씩 넘기다 보면 금세 읽히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소리 없이 하루에 한 장씩 쌓이다 보니 어느새 인생이라는 두꺼운 책이 생기는 것과 같다는 논리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오늘은 아침부터 특이한 경험을 하였다. 노트북도 무겁고 해서 오늘은 택시를 타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내가 하고 있는 프로젝트 기간에는 출퇴근에 대한 택시비가 제공되는데 그것이 컸다. 내 돈이었으면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다.) 6분이나 걸리는 먼 곳에서 배차가 되었다. 아마도 카카오 택시에서 그렇게 배치를 한 것 같다. 앉아서 보니 서울 관악구 차량이었다.
“안녕하세요~ 식사동에서 식사는 하셨습니까?”
처음부터 범상치 않은 택시기사분이 걸렸구나라고 생각하였다. 그때 이후로부터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약 50분간의 그만의 토크쇼가 진행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경기도 고양시 식사동. 목적지는 서울시 종로구. 출근시간대라 막히는 길에서도 막히는 길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베테랑 운전실력에 쉴 새 없이 모터처럼 우다다다 달려 나오는 그 토크쇼는 도저히 6시 30분의 텐션이 아니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사실 내가 얘기한 것은 얼마 되지 않고 기사분이 대부분 말씀을 하셨다) 그 기사분의 삶의 일대기를 들었는데, 뒷 좌석에서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그 침방울들이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알갱이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 편으로는 그의 말이 수려하였고 재밌었기에 청량감도 느낀 것도 있다. 이야기가 잠시 샜는데, 남자들이 하는 이야기는 군대얘기, 군대 제대 이후의 일생, 술이야기가 대부분인데, 군대 이야기는 들어도 들어도 재밌다.
에피소드#1
본인은 체육고등학교를 나와서 군대를 경기도 북부 문산에 있는 부대에서 근무하였는데, 대대 체육대회에서 본인의 주특기를 통해 장기간 휴가를 나왔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주측기란 바로 “복싱”이다. 나도 점심시간마다 짬을 내어 복싱을 하는데, 그 이야기가 불씨처럼 번저서 그의 군시절을 소환했다. 인천에 OO체육관에서 호루라기를 불면서 원, 투, 원투, 원투쓰리를 하면서 운전대 앞에서 짧은 모션을 취했는데, 거짓은 아닌 것 같다. 앉아서 하는 거임에도 불구하고 프로의 티가 났는데, 대화도중 알고 보니 인천에서 프로테스트도 통과하였다고 한다. 자대에 배치되고 일주일도 안된 이병이었는데, 체육대회 일정상 다른 부대원과 합숙을 하게 되었고 대회날 이등병이라서 무엇도 모르고 열심히 시합해서 이겼는데, 알고 보니 타부대 병장이었다는 얘기부터 그 이후에 대대장이 장기간 휴가를 보내주었고, 때마침 그날이 5월 16일이었고, 이틀만 늦었으면 군대에서 대기발령에 힘들었을 것이란 얘기까지 들었다. 뭔가 시대극을 한편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에피소드#2
제대 이후에는. 마땅히 할 일이 없어서, 나이트클럽의 엠씨를 보았다. 20대부터 40대까지 열심히 일을 했다고 한다. 본인이 소속한 나이트클럽의 역사는 본인이 있고 없고의 차이다. 실제로 다른 곳에 스카우트되어 갈 때에 사장이 붙잡았고, 본인이 떠난 이후에 그 나이트클럽은 망했다고 전해 들었다는 영웅담도 들었다 그 후 그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전라도에서 정착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택시기사로 전향하고 지금까지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엠씨를 할 때에는 전문적인 프로덕션에서도 소속되어 근무를 했는데(지금으로 따지면 소속사가 될 것 같다) 그때 이영자와 함께 상대로 하는 직원이 있었는데, 이영자가 가리봉동에서 전유성을 만나면서 방송에 노출되며 급부상하였다는 뒷 이야기까지 해주었다.
58년생 아저씨가 세상을 살아오면서 느꼈던 것들을 거의 한 시간 동안에 쉼 없이 듣고 온 셈이다. 과거에 젖지 않고 택시운전을 하면서 본인이 가지 못할 많은 곳들을 돌아보는 좋은 직업이라 생각하고 본인의 직업을 많이 사랑하는 것을 느꼈고, 현재의 삶에 스트레스받지 않는 것으로 삶을 대하는 것에서 배울 점이 있었다 요새 회사가 많이 시끄러운데 그때마다 불평만 했던 것 같고, 현재의 삶에 감사함은 잠시 잊었던 것 같다. 오늘 아침의 생경한 경험이 당분간은 마음에 와닿아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