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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킴의 일상견적#022

갈림길은 새로운 시작

by LARRY

(초등학교부터 시작하면 너무 들이 길어지니..고등학교때부터 시작해보도록한다.)


나는 소위말하는 강남8학군 출신이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학업과 투자에 대한 관심이 많은 둘째 외삼촌 덕분에 그 유명한 “대치동 은마아파트”로 이사오게 되었다. 내가 이사를 오게된 시점은 96년 4월 24~27일 언저리인데, 내가 그렇게 기억을 잘 하는 이유는 이사로 인한 전학 절차가 원활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며칠간은 학교를 가지 않고 집에서 지냈던 시간들이 좋아서 였고, 첫 날 시험을 보았는데 그 떄 점수가 40점대 였던 것이 충격이라서 비교적 자세히 기억이 난다.. 이사 가기 전에는 대부분 만점을 상회하는 우수 학생이었고, 못하면 한두개 정도 틀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가히 충격적인 점수였기에 기억에 남았다. (예전에는 25문제가 일반적이고 각 4점으로 동일하게 편성되었다.)


그 이후로는 모든 면에서 위축되면서 살았던 것 같다. 먼저는 경제적인 부분이었다.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아이들이 입은 옷들은 죄다 비싼 명품이었고, 모두가 다 같은 “나이키”가 아이넜으며 리미디트 상품이라던지 그 당시 해외에서 직접 구매해서 들여와야 하는 희귀 아이템들을 입고 다녔던 것이다. 그에 반해 나는 나름대로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에서 파는 ‘나이키’와 ‘아디다스’매장에서 구입한 옷들을 입고, 조금 더 비싸다면 ‘캘빈클라인’정도가 되는 비싼 옷을 사입었던 것이다. 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비교적 아버지의 사업이 잘 되어가면서 모든 옷을 ‘랄프로렌 폴로’로 입기도 했지만, 그 당시 17세 친구들은 ‘루이비똥 백팩’과 ‘에르메스 지갑’을 가지고 다녔다.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그리고, 학습적인 부분이었다. 이또한 경제적인 부분과 연계되기도 하는데 그 당시 금액으로 40~50만원에 해당하는 “일반” 학원을 수십개씩 다녔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수준의 학생들이 하는 것이었고, 여가서 분류가 되는 것은 “일반”과외를 하는 것이냐, “고액/족집게”과외를 하느냐로 나뉘어 진다. 나는 모든 것에 해당하지도 않았고, “종합반”학원을 다니고, “독서실”에서 엉덩이로 공부하는 습관으로 따라 가는데 벅찬 시간을 보냈다. 그리하여 점차 더 위축되는 삶을 살았고 철도 빠르게 들었고, 나의 수준에 대해서 빠르게 자각하는 청소년기가 되었다.


그리하여 나의 청소년기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빠르게 철이 든 상태로 있었다. “애어른”이 딱 맞는 단어였다. (사실 그러한 여파라서 그런지 마흔이 가까워지는 나이에도 다른 또래 친구들보다는 십수년은 더 늙수구레 한 것 간다. 개인적인 생각.) 같은 학교, 같은 반에 있는다고 하더라도 사실 같은 사회를 경험하지는 않는다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학교라는 울타리가 벗어나는 순간 사회로 밀려나오게 되며 바로 직장을 구하거나 군대로 가는 친구, 소위 유명 대학에 진학하여 미래가 보장되는 의사 변호사가 보장되어 있는 친구들도 있었다. 부모님에게 물려받을 재산이나 직업이 있는 경우에는 경영수업을 받는 경우가 많았고, 그보다 더 많은 재산이 보장되는 친구는 개인이 하고 싶은 사업이나 공부를 하는 경향이 있었다.같은 반에 있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시간과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다행히도 나는 나쁜 방향으로 발전하지 않게 되었는데, (중간 중간 방향이 틀어질 수 도 있었지만) 그 가운데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던 것은 “책”과 “둘째 외삼촌”이었다. 나는 사실 “언어영역” 점수가 낮게 나와서 생각한만큼 좋은 대학으로 진학하지 못했는데, 그는 “나만의 주관적 해석“에 대한 부분이 가장 컷던 것 같다. 보편적, 일반적 해석을 다루어야 하는 언어영역에서 남들과 다르게 생각한 부분과 숲을 보지 못하고 아주 작은 부분에 집중하여 골똘히 생각하는 ”문제?“때문에 그러한 것 같다. 이야기가 잠시 샛지만, 그 중간중간에 나를 다잡아 준 것은 “책”과 “둘째 외삼촌”이었다.


첫째로, “책”을 통해서 간접경험을 했고, 주변의 도움을 받지 못하였기에 홀로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나의 시간에 편하게 찾을 수 있는 선생님으로 “책”을 구하게 되었다. 하지만, 몇 개 다니지 않는 학원에서 내주는 숙제를 처리하느라 읽을 수 있는 책은 한계가 있었다. 덕분에 다독과는 거리가 멀었고 아버지가 읽다 꽂아놓으신 책들을 우선 읽었다. 그 중에 하나가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었고, 시간관리에 대한 중요성에 따라서 “시간”에 대한 철학적인 책들과 자기계발 및 관리에 대한 서적을 10대 때부터 자주 접하게 되었다.


둘째로 “둘째 외삼촌”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당시 미군부대에서 보급과 관련된 보직으로서 근무 중이셨고 계급은 소령~중령정도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용산 미군기지에서 스테이크를 먹었던 일이었는데, 당시 6학년때 배웠던 영어로 원어민에게 스테이크 굽기를 주문했던 것이 생생히 기억에 남는다. 흑인 웨이터 형에게 “웰던 플리즈”가 나의 대사였다. 돌이켜보면 지금의 아웃백스테이크 하우스 같은 곳이었고, 동그란 쇼파에 외삼촌, 아버지, 어머니, 남동생, 그리고 나 이렇게 다섯이 둥글게 앉았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외삼촌은 그때부터 외국어의 중요성을 말씀해주셨고, 영어학원이 끝나면 본인의 집으로 나를 초대해주셔서 영어를 한시간 정도 배우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었다. 평상시에도 영어로 말하는 습관을 길으라라는 말씀이 13살에 해주셨는데, 그러한 영어로 말하려는 습관을 그때 심어준 것이 가장 감사하다. 그리하여 비교적 다른 건설엔니지어들에 비해서는 영어로 말하는데 있어서 불편하지 않은 정도가 되었다. 유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말을 꺼내거나 대화를 하는데 있어 두려움은 없는 것이 외삼촌으로 부터 받은 가장 큰 선물이다.


글을 쓰다보니 일대기가 되었는데, 이러한 각각의 방점들이 모여서 현재를 이룬다는 말을 한다. 커넥팅 닷(Connecting Dots)이라는데, 비연속적인 일들을 경험하고 그것들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잘 이어서 의미를 만들어 내면 현재에 내가 수행하는 일에 있어서 나를 정의하는 중요한 방점이 된다는 일반적인 논리이다. 나의 과거의 경험들이 현재를 만들었고, 각각의 갈림길에서 새로운 시작을 만들었고 현재의 내가 되었다. 고등학교 이야기에서부터 대학, 결혼, 출산과 육아까지 발전을 하면서 그 사이에 생략된 이야기들이 많지만 이들은 앞으로 차차 글을 쓰면서 채워나가기로 하겠다. 앞으로 더 많은 갈림길이 생길 것이다. 그 갈림길은 지금까지 살아온 것들의 종료지점이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하고 보다 힘찬 마음과 긍정적인 기운으로 맞이해야할 것이라고 다시 한 번 다짐한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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