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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Jul 07. 2023

귀신보다 더 무서운 접촉사고

10대 때는 귀신이 끔찍하게 무서웠다. 세상에서 제일 싫은 건 귀신 이야기였는데 피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할 때가 많았다. 별다른 예고 없이 괴담만 툭 던져놓고 도망가는 친구들 때문이다. 머리카락 귀신도 그런 식으로 알게 됐다.


"있잖아, 너 머리 감을 때 갑자기 머리카락이 많아진 거 같을 때 있었지?"

"음... 몰라"

"그거 머리카락 세는 귀신이 내려와서 너랑 같이 머리 감았던 거야"


뒤늦게 귀를 막아봐도 이미 글렀다. 불시에 들어버린 귀신 이야기 때문에 최대한 고개를 뒤로 젖혀서 머리를 감아야 했다. 도저히 구석구석 씻기지 않자 방법을 바꿔서 엄마를 욕실 앞에 세워두기로 한다. 문을 활짝 열고 머리를 감는 동안 엄마가 있어야 안심이 됐다. 왠지 머리숱이 늘어난 것 같으면 "엄마 엄마!" 다급하게 엄마를 찾았다. "으응~" 귀찮은지 시큰둥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야 이어서 샴푸질을 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느닷없이 화장실 괴담을 들려준 친척 언니가 사단이었다. 그 후로는 도저히 혼자서 화장실에 갈 수가 없었다. 볼일이 시급해지면 속옷에 지리는 한이 있어도 같이 가 줄 사람을 찾기 전에는 발을 못 뗐다. 집에 있는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동생, 아빠, 엄마까지 골고루 동행인 노릇을 해야 했다. 일을 보다가도 "아빠 아빠! 아직 거기 있지? 계속 말하고 있어!" 확인하지 않고서는 마음이 불안해서 볼일도 시원하게 못 봤다.


혼자서는 잠도 잘 못 잤다. 사방이 캄캄한 데서 눈을 꼭 감으면 귀신이 나타날까 봐 몹시 두려워서다. 중학교 때 드디어 내 방이 생긴 집으로 이사를 갔지만 잠은 늘 안방에서 엄마 아빠를 옆에 두고 잤다. 혼자 자야할 때면 밤새 불을 환하게 켜두고 잠을 청했다. 텅 빈 집에 혼자 있을 때면 숨어있던 귀신이 불쑥 나타날까 봐 온 집안에 불을 켜뒀다가 엄마한테 혼나기 일쑤였다. 너무 무서운 걸 어떡해.


이렇다 보니 내가 절대로 꾸고 싶지 않은 꿈은 당연히도 귀신이 나오는 종류의 것이었다. 어른들은 자다가 가위에 눌리기도 한다던데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기면 어쩌지? 떠올리기만 해도 오금이 저렸다. 가위눌리는 흉한 일은 제발 없었으면 하고 절실히 바랐다. 물론 반대로 지금의 나는 불을 켜고는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는 사람이다. 내가 언제부터 깜깜한 방에서도 두려움 없이 잘 수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얼마 전부터 반복해서 꾸는 악몽 때문에 잊고 있던 나의 옛날 공포가 떠올랐다. 예상했겠지만 귀신이 나온 꿈은 아니었다. 나의 악몽에는 더 이상 귀신이 등장하지 않는다. 더는 그 존재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로 안 믿냐면, 이제는 설령 눈앞에 귀신이 보인대도 대화까지 자신있는 수준이다. "그래서 자네는 어쩌다가 귀신이된거야"


그것보다 무서운 건 운전인 듯하다. 운전도 운전이지만 혹여나 생길지 모르는 사고가 두렵다. 그래서인지 자꾸만 브레이크가 고장 나서 앞 차를 박아버리는 꿈을 주기적으로 꾸고 있다. 꿈속에서도 온 힘을 다해 꾹 밟아보지만 결말은 늘 똑같다. 여지없이 앞차를 세차게 밀어버리고 나서야 꿈이 깬다. 덜 든 정신으로 '어떡해ㅠㅠ 결국 사고를 내버렸구나. 보험처리는 어떻게 하는 거지' 비몽사몽 하다가 정신이 또렷해진다.


운전을 제대로 시작하기 전에는 이런 종류의 악몽을 꾼 적이 없다. 꿈은 무의식이 드러나는 통로라는데. 그에 따르면 앞차를 박아버리는 게 가장 무서운 일이라는 건데, 그렇다면 또 말이 된다. 나는 실제로 접촉 사고가 몹시 두려운 사람이다. 귀신을 공포스러워한 것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다른 차를 긁어버릴까 봐 걱정스럽다. 혹여나 사고가 난다면 내 차는 찌그러진 채로 계속 타면 그만이라지만 상대의 차를 수리하는 비용은 어떻게 할 것이며 너무 죄송한 나머지 축 처진 내 모습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상상만으로도 괴롭다.


인간이 뻗칠 수 있는 상상력의 범위도 결국은 자신이 진짜라고 믿는 세계의 범위라는 걸 깨달았다. 터무니없는 귀신 이야기도 사실로 믿었기 때문에 귀신을 두려워했듯이 서툰 운전실력을 정확히 알기 때문에 교통사고가 무섭다. 비슷한 맥락으로 생뚱맞게 할머니로 변장한 늑대를 만나면 어떡하나, 그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길을 가다가 요정 할머니를 만나 드레스와 호박 마차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 같은 걸 품지도 않는다. 그것이 희망이든 절망이든 내가 그릴 수 있는 한계치는 결국 나의 진짜 희망이고 진짜 절망인 것이다. 반복되는 악몽 속에서 나는 그것을 알아차렸다.


그렇지만 다시 귀신을 무서워하고 싶다고 해서 저절로 귀신이 두려워지지 않을 거란 걸 안다. 접촉 사고 역시 언젠가는 하나도 무섭지 않은 날이 올 거란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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