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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Apr 06. 2022

전하지 못한 위로

친구 A, B, 나 우리 셋은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뒤로도 자주 만났다. 모두가 취업을 준비하던 시기 친구 B가 합격이라는 좋은 소식을 전해왔다. 월급은 적은 편이지만 분위기도 사람도 좋은 것 같다며 한껏 들떠 소식을 전했는데 얼마 뒤 사정이 생겨 퇴사했다고 또 한 번 소식을 전해왔다. 불과 얼마 전에 거한 축하를 했던 터라 갑자기 생긴 사정이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좋은 일이라면 좀 더 캐물어 자랑할만한 멍석을 깔아줄 수도 있었지만 나쁜 일은 그러기 힘든 법이다. 셋이서 만나던 우리 모임은 B가 다시 취업할 때까지 둘의 모임으로 축소되었다.


B의 퇴사 사유는 A와 단 둘이 만나던 날 그녀에게서 대신 전해 들었다. 얼마 전 B가 취업한 회사가 알고 보니 다단계였다고 어차피 곧 너에게도 말할 일이니 미리 알고 있으라고. 그리고 B가 말하면 그때 가서 모른 척하고 위로해 주라고. 사실 선택할 수 있다면 굳이 먼저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다. B가 나에게 말하지 않은 이유는 분명 있을 테니까. 거꾸로 A가 내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다른 친구에게 전하지는 않을지 잠시 걱정도 했다.


이미 알게 된 이상 기억을 지울 수도 없으니 B가 빠른 시일 내에 나에게도 고백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면 나는 몰랐던 척 연기하며 ‘너무 놀랐겠다. 괜찮아. 니 잘못도 아닌데 너무 상심하지 마.’ 이렇게 위로를 전해야 하나. 혹여나 알면서도 몰랐던 척 위로하는 게 가식은 아닐까 고민도 하면서.


몇 년이 지난 지금, B는 여전히 그때의 일을 나에게 말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만날 때면 그 일은 비밀로 간직한 채 B를 마주한다.

 

그리고 가끔 생각한다.

나에게도 흘려들은 비밀을 간직한 채 구태여 묻지 않고 모르는 척해주는 친구가 있는지.

B가 아직까지도 그 이야기를 나에게 하지 않은 데에 다른 이유가 있는지.     


세상에 있는 마음이 모두 다 전해질 수는 없다.

그때 미처 전하지 못했던 위로뿐 아니라 그동안 혼자서만 품었던 사랑, 감사, 미안한 마음들이 숱하게 많아 다 셀 수도 없다.

그냥 그런 생각이 스쳤다. 사람의 마음은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가끔 나는 쓸데없는 게 궁금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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