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현 Apr 20. 2022

성시경 닮은 남자와 소개팅을 했다

포.모.남

그를 처음 만난 건 어느 평일 저녁 강남역 레스토랑에서였다. 한 다리 건너 친구의 친구의 친구와 만나기로 한 소개팅. 진지한 마음으로 성시경과 결혼을 꿈꿀 만큼 푹 빠져있던 나에게 성시경과 꼭 닮은 사람이 있다며 만남을 주선해준 것이다. 아니 뭐람, 성시경은 세상에 한 명인데... 닮은 사람이 무슨 의미가 있담. 성시경도 아니고 성시경을 닮은 사람에게는 별 관심이 안 생겼지만 심심한 마음에 한 번 만나보기로 한 것이다. 훗, 그래 얼마나 닮았는지나 한 번 보든지 하자.


곱게 화장을 하고 적당히 긴장된 마음을 안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조금 일찍 도착했지만 먼저 약속 장소에 가는 것이 내키지 않아 강남역 주변을 서성이며 시간을 때우다 약속한 시간에 딱 맞춰 레스토랑 문 앞에 섰다. 심호흡 한 번 후 던지고 문을 열고 들어간 식당. 첫눈에 소개팅남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뭐야아? 외모 싱크로율 꽤 비슷하잖아? 그동안 성시경 닮은꼴이라 하면 적당한 머리 길이와 안경 말고는 닮은 점을 찾기 어려웠는데 그는 못해도 성식영은 되는 듯했다.  

   

어색한 대화와 식사를 마치고 근처 도넛 가게로 자리를 옮겼다. 커피를 사이에 두고 그와 마주 앉은 틈에 다시 한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마터면 ‘어머, 정말 성시경을 닮으셨네요.’ 하고 감상을 뱉을 뻔했다. 홀짝홀짝 커피를 마시는데 그가 주섬주섬 가방에서 선물을 꺼냈다. 평소 책을 좋아하신다고 하여 만나기 전 서점에 들러 책을 한 권 골랐다며 선물을 주는 것 아닌가. 소개팅 첫날에 책 선물을 받아보는 건 난생처음이라 놀라기도 또 고맙기도 해서 어리둥절하며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다 그와 헤어졌다.    

 

첫 만남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친구에게 결과 보고 문자를 보냈다.

‘야, 진짜 성시경 닮긴 닮았더라’로 시작하여 그날의 분위기를 나누었고 ‘근데 설레지가 않네. 이상하게 남자로 느껴지지 않아’로 끝이 난 소개팅 결과 보고서였다. 소개팅에서 사람 만나는 건 참 어렵다 생각하며 그렇게 마무리를 지었다.     

그런데 다음날 그는 안부 문자를 보내왔고 나는 읽씹으로 거절 의사를 내보였다. 그는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대답 없는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읽씹을 여러 번 반복하려니 굉장히 마음이 쓰였지만 이제 와서 답장을 하는 건 더 애매할 것 같아 휴대폰을 내려다보며 ‘미안합니다’라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주선해준 친구는 상황을 전해 들었는지 느닷없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와! 야, 그 남자 완전 포모남이네’

‘포 뭐? 그게 뭔데?’

‘포기를 모르는 남자. 아 얘가 포모남을 모르네. 근데 혹시 서울 사람들 혹시 다 또라이 아니냐? 네가 전지현도 아니고 이지현인데 이렇게까지 하는 게 이상하잖아?’

친구는 아주 깔깔대며 실없는 소리를 계속 늘어놓았다. 살짝 웃어넘겼지만 나 역시도 비슷한 마음이었다. 단 한번 만났을 뿐인데 열심히 구애를 해주는 그가 고맙고 미안했다.     


전남친 타임이라는 새벽이 오면 가끔 지나간 인연(이 될 뻔했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맞지 않았던 타이밍을 아쉬워할 때가 있다. 이를테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정도의 카테고리별로 쌓여있던 추억이 풀어지는 것이다. 성시경을 닮았던 그 사람은 늘 나를 좋게 봐주어 고맙고 좋은 사람으로 기억 속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다. 지금이라면 결코 설레지 않다는 이유로 매몰차게 거절하진 않을 것이다. 그때는 어린 마음에 자고로 연애란 불꽃이 파바박 터지고 첫눈에 심장이 롤러코스터 타듯 짜릿해야 하는 줄 알았다.(지금도 꼭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만)


가만히 한 번 생각해본다. 그때와 비교하면 연애 가치관도 달라졌고 그만큼 따뜻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도 경험치로 터득했으니 과연 시간이 지난 지금이라면 그의 문자에 답을 하고 두 번째 식사를 하게 될까?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자니 왠지 아닐 것만 같다.


드라마 ‘연애시대’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가 있다.

‘모든 것을 알아버린 지금의 내가 그 순간을 반복한대도 어쩔 수 없는 순간이 있다.’


많은 것을 알아 버린 지금의 내가 그 순간을 반복할 수 있다 해도 나의 선택은 왜인지 같을 것만 같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전하지 못한 위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