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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Aug 07. 2022

미치도록 좋은 혼자만의 시간

일상을 '나'로 채우는 일

회사 생활이 얼마나 싫은지를 주제로 토론을 연다면 서로가 앞다투어 이야기하느라 도무지 끝이라는 게 없어 끝내 우승자를 가릴 수 없지 않을까. 나는 대단한 회사나 대단한 업무를 경험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누구보다 조직생활이 힘들고 맞지 않다는 것을 안다. 마지막으로 몸담았던 조직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몸이 된지는 벌써 1년이 넘었다. 출근이 사라지면서 좋았던 것은 수도 없이 많지만 역시 가장 좋았던 것은 불필요한 감정을 덜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퇴사 후 일상은 100% 나로 가득 채워진다. 싫은 사람을 억지로 볼 필요도 없고, 하기 싫은 일은 마음 놓고 안 할 수 있다. 내 인생을 오로지 내 멋대로 휘두를 수 있으니 매일이 행복으로 가득한 삶이다. 어느 날 문득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나'와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상황이 겹쳐진 것도 영향이 있었겠지만 일상을 돌아보니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활동이 대부분 혼자서 하는 일들이었다. 혼자 카페에 가서 책을 읽고 혼자서 피아노 연습을 하고 혼자 필사를 하고 혼자 맛있는 것을 해 먹으며 그렇게 매 시간을 나와 꼭 붙어있었다. 자유가 주어지니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내 삶이 온전히 나로 가득 찬 것이다.


올초에 푹 빠졌던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에서 염창희(이민기)의 이런 대사가 나온다.

"몰랐는데 나 운전할 때 되게 다정해진다. 희한하게 핸들 잡자마자 다정해져
(...)내가 사람들 틈에서 오버하고 있었나 봐.
혼자 있으니까 되게 차분하고 다정해져. 혼자 다정해."

극 중 창희처럼 오버하는 나의 모습은 늘 조직 안에 존재했다. 감사하지 않아도 감사하고 죄송하지 않아도 죄송해야 하는 순간이 많았다. 어느 날은 동료와 대화하면서 '아니 근데 전생에 무슨 죄를 그렇게 많이 지었길래 맨날 죄송하다를 달고 살까'라고 말하며 서로 웃었던 기억이 난다.

상대가 하는 이야기에 아무런 관심이 없어도 열심히 끄덕이며 동조해야 하는 시간, 먹기 싫은 고기를 먹으면서도 이쯤 되면 내가 구워야 하는 걸까 타이밍을 계산해야 하는 시간도 힘들었다. 술을 싫어하지만 단호한 거절은 버릇없어 보일까 조심하며, '앗. 저는 술을 잘 못 마셔서요.'말하며 작아지던 순간, 누군가를 마주하면 최대한 반가운 척 웃으며 '안녕하세요'라고 텐션을 높여야 하는 순간도 힘들었다.


나를 대할 때는 더 이상 오버할 필요가 없다. 혼자서 카페에 앉아 책을 읽으면서 '아 너무 좋다'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온다. 행복한 나를 보면 덩달아 더 행복해진다. 나는 괜히 오해를 살까 더 웃고 더 친절하게 나를 대할 필요가 없다.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구태여 애쓰지 않아도 나는 내 진심을 다 알아줄 테니까.

일상을 나로 채워주니 나는 꽤 충만해졌고 이제야 나는 비로소 내가 아닌 타인에게도 한껏 다정해질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애쓰지 않고도 마음 놓고 다정해질 수 있는 지금이 너무나 좋다. 남은 인생에서도 이렇게 귀한 시간을 가지고 싶다고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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