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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Aug 15. 2022

위스키도 물을 타야 맛있다는데 내 인생도 물 좀 탈게요

글을 써야겠다 마음먹고 처음 나갔던 글쓰기 모임에서 랜덤으로 받아 든 주제가 '위스키'였다. 주제를 받고 15분 내로 아무 글이나 완성하여 순서대로 낭독을 하고 합평을 하는 모임이었다. 술을 입에 대는 일이 0에 수렴하는 나에게 하필 그런 주제가 오다니! 삼행시라도 지어야 하나 싶다가 답답한 마음에 뭐라도 아이디어를 얻어보고자 검색창을 켰다. 그리고 얻은 정보가 좋은 위스키는 냉수와 함께 마시거나 물로 희석해서 먹는 게 제일이라는 내용이었다. 그걸 읽자마자 한참을 채우지 못했던 종이에 막힘없이 글을 써 내려갔다. 보통 좋은 재료일수록 본연의 맛을 느껴야 하는데 위스키는 아무 맛이 없는 물을 첨가해야 더 좋은 맛이 난다고 하니 내 인생에 물 타던 시간들이 떠오른 것이다.


생산성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들 말이다. 누워서 드라마를 본다거나 쉬는 날 늘어지게 잠을 잔다거나 가끔은 멍 때리며 보내는 시간들. 뒤돌아보면 늘 무언가에 열중하고 자기 발전을 위해 힘쓰는 시간만이 값지고 소중하다고 세뇌받았다. 학교를 다니면서도 남는 시간에 토익 공부를 하고 미리부터 취업이 잘 되기 위해 스펙을 쌓아야만 알차게 사는 삶이라고 교육받았다. 내 옆 친구는 토익 900을 넘기려고 공부하는데 집에서 TV를 보며 뒹굴 거리다 보면 조바심이 났고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를 내모는 삶은 나도 모르게 학습이 되어 수업을 마치고 집에 와서도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회사를 다닐 때도 주말에 집에서 쉬는 것보다는 어딘가를 나가거나 학원이라도 다녀야 알찬 인생을 보내는 기분이었다.


서점에 가면 제목부터 치열한 자기 계발서가 끝도 없이 쌓여있고 시간을 초, 분 단위로 알차게 쓰는 팁을 앞다투어 알려준다. 그런 세상에서는 하루를 온전히 잠으로 때우는 일 같은 건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뭐라도 해야 하고 바쁘게 움직여할 것 같은 부채감이 나에게도 쌓여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흘려보내는 시간은 대체로 질타받기 때문이다. 치열하게 살면서 만족도가 높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은 늦게 깨우쳤다.


좋은 회사에 취업해서 승진을 하는 기쁨보다는 날씨 좋은     들고 카페에 가는 기쁨이  크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앞다투어 경쟁하는 삶보다는 그냥 내가 지고 마는 삶이 좋다. 앞을 쫓지 않고 인생을 허비한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닌데 그냥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같다. 맹탕 같은 하루를 보내더라도 내가 행복해지고 풍요롭다면 그건 절대로 아무것도 아닌  아니다. 나는 앞으로 위스키로 살겠다. 아무 맛도 없는  같은 시간이 첨가되면  좋은 맛을   있다. 앞으로는 죄책감 없이 물을 타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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