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잠시 비서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회사 신입 계약직이었는데,
갑자기 본부장 비서가 공석이 되어
그 자리를 임시로 채웠습니다.
참 어렵더군요.
비서의 업무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렇습니다, 의전이죠.
거기엔 정말 많은 능력이 필요합니다.
일단 모시는 분의 스케줄을 알아내야 합니다.
지금 나가는 이유가 본사에서 호출이 왔는지,
잠깐 사우나를 가는지, 아니면 미팅이 있는지
독심술을 써서라도 알아야 합니다.
당연한 것 같죠?
그런데 모시는 분은 그걸
일일이 말씀해 주지 않으십니다.
비서는 그냥 알아야 합니다, 그냥.
이건 두 번째 난관으로 이어집니다.
돌아올 시간도 알아내야 한다는 겁니다.
가장 많이 듣는 질문 1위가 "어디 가셨어?"
2위가 "그래서 언제 돌아오시는데?" 이겁니다.
그대로 집에 가는지, 아니면 복귀하는지
그것도 비서라면 알아야 합니다.
말을 해주시면 다 해결될텐데,
그 말을 듣기 참 어렵습니다.
정말 많은 사고를 쳤습니다.
미팅이 언제 끝나는지 알아내려고
쪼그려 앉아 귀를 대고 엿듣다가 들키거나,
쟁반 나르는 법을 몰라서 손님 앞에 잔을 내려놨을 땐
받침 접시에 커피가 흥건하게 찰랑댔던 적도 있습니다.
강남역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회사였습니다.
옆에 본부장님이 앉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비서는 최소 30분 먼저 가야 합니다.
저처럼만 안 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