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감도 우울도 없는

by 밥무사



이전에도 쓴 바 있지만 저는 여러 가지 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항우울제, 수면제, ADHD약...


우울증 약을 먹으면 생기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습니다.

무쾌감증입니다. 불감증 아닙니다.

맛, 향기, 감촉, 사소한 것에서 쾌감을 못 느끼게 됩니다.

쉽게 말하면 뭘 해도 재미가 없습니다.

사는 게 심드렁해집니다.


이게 왜 우울증 약 부작용이냐고요?

우울증 약은 감정의 진폭을 줄입니다.

우울함이 바닥을 찍지 않게 만드는 거죠.

대신 기분이 쉽게 좋아지지도 않습니다.

무미건조한 인간이 됩니다.


그렇다고 약을 끊으면 잠을 못 잡니다.

잠을 못 자면 몹시 괴로워집니다.

아이러니한 게 기분이 좋아지는 일은 거의 없는데

부정적인 감정은 금방 올라옵니다.


우울증 약을 오래 먹으면 안 우울해지는 게 아니라

늘 약간 기분이 저조한 사람이 됩니다.

재밌는 게 없으니 도파민에 집착하게 됩니다.

사고 싶은 건 바로 사고, 먹고 싶은 것도 당장 먹습니다.

그럴수록 쾌감 역치가 높아져서 뭘 먹어도 그저 그렇고

뭘 사도 금방 시들해집니다.



브러니.jpg


인간이 느끼는 쾌락 수치라고 합니다.

이제 쾌감을 느낄 수 있는 건 도박하고 마약밖에 안 남았나 싶습니다.

절망적인 기분이 듭니다.


겁이 많아서 못 하겠지요.


장점도 있습니다.

매일 일해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어차피 일을 안 해도 즐겁지 않기 때문에

계속 일을 해도 기분이 늘 비슷합니다.


유난히 기분이 처지는 오후입니다.

당연히 아무 일도 없습니다.

평소와 같은 하루입니다.


사는 게, 너무 지겹습니다.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열심히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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