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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듣는연구소 Feb 26. 2019

연구하려면 꼭 대학원에 가야만할까

AYARF(아시아 청년 액티비스트-리서쳐 펠로우십) 컨퍼런스 후기- 1 

나는 연구도 하고 활동도 한다. 이렇게 산 지 7년이 조금 넘었다. 무슨 연구를, 어떤 활동을 하느냐고 물으면 늘 답하기가 애매하다. "관심을 갖고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회 문제에 대해서요. 변화에 연구가 필요하면 연구를, 활동이 필요하면 활동을 해요."라고 한다. 이렇게 말해도 여전히 질문자의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다.


하는 일의 내용을 설명하자면 어렵지 않다.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회문제가 있을 때 무턱대고 액션을 취하긴 어려우니, 이 문제는 어떻게 잘 풀 수 있을지를 먼저 연구한 다음에 캠페인이든 교육이든 효과적으로 활동에 옮긴다. 거꾸로, 연구로 답을 찾기 어려울 때 먼저 모임이든 워크숍이든 현장에서 활동을 먼저 하고나서 그 내용을 바탕으로 문제의 본질이나 대안을 찾는 연구를 하기도 한다. 연구가 먼저냐 활동이 먼저냐, 연구가 본질이냐 활동이 본질이냐가 중요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거나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연구와 활동을 하는 것 뿐이다. 이 긴 설명에 인내심을 갖고 듣는 것이 어려울 듯하다.


이런 사람을 연구 활동가라고 해야 할지, 활동하는 연구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몇 년동안 기존에 없던 직업군으로 나를 설명하려고 하다보니 겪는 어려움이 있었다. 예를 들어 연구 지원사업에서 필요로하는 연구자의 요건에 맞지 않을 때도 있고, 활동가 지원사업에서는 특정 NGO에 소속되지 않았으니 활동가로 인정되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나를 '활동가' 또는 '연구자' 둘 중 하나의 정체성에 욱여넣어야 할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활동가와 연구자 사이의 애매한 정체성

남들에게 설명하기 어려움은 차치하고, 나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정체성에 혼란이 생길 때가 곤혹스럽다. 활동가로서도 부족한 것 같고 연구자로서도 모자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연구자의 전문성과 활동가의 깊이를 갖추지 못한 것 같은 애매한 중간자가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 때도 있다. 


듣는연구소를 설립하고나서도 그런 의심에 종종 휩싸였다. 듣는‘연구소’이니까 연구를 잘 해야 할 것 같은데, 박사학위 소지자들로 구성된 연구소가 아닌데 연구소라 해도 되냐는 농담아닌 농담을 하면서 우리의 능력을 끊임없이 의심했다. 또, 우리는 연구만 하는 게 아니라 활동도 하고싶은 데 연구소란 이름으로만 불리면 책상에 붙어서 연구만 해야 할 것 같다는 염려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한글 이름으로는 듣는연구소이지만 영문 이름에는 finding LAB이라고 지었다.

© 커뮤니티 '독립활동가의 시대'


그래서 역량을 기르려고 노력하는데, 연구와 활동 역량을 한꺼번에 길러주는 곳이 없으니 알아서 역량을 길러야한다. 활동 역량은 어디서키워야 할 지 모르겠으니 많은 사람들이 연구 역량을 길러줄 것 같은 대학원 진학을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대학원에서 연구 역량을 어느 정도 강화하는 데는 분명 도움이 되지만, 곧 학술 연구와 사회변화를 위한 활동가의 연구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학문의 목적은 진리탐구이지만, 연구 활동가의 연구 목적은 사회변화를 위한 구체적인 액션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래서 역량 강화를 원했던 많은 활동가들이 땡빚을 내서 대학원에 진학하지만, 석사 후에는 어떤 진로를 잡아야 할지 난감해 하는 것 같다.


고민을 종식한 액티비스트-리서쳐

며칠 전 나 같은 사람들이 대거 모인 컨퍼런스와 워크숍이 열렸다. 지난 2월 14-15일 서울시 청년허브에서 열린 <아시아의 청년들 도시 삶의 연구자가 되다>인데, 이곳에서는 사회 변화를 위한 활동과 연구를 함께하는 사람들을 '액티비스트-리서쳐(Activist Researcher)'라고 호명하고 앞으로 이들을 키우기 위한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홈페이지)


이 포럼에서 액티비스트-리서쳐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활동과 연구 중간 어디쯤 애매하게 걸쳐있는 사람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영역과 고유의 직업 정체성을 가진 사람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 개념이 그동안 연구자와 활동가 사이에서 혼란스러웠던 나의 정체성을 정리해주는 것 같아서 그날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나처럼 자기 정체성을 이곳에서 발견한 사람들이 무척 많았던 것 같다. 구름처럼 몰려왔던 수백명의 사람들이 나처럼 액티비스트-리서쳐라는 말에 이끌려 왔을테니 말이다. 좌석을 가득 메우고 모자라 계단참과 문간에도 사람들이 들어찼고, 홀 밖 스크린으로 중계를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 AYARF / 서울시, 청년허브, 씨닷, LAB2050

액티비스트-리서쳐 한국말로하면 활동연구자 또는 연구활동가, 사회혁신가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새로 만든 개념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개념이라고 한다. 이날 컨퍼런스에는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액티비스트-리서쳐’를 소개하고 이들의 역량계발을 지원하는 기관의 프로그램도 소개했다. 그리고 2019년 서울에서 ‘아시아 청년 액티비스트-리서쳐 펠로우십’을 론칭하겠다고 계획을 발표했다. LAB2050에서 액티비스트-리서쳐에 대해서 (아시아 다음세대 연구자 교류 협력 플랫폼 구축방안)했다고 하는데, 그 결과물을 보면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다려진다.

© 라이프인 / 이진백

액티비스트-리서치는 어떤 연구

액티비스트-리서쳐의 연구는 학문 연구와 다른 고유의 영역이 있다는 점에서 '유레카'를 외친 나는, 그렇다면 그 연구는 어떤 연구일지가 궁금했다. 액티비스트-리서쳐로서 나와 듣는연구소는 어떤 방법으로 연구할 것이며 전문성은 어떻게 키워갈 지 방향을 잡고 싶어서다. 


컨퍼런스 다음날에는 조금 더 오붓한 규모로 이뤄진 워크숍이 열렸다. 참여자들은 액티비스트-리서쳐는 어떤 사람이고 이들을 키워주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워크숍에서 '왜 액티비스트-리서쳐는 연구를 하는가?'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대략 세가지 이유가 얘기됐다.

활동을 잘 하기 위한 사전 조사로서 리서치.

사회 변화를 위한 연구를 먼저 하고, 그걸 실행시키는 활동을 함.

활동을 잘 정리 기록하는 차원에서 연구.

 활동가, 대학 연구자, 기관 연구원, 재단 등 자기 기반에 따라서 액티비스트-리서치를 보는 관점이 다른 걸 알 수 있었다. 액티비스트-리서쳐 개념이 정의되어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컨퍼런스와 워크숍의 논의를 종합했을 때, 액티비스트-리서치는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데 방점이 있는 연구인 것 같다. 


액티비스트-리서쳐의 연구 방법과 필요 역량은 무엇일까? 이것 역시 앞으로 정의되어야 할 과제일텐데, 이번 컨퍼런스에서 사례로 소개됐던 사회혁신 레지던시 Getting to Maybe 사회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내적 성장과 활동 내용을 성찰하고 방향성을 재정립하도록 돕는 액티비스트-리서쳐를 위한 캐나다의 레지던시 프로그램 주제에서 참고해 보면 다음과 같다.

시스템을 보는 눈 System thinking

시스템 디자인 Designing Systems

시스템 안의 자신 Self in System

자연과의 만남 Encounters with the Natural Environment

창의적 실천 Creative Practice

지역 고유의 지식 Indigenous Knowledge


액티비스트-리서쳐의 일로서 듣는연구는

그렇다면 액티비스트-리서쳐로서 듣는연구는 무엇일까? 그동안 듣는연구는 어떤연구인가 - 학문으로서 질적연구와 비슷한가 다른가 등에 대해서 혼란스럽게 고민해왔다. 

이제까지 해왔던 작업들을 통해 '듣는 연구는 이런 연구가 아닐까'라는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해 왔다. 조금 더 공부하고 논의하면 머지 않아 그런 생각들을 다듬어서 말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생긴다. 

1) 사람들의 욕구를 잘 듣고 

2) 그들이 원하는 삶과 사회 변화를 상상할 수 있도록 도우며 

3) 그 상상을 실현하는 것도 돕는 것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는 액티비스트-리서쳐의 영역 안에 있고, 그 스펙트럼 중 어느 좌표에 위치해 있을 거라는 감을 잡게 되었다. 이제는 우리의 좌표는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가에 대해서 파악하려 한다. 밖으로는 액티비스트-리서쳐 동료들과 교류하면서, 안으로는 듣는 연구 방법을 발전시키는 공부를 통해 좌표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듣는연구소 동료들과 그 과정을 기록해보려한다. 


결론은, 연구하려면 대학원에 꼭 가야만 할까? 
No, 지향하는 길이 학문 연구자가 아니라면, 액티비스트-리서쳐라는 고유의 영역에서 연구할 수 있다. 


그럼 액티비스트-리서쳐로서 성장하려면 대학원 말고 어디를 가야 할까? 다음 화에서 ‘아시아 청년 액티비스트-리서쳐 펠로우십’을 론칭하고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레지던시를 만들겠다는 계획과, 그에 대한 개인적인 바람을 적어보겠다.


다음화 읽기 - 내 삶을 연구하고, 바꾸고 싶다면


by 듣는연구소 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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