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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듣는연구소 Mar 24. 2020

옥천 사는 김예림

듣는연구소 읽는보고서 - 지역으로 이주하는 청년의 사회적기반 #3-1



옥천에서 이룬 세 가지 바람


김예림은 대안학교 출신이다. 대안학교 졸업반 인턴쉽 과정으로 <옥천 신문사>에서 일했는데 그 경험이 나쁘지 않았다. 마침 신문사에서 지역 월간지 발간과 문화기획을 하는 새로운 회사를 설립할 시기와 맞물려서 일을 제안받았다. 그 제의를 받아들여 옥천에 오게 되었다. 돌아보면 인턴 외에는 경험 없는 자신에게 새로운 일을 제안해 준 회사가 신기하다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조금 신기한 거 같기도 해요. 보통은 회사에서 대학을 나왔는지 또는 어떤 경험이 있는지 이런 거 보고 할 텐데, 제가 신문사에서 3개월 동안 있었던 거를 그래도 잘 봐주셔서 그렇게 가게 된 거라, 신기한 기회였죠.


옥천에서의 일기회는 신기한 우연이지만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원했던 세 가지 바람을 이룰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저는 졸업하고서 되게 딱 세 가지 원하는 게 있었어요. 하나는 빨리 돈을 벌고 싶었고, 독립을 하고 싶었고, 그 서울의 빡빡한 지하철을 타고 싶지 않았어요.


 안산이 경기도 중에서도 되게 구석 탱이에 있어서, 홍대에 사는 친구 만나려고 왕복 막 4시간? 왔다 갔다 해야 했거든요, 그게 너무 지긋지긋하고, 서울 애들 안 움직이는 거두 너무 싫고. 하하. 그렇더라고요. 네. 그래서 그냥 사실 깊은 고민 없이 그냥 되게 우연한 기회로 오게 됐어요.


정착에 도움이 된 '지역을 알 수 있는 일' 


회사에는 10여 명의 직원 중 절반 이상이 20대였다. 농촌 지역에서 이렇게 젊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회사가 있다는 것이 신기한 일인데, 예림 씨는 자신이 일하는 회사 주변으로도 젊은 사람들이 모인 회사가 꽤 있다고 했다. 그들 대부분은 옥천 출신이 아니라 타지에서 옥천으로 일하러 온 이들이다. 주변에 젊은 사람들이 많아 친구 사귀기 좋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예림은 동료나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이 기대어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1년 정도는 그저 외로움만 늘었다. 그러나 일을 통해 만난 관계들이 확장되면서 최근에는 ‘발이 넓어진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회사에서 하는 문화사업 등의 장을 통해서 지역 곳곳을 다니며 몰랐던 사람들, 몰랐던 세상을 만났다. 특히 이웃 사무실을 썼던 어른이 옥천의 정착에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나이 차이가 크게 나긴 하지만 ‘어른'이라기보다는 ’ 좋은 사람‘으로서 편견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을 해주어 의지하는 관계가 되었다.     

처음 관계망은 고등학교 졸업할 때 같이 졸업 한 친구들, 아니면 여기 동료들이 끝이었는데, 계속 있다 보니까 동료들도 계속 바뀌면서 새로운 사람을 사귀었고, 동네에 이리저리 친구를 만들 일이 생겼어요. 청년 활동가처럼 언니도 한 명 있고, 소 키우는 친구가 있고, 그런 식으로 관계가 생기다 보니까 모임 같은 것도 만들고, 책모임, 페미니즘 모임도 하고.     

이렇게 형성된 관계 외에도 예림 씨의 지역 살이를 버티게 해주는 한 가지를 꼽자면 '주거'를 들 수 있다. 지금 그는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서 지역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처음에는 회사에서 제공해 준 숙소에서 지냈는데 주거환경이 열악해 버티기 힘들었다. 그러다가 아는 사람을 통해 싼 가격에 인근 주공아파트에 월세 살이를 시작했다. 더 쾌적한 주거환경이 주는 유익을 경험하고 난 후에는 아예 마음먹고 대출을 받아서 아파트 전세를 얻었다. 서울에서 놀러 온 지인들은 그의 집을 보고 ‘정말 좋은 곳에 산다'며 놀란다고 한다. 그도 스스로 ’ 내가 서울에서 산다면 이런 곳에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물론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있다. 전세금의 80%가 대출 자금인데 중소기업 청년들을 위한 자금이라는 것이다. 혹시 이직을 하더라도 중소기업으로 다시 이직을 해야 하는 조건이 따라다닌다.      


새로운 일을 벌일 수 있는 상상을 하게 해 준 '관계의 힘'


그러나 그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지금 있는 직장이 추구하는 전체적인 큰 지향이 자신과 맞아서 아직까지는 버티고는 있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일을 그만두고 대안대학에 진학하려 한다. 이 동네에서 만난 사람들과 새로운 일을 도모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옥천에서 새로 맺은 관계들이 주는 힘이 그런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일단 이 동네에서 예전에는 회사 말고는 없었는데, 이제 그거는 조금 벗어난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거든요. 그거 말고 외의 관계들이 있고, 그거 말고 할 일들이 있고, 그리고 그 관계들과 함께 내가 함께 해볼 수 있는 것들이 있고. 그런 생각들이 들어서, 그만두고 조금 마음대로 살아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만둬도 계속 여기 살려고요.     


©김예림

구체적으로 물어보니 지금 사는 곳 보다 조금 더 시골에 땅을 사고 청년들이 모여 필요한 만큼 적당히 일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며 살 수 있는 공동체를 꿈꿔보고 있다고 한다. 정말 마음이 맞는 딱 한 사람만 더 있어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터뷰를 한 후, 지금은 충북 제천에 있는 대안학교인 제천간디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다. 그에게는 익숙한 곳이라고 해도, 새롭게 적응하는 것은 녹록치 않다.


예림은 이 연구와 관련해, 청년들이 지역으로 이주해 살 수 있기 위해서는 탐색적 기회가 많이 제공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단 도시의 청년들이 지역에 대해서 모르는 경우가 많고 아예 무지의 영역이라 지역 살이가 상상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한다. 아직 지역으로의 이주는 개척기에 가깝고 기회와 함께 고민도 많은 시기이지만, 땅과 공간이 제공되고 그곳을 일궈나갈 사람들이 새로운 시대에 맞는 문화를 만들어 간다면 그 뒤를 따라가는 사람들이 밝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예림의 내러티브가 담긴 '지역사회 기반현황 연구 결과보고서'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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