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연구소 읽는 보고서 - 지역으로 이주하는 청년의 사회적기반 #2
수도권을 떠나 지방으로 향하는 삶을 꿈꾸나요?
혹은 청년의 지방 이주 현상에 관심이 있나요?
그렇다면 이 보고서를 한 번 읽어볼 만 할 겁니다. 지역살이를 생각하는 서울의 청년들에게 지역살이 경험을 제공하는 사업을 구상하던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가 듣는연구소에 의뢰한 연구로, 원래는 <지역교류형 청년일자리 사업모델을 위한 지역사회 기반 현황 연구>라는 어려운 본명을 가졌지만, 쉽게 말하면 '지방으로 이주하는 청년들이 잘 살 수 있는 지역사회의 기반은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입니다. 그 내용을 필요한 사람에게 더 쉽게 가닿을 수 있도록 여러 편으로 나누어 블로그로 읽는 보고서를 연재합니다.
'지역사회 기반현황 연구'는 청년들이 지역으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지역사회가 가진 사회적 기반의 현황이 중요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주 청년 당사자를 비롯해 관련 정책을 세우는 이해관계자들 모두 암묵적으로는 '당연히 그렇겠지'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과연 그 사회적 기반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방식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고민해볼 기회가 많지는 않았다고 생각하기에 의미가 있습니다.
선행연구들을 통해서 청년의 지역사회 이주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무엇인지 밝히려는 연구가 진행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과연 일, 주거, 육아, 교육, 진로 등 청년의 삶에 영향을 미칠 법한 다양한 영역에 대해 영향력을 측정하고, 분석하며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각각의 확인된 요인들을 묶어내는 종합적인 관점을 제시하고 있는 연구를 찾기는 힘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청년의 지역 이주를 돕는 정책 설계는 증거의 편린들을 가지고 단편적으로 제시되기 쉽습니다. 주거가 필요하다니 집을 지어주고, 일자리가 필요하다니 일 년 정도 일할 수 있는 직장을 구해줍니다. 우리가 살아내어야 할 삶은 연속적인데 지원은 뚝뚝 끊어지고 단절되어 있어서 이를 이어내 안정적인 삶을 구성해 내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물리적 차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중요성이 강조되지 못했던 '정서적', '관계적' 차원의 요소들이 최근 들어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역사회의 인식과 사람 관계' ('완주군 청년정책 기본계획 수립 연구', 김주 영외, 2016), '지역 분위기'(청년인구 이동 문제 진단을 위한 청년 현실에 기초한 지역격차 분석 연구, 엄창환 외, 2018) 등을 지적한 연구를 찾을 수 있었는데 이러한 연구는 직접 지역으로 이주한 청년 당사자 그룹이 진행한 연구였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이런 자료를 만나면 마치 '살아보니 이런 것이 중요하더라'라고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Eric Klinenberg)는 이 물리적 차원의 기반과 정서, 관계적 차원을 '사회적 인프라(Social Infrastructure)라는 개념으로 연결합니다. 그는 먼저 우리가 흔히 인프라라고 부르는 '인프라스트럭쳐(Infrastructure)'를 '사람들이 인식할 정도로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사람들의 사회, 문화적 활동의 배경이 되면서 사회활동의 목적을 이루도록 돕는 물리적 요소들'이라고 설명합니다. 전통적으로 이러한 인프라는 사람들의 생존에 직결되는 필수적인 요소를 지원하는 물리적 시설이나 서비스에 한정되어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회가 시민들에 필요한 필수적인 삶을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고, 상호관계를 맺고,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는 다양한 물적 기반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러한 요소들을 '사회적 인프라'라고 말합니다.
도서관, 학교 등 공공시설은 물론 동네 텃밭이나 카페, 미용실 등 사적 공간이지만 일상적으로 시민들이 마주칠 수 있고, 관계 맺을 수 있는 공간들이 모두 사회적 인프라에 포함됩니다. 전통적으로 그저 인프라라고 불렸던 요소들 역시 사회적 인프라로 불릴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한 조건은 '사회적 관계망을 촉진하는데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는' 맥락적 역할의 수행입니다. 거대한 댐이나 둑 같은 것도 그곳을 공원으로 조성하고 사람들의 교류나 만남을 촉진한다면 사회적 인프라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 도서관이라도 개인 공부를 위한 독서실 비중이 높다면 충분한 사회적 교류를 증진하는 사회적 인프라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사회적 인프라 개념을 만나니, 지역사회 이주와 정착에 영향을 미치는 물리적 요소들과 정서적, 환경적 요소들을 묶어주는 끈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지역사회를 이루는 각 요소들은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것들도 있을 테지만 타 지역에서 이주해 온 상황에 놓인 '어떤 청년'에게 더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도 있을 것입니다. 같은 요소라도 개인이 놓인 삶의 맥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청년의 지역 이주라는 맥락에서 지역사회가 가진 끈끈한 결속은 그가 지역에 정착하기 위해 얻어야 할 자원일 수도 있지만 그 관계망 안에 속하기 위해 그가 원하지 않는 사회적 관습을 따라야 함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 통해 '청년의 이주를 돕는 사회적기반'을 청년의 지역이주라는 배경적 맥락에서 해석되는 사회적자본(관계자원)과 사회적인프라(물적자원)의 합'으로 정의했습니다.
듣는연구소는 지역으로 이주해 살고 있는 10명의 청년을 인터뷰하고, 3개의 사례지역을 조사해 '지역으로 이주한 청년들에게 필요한 사회적기반'의 내용은 무엇인지를 알아보았습니다. 10명의 청년은 수도권을 제외한 전 지역이 포함될 수 있도록 지역을 배분하였고, 3개의 사례지역은 청년 주도, 행정과의 거버넌스 구조 중심, 지역에서 청년을 유입을 적극적으로 시도한 곳 들을 선택해 살펴보았습니다. 이를 통해 '생계-관계-공간-정서'라는 핵심 요소를 도출하고 각각의 요소별로 정착과정에서 이주 청년과 지역이 함께 고려해야 할 세부내용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청년의 지역 이주와 관련한 정책과 사업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점검의 기준점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부분들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당위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국 어디에도 아마 저 조건들을 모두 갖춘 지역은 없을 것입니다. 다른 인프라가 잘 갖춰진 도시지역도 이를 모두 갖추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이주를 고민하는 청년들이 새로운 지역의 이주를 판단할 때 자신이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확인하고, 그것이 내가 가려는 지역에 존재하는지 맞춰볼 수 있다. 지역에서 청년을 받아들이며 우리는 무엇이 강점인지 혹은 약점인지 점검해 볼 수 있는 기준으로는 활용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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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우리는 청년의 이주 나아가 이주 후의 좋은 삶은 물적 자본만으로 확보되는 것도 아니고, 관계적 자본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닌 것을 확인했으면 좋겠습니다. 청년 이주의 기반을 위해 게스트하우스나 취업자금, 공간들이 조성되고 있는 만큼 '이 인프라를 통해 이주 청년이 지역 또래 청년들과의 관계, 지역사회와의 관계가 질적으로 향상될 수 있는가?'를 고민하길 바랍니다.
연구 결과를 더 자세히 볼 수 있는 '지역사회 기반현황 연구 결과보고서'보러가기
#1 청년에게 필요한 ‘생계, 관계, 공간’이라는 환대
#2 청년의 이주를 돕는 사회적기반(social infrastructure)이란
#3 이주청년의 내러티브
#4 정착기반 지역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