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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듣는연구소 Mar 24. 2020

홍성 사는 길익균

듣는연구소 읽는보고서 - 지역으로 이주하는 청년의 사회적기반 #3-2


길익균은 홍성 금마에서 아내 그리고 6살짜리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2013년 당시 연애 중이던 두 사람은 각각 홍성군 구항면과 익산시에 살고 있었다. 결혼하고 함께 살 지역을 정하려 했을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주거지였다. 마땅한 곳을 고르기 힘들어서 기한을 정하고, 그때까지 찾은 곳 중 가장 좋은 조건인 곳으로 가자고 이야기했다. 때마침 홍성에서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집이 비어있으니 와서 살아보라고 해서 지금의 홍성 집에 정착하게 되었다. 

길자탱자네 ©길익균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제안에 움직이다


그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귀촌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여기저기를 탐색했다. 그때가 2011년 경이었다.  그렇게 다녔던 곳들 중에 홍성도 있었다. 당시 귀농 투어를 위해 숙박했던 거북이마을에서 만난 마을 위원장님이 마을에서 일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제안을 받고 그다음 주에 바로 짐을 싸서 내려왔다.     

 

그는 서울에서는 딱히 직장생활을 할 생각도 없었고, 계약직 외에 좋은 일자리를 찾기도 힘들었다고 말한다. 홍성으로 내려오면서는 몸이 아프신 아버지와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해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결국 홍성에서 혼자 시골살이를 하게 되었다. 사실 그가 지역에 대해 익숙함을 느끼고 내려올 생각도 하게 된 데는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다. 어릴 적 잠시 농촌에서 살았던 경험이 큰 역할을 했다. 한옥 목수 일을 하면서 시골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는데, 시골도 살만한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그에게 거북이마을 위원장님의 제안은 지역에 내려온 다고 했을 때 가장 걱정이었던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솔깃한 제안이었다.      


일단은 시골에 살면서 기본적으로 일자리가 주어지니까 일단은 생계가 해결되잖아요. 그 당시에도 뭐 금액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한 120 정도 받았었는데 일단 그런 부분이 해결이 됐고. 막상 이제 서울에 살다가 시골에 내려온다고 했을 때 당장 이제 생계가 걱정이 되는데, 그런 게 해결이 됐고. 

    

당시 그가 한 일은 마을을 홍보하는 일이었다. 마을의 홍보 거리를 찾고, 행사의 후기를 정리해 블로그에 올리는 일을 했다. 그는 만약 자신도 잘할 줄 모르는 농사일 같은 것을 해야 했다면 적응이 힘들었을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컴퓨터 작업은 서울에서도 했던 일이라 적응이 쉬웠다. 블로그 작업은 일의 효능감도 높았는데 홍보작업을 통해 마을이 알려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홍보를 통해 여러 사업이 연결되고, 그렇게 연결된 사업에 대한 기획서를 쓰면서 본인이 마을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스스로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 생기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일이 궤도에 오르면서 단순 반복적인 일들이 지속되자 처음의 흥미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대통령상을 탈 정도로 마을이 알려지기도 했지만 그가 기여한 부분이 반영된 보상(예를 들어 임금 인상)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당장 할 일이 없어졌지만, 처음에 지역에 내려올 때만큼 생계가 걱정되지는 않았다. 마을에서 2년여를 일하다 보니 ‘지역에 있으면 굶어 죽지는 않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블로그 같은 것도 되게 많이 유입을 시켰었어요. 네 어떨 때는 뭐 하루에 방문자 한 4천 명씩 들어온 적도 있었고 3개월 평균 방문 한 1500 정도 찍은 적도 있었고. …(중략)... 지역에 무슨 사무장 자리도 막 간간이 나는 것도 보이고 그러면서 아니 뭐 내가 여기 그만둬도 저기 사무장 들어가면 되겠네 그런 생각도 들기도 하고. 그냥 뭐 지역에서 그냥 있으면서 굶어 죽지는 않겠다. 그건 있어봐야 아는 것 같아요. 말로 해선 이게 감이 오는 게 아니라 그냥 농촌에서 한 1년 정도 살다 보면 사실 가만히 두지 않거든요. 젊은 사람이 있다는 것만 해도.
그냥 뭐 지역에서 그냥 있으면서 굶어 죽지는 않겠다. 그건 있어봐야 아는 것 같아요. 말로 해선 이게 감이 오는 게 아니라 그냥 농촌에서 한 1년 정도 살다 보면 사실 가만히 두지 않거든요. 젊은 사람이 있다는 것만 해도.

     

사무장을 그만둔 후에 블로그를 하며 익혀둔 영상 촬영과 편집 기술을 활용해서 지역에서 프리랜서로 영상작업을 하며 지냈다. 영상작업은 귀촌 후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처음 해본 일이었다. 영상기술은 함께 일했던 전공자로부터 배웠다. 지역의 작은 행사 기록 등을 위해서는 그 정도의 숙련도로도 충분히 일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영상일이 이전만큼 안정적인 생계를 유지시켜주지는 못했기 때문에 새로운 방식으로 안정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지역의 귀촌자 중 기자 출신,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지역의 이야기를 다루는 미디어 협동조합을 만들기도 했었다. 이렇게 사람을 모으고 협력해서 조합을 설립하게 된 데에는 이전에 그가 했던 활동들이 도움이 되었다.     


지역에서 나름대로 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관계들이 계속 인연이 돼가지고 협동조합을 사실 만들게 된 거거든요. 같이 창업했던 지역신문기자 출신도 제가 거북이마을에 있었을 때 저를 취재하러 오진 않았지만 취재하러 왔던 기자의 동료 기자였고 지역에서 일단 젊은 사람이 있으니까 한번 만나보자 해가지고 알고 지냈고. 

    

길자탱자네 ©길익균


청년들에게 가볍게 탐색에 도움을 주면서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일자리가 필요하다


익균 씨는 지금 홍성에 정착해서 살고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꼭 살아야 하는 곳이 홍성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홍성에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면, 지금은 오히려 조금 자유로워진 편이다. 다른 지역에 가면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그러나 사는 곳을 고려할 때 이제는 혼자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와 아이도 함께 고민하고, 지역에서 얻은 관계도 생각해야 한다. 예전에는 자신이 좋아하고 재미있는 일이 선택의 우선순위에 있었다면 지금은 자녀 교육이나 아내의 직장 등도 고려한다. 그는 홍성이 ‘아이가 있는 청년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공교육에서의 혁신 교육과 풀무학교 등이 있고, 교육을 위한 활동을 해 온 귀촌자들의 교육관이 지역에 녹아들어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그가 보기에 가보고 싶은 곳은 어딜까 물었을 때, 그는 다른 지역을 금방 언급했다. 홍성은 오래전부터 귀촌자들의 세대가 이어져 오다 보니 새로운 젊은 사람들이 더 이뤄 볼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새로운 일을 마음껏 펼칠만한 다른 지역도 기회가 된다면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다.   

  

그는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청년들을 위해 지역이 ‘긴 호흡’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것은 청년이 그 지역에서 여유를 가지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한다. 그가 보기에 청년들이 지자체나 지원 조직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에 오게 되면, 조직에 묻혀서 해야 하는 빡빡한 일들 속에서 자신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일하다 질려버리게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차라리 아주 가볍게 탐색에 도움을 주면서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일자리’를 제공하고, 그 이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도록 연결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혹시 이곳에서 무언가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 경험이 좋은 경험으로 남아서 향후 지역에 남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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