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연구소 읽는보고서 - 지역으로 이주하는 청년의 사회적기반 #3-5
하무(하진용의 별명)는 남원시 산내면에 산다. 2015년 4월에 이주해 지금까지 지내고 있다. 지금 그는 <지리산 이음>이라는 중간지원 조직에서 지역의 시민사회와 청년, 청소년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작은자유>라는 지역 청년모임에서 청년들이 동네에서 잘 살기 위해서 하고싶은 것들(전기와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는 '비전화기술' 등)을 배우며 작게 실천하고 있다. 남원시의 청년정책네트워크를 만드는 활동도 한다.
그는 군대를 제대한 후에 부모님과 가족들이 있는 산내면에 가서 ‘조금 쉬다가 올라와야지’라는 마음으로 가볍게 내려왔다. 같이 살던 동생의 권유로 당시 작은자유가 운영하는 <살래청춘식당 마지(이하 ‘마지’)>를 알게 되어 함께 일하게 되었다.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마지는 지역 청년들의 자립 기반으로 지역 내외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식당이었다.
그는 보통 연고가 없으면 청년들이 지역에 와서 살기는 힘든 것 같다며, 그래도 산내는 비교적 연고 없이 내려온 청년들이 많은 것 같다고 한다. 대안대학 등 지역 단체나 기관을 통해 들어온 청년들이 프로그램이 종료된 이후에도 머물고 있고, 또 그렇게 내려온 청년들의 지인들이 산내를 알게 되면서 알음알음 내려오고 있다. 산내에는 그런 기관이나 프로그램이 있어 이주한 청년이 초기에 부담 없이 숙식도 해결하고 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지역을 알 수 있다. 그는 직접 살아보기 전에는 알지 못하는 문제들을 탐색할 수 있는, 지역 진입 전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커뮤니티가 적응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에게 그런 완충지대 역할을 해주었던 것은 또래 커뮤니티 그리고 이들의 생존을 지지했던 어른들이었다.
그가 산내에 사는 것을 결정하는 데는 이러한 커뮤니티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커뮤니티가 가진 ‘환대의 태도’인데, 그러한 환대의 예시로 <지리산 청년활력기금>을 들었다. 이것은 산내면의 뜻있는 주민들이 십시일반 기금을 만들어 지역 청년에게 기본소득처럼 지급했던 것인데, 그는 그 돈에서 청년들에 대한 지역의 신뢰가 읽혔다고 했다. 그는 이주청년의 정착을 지원하려는 많은 정책이 그러한 ‘조건없는 환대’의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부분 지자체 지원사업이나 청년 이주 정책은 ‘이 사람들이 지원금만 빼먹고 도망가면 어떡하지’가 대부분이잖아요. 청년들이 이걸 알기 때문에 환대로 느껴지지 않고, 청년이 처음에 시골에 내려와서 뭔가 해본다고 하면 응원하는데, 그게 자기네들 시선에서 아닌 것 같다고 틀어지는 순간에 삭 사라지는 마법같은 일이 많이 일어나더라고요. 그러지 않으면 좋겠다는 거. 너네가 와서 뭘 하든 하고 싶은 거 하고 지내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고 지켜봐주는 환대의 태도.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랬기 때문에 산내에 잠시 머물려던 그가 정착했다는 느낌을 얻게 된 때는 역설적으로 식당 마지를 문 닫으려던 때였다고 한다. “내가 내 돈으로 만든 것도 아닌데 이렇게 문을 닫아도 되는가”라는 책임감이 느껴졌다. 그 책임감은 “지역에서 마지에게 기대하는 게 있어서 응원의 의미로 돈을 후원하거나 마음을 내어주었던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것을 정리한다는 데에서 오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마지를 닫기로 결정한 이유는 수익이나 노동시간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제까지 식당을 창업하고 운영하며 바쁘게 달려왔던 멤버들이 각자 지친 몸과 마음을 쉬면서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합의에서다.
마지 문을 닫은 후 그는 마을에서 “쉬면서 뭘 할지 잘 생각해보기로”했다. 그것이 지역에 사는 이주청년에게 쉬운 것이 아님에도 어느 정도 가능했던 이유는, 최소한의 주거와 생계, 관계 자원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집은 비교적 비싼 연세를 지불했지만 계약기간이 남아있었다. 1년 동안 받기로 한 청년활동기금의 남은 기간이 4개월 정도 있었다. 지역 단체에서 일감도 알음알음 조금씩 들어왔다.
제가 하고 싶은 활동을 하면서 지낼 수 있고, 주거나 경제적인 것들이 불안하지 않은 상태고, 그래서 정착하고 자립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게 가능하려면 뭐가 필요하죠? 시골에선 어쨌든 관계망이 필요하고. 지금 되게 좋은 조건에서 친구들이랑 살고 있는데, 산내에서 살면서 사람들하고 관계를 맺지 않아뒀으면 절대 얻지 못햇을 정보. 살면서 정보를 얻을 관계들을 맺은 거죠.
물론 모든 지역의 주민들이 이렇게 호의적이고 환대적인 것은 아니다. 지역에선 관계를 맺지 않고 생존하기가 어려운데, 관계 맺음의 장에서 약자인 청년은 자칫 원하지 않는 관계맺음을 감내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무는 굳이 그런 자리에 억지로 끼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적당히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다고 한다. 산내는 워낙 이주민 커뮤니티가 크게 구성되어 있고, 청년에게 환대를 보이는 구성원들도 많기 때문에, 원하는 관계 안에서 주민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
제가 필요한 만큼만 맺어도, 관계 맺고 싶지 않은 사람을 피할 수 있으니까요. 워낙, 내가 생각하기에 괜찮은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런데 귀농귀촌한 사람이 없는 지역에선 그렇게 관계 안 맺고 살긴 어렵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그는 지금 자신이 괜찮은 쉐어하우스를 마련해서 친구들과 함께 살고 있고, ‘4대 보험이 되고 마음에 드는 직장’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정착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운이 좋아서이지, 결코 이 지역사회 여건이 나아졌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증거는 4년 전 함께 활동했던 친구들이 모두 산내를 떠나고, 곧 자기만 남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별로 청년들 사는 게 나아지지 않았다”면서 떠나거나 새롭게 들어오는 친구들의 가장 큰 고민은 주거와 생계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했다. 적당한 집이 잘 나오지도 않고, 다른 농촌에 비해서 산내는 집값도 비싼 편이다. “일자리가 없는 건 아닌데”, “그런 일 하면서 여기서 지내고 싶지 않은” 일자리들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청년활력기금이나 마지 등을 통해 ‘환대’의 경험을 했지만, 지역에 자리 잡을 수 없었던 많은 청년들의 사례를 지켜보면서 전반적인 지역사회 여건은 여전히 청년에게 공적 ‧ 사적으로 자원을 내어주거나 물려주는 것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낀다.
그는 요즘 지리산 권역의 청년의 삶을 조사하고 있다. 그는 산내 외에는 연고 없는 청년이 내려올 여지가 많지 않다면서, 지리산 권역에 다양한 연고로 내려온 청년들 중에 지역사회 활동을 벌여가는 청년들의 특징을 보면 지역과 청년을 연결시켜주는 사건, 사람, 단체가 있고, 그것들이 “‘이거 해 볼래?’ 라고 자발성을 이끌어내는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고 했다.
함양에서 청년활동이나 시민사회 활동을 직업이 아닌 사이드로 하는데 그 청년이 그게 가능한 건 카페 빈둥에서 연결되는 사람들이 있어서 가능하고요. 남원도 청년문화협동조합이 작년에 생겼는데 그런 그룹을 만나면서 자기 활동이나 자기 하고 싶은 것과 연결해서 하고 싶은 걸 펼치는 경우가 있었어요. 하동에도 청년활동 하는 청년 분이 있는데 그 분 되게 재밌는 케이스였는데 지역에 어떻게 다시 돌아왔는데 거기서 댐 건설 비슷한 이슈가 갑자기 터져서, 그런 활동 하다보니 갑자기 연결되어서 자기 활동 하는 경우가 있고. 연결고리 사건, 사람, 단체를 만나는 게 큰 거 같아요. (연구자: 그 단체나 연결고리의 역할은 이 사람의 관계망을 넓혀주거나, 그 사람이 원하는 일을 하게 자원을 연계해 주나요?) 그 이전에 이 사람에게 ‘이거 해 볼래?’ 라고 불쏘시개로 쪼아보는 역할이 커요. 지역 청년들은 해 봐야지라는 자발성, 처음의 자발성 이끌어내는 게 되게 힘든데, 그걸 해본다 했을 때 자원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그는 이주 청년들에게 멘토나 비빌언덕이 되어주는 기반조직들이 대개 관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발생하는 부작용도 있다고 생각한다. 청년이 멘토나 비빌언덕의 기대나 지향에 부합하는 역할을 하지 않고 자기 삶을 펼치려 할 때에는 좀처럼 지지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기반조직이 덜 관계 중심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청년들이 주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내보내주는 포스트 비빌언덕”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주 청년의 정착을 위한 사업은 무엇보다 청년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잘 하게 해주고, 조건에 맞춰 사람을 쓰지 않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시에서 만든 거버넌스 조직에 들어갔다가 형식적으로 운영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실질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행정과 소통할 수 있는 조직으로 바꿔보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