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한옥마을. 더 늦기 전에 방문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전주. 정확히 말하면 전주 한옥마을을 좋아한다.
주욱 이어진 마을 안에 옹기종기 모인 한옥들, 경기전과 전동성당.
중간중간 흐르는 냇물, 나무 사이로 둥근 오브제. 맛있는 먹거리. 담배연기도 없고, 지나다니는 자동차도 없다. 도로의 굴곡도 없어 걷기도 좋다.
낮맥을 할 수 있는 수제맥주집에 외부 벤치에 걸터앉아 맥주를 한잔 홀짝인다면 흐르는 구름과 길고양이까지 잠시 쉬어도 좋다고 토닥이는 곳. 전주. 한옥마을
물론, 눈을 돌려보면 근본 없는 먹거리들. 전통적인지 의견이 분분한 한복들.
이제 와서는 많은 사람들이 상업적으로 변했다고 비판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한옥마을을 찾는 이유는 그런 이유에도 불구하고 한옥마을을 대체할만한 공간이 딱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전주를 방문한 것은 결혼 5주년.
한옥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와이프님의 배려로 시작한 전주 여행은
맛있는 것을 좋아하는 와이프님의 호응과 함께 시작한 디지털 노매드의 삶 덕분이지
어느새인가, 5년 내내 방문하고 있는 관광지이다.
이제는 마치 제2의 우리 동네 같은 느낌까지 드는 곳
뻔한 가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뻔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관광지인이상 새로운 가게가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겠고
근본 없어 보이는 문어꼬지나 치즈류 음식들 역시,
한옥마을을 방문하는 어린 학생들에게는 적당한 가격에 만족스럽게 즐길 수 있는 것들이다.
한복 역시 전통 지키느라 박물관에서 먼지만 뒤집어쓰다 사라지는 것보다는,
지금처럼 논란이 있더라도 모두가 자유롭게 즐기는 한국인의 옷이 되는 것이 맞다는 측이고.
그 외에 깨끗한 길거리, 주기적으로 청소하는 모습을 보면,
전주시 자체에서 매우 관리를 잘하는 것이 보인다.
내가 생각하는 문제는 이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던 전주라는 공간의 전통성을 잇고 있던 가게들의 변화다.
내가 처음 왔었던 5년 전만 해도, 할머니들 할아버지들이 둘둘씩 앉아 식사를 하는 곳이었다.
벽에는 어르신들을 배려하는 문구도 붙어있었다.
진X집을 매년 방문하면서 그 변화를 조금씩 느끼고 있었다.
어떻게 본다면 좋은 변화였다. 시간이 지나며 가게는 끊임없이 발전했다.
가게도 깨끗해지고, 인터넷 배달도 하고, 브랜딩도 열심히 한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 속에 무언가 잃어버린 것 같다.
그 여파는 코로나 이후로 크게 드러났다.
이제 더 이상 정겨운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 같은 관광객들만 몇 보일 뿐이다.
어느새인가 어르신들을 배려하는 문구도 사라졌다.
궁금하다.
어르신을 배려한 문구가 사라진 게 먼저일까? 어르신들이 발길을 줄인 것이 먼저일까?
분명한 것은 어른을 배려하던 진X집의 방향성이 어느새인가 사라지고 그저 평범한 소바집이 되었다는 점.
어르신들을 위하는 공간이었던 이곳은 이제, 그저 '할아버지가 손자와 함께 오던 곳'이라는 문구만 무덤의 묘비처럼 덩그러니 남아있을 뿐이다.
진X집의 경우는 스스로 방향성이 변화하면서 원래 가진 것을 버린 느낌에 가깝다.
반면, 의도와 상관없이, 세월의 영향으로 바뀐 곳도 있다. 한X집이다.
한X집에는 주인분이신 꼬부랑 할머니가 계셨다.
조그만 체구지만 앙칼진 목소리. 거친 말투.
하지만, 거침 가운데 담긴 따스한 배려 덕에 우리가 매번 찾아가는 곳이다.
물론 오모가리탕과 맛깔스러운 반찬들의 매력 역시 찾아갈 이유.
날이 따스할 때면 가게 앞 평상에서 흐르는 강을 보며, 오모가리탕을 먹는 게 즐거움이었다.
올해. 코로나와 바쁜 일상으로 평소보다 늦게 찾아간 한X집은 무언가 바뀌어있었다.
가장 큰 것은 할머니의 부재.
늘 반갑게 맞아주시던 할머니의 부재는
늘 할머니의 건강을 걱정하던 우리에겐 올 것이 왔구나라는 느낌이었다.
할머니의 부재는 예상치 못한 다른 변화를 불러왔다.
할머니가 안 계신 영향이었을까?
우리가 겨울마다 반기던 한X집 특유의 하얀 무나물이 사라졌다.
그리고 반찬의 맛도 조금씩 바뀌었다. 더 거칠고 더 진해졌다.
전체적인 퀄리티가 크게 나빠진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은 느끼지 못한 수준.
하지만.... 그 변화는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변화다.
더 늦기 전에 지금, 전주
전주를 대표하는 캐치프레이즈다.
유유자적한 느낌의 일러스트와 더불어 정말 매력 넘치는 캐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변해가는 전주의 모습.
캐치프레이즈의 '더 늦기 전에'라는 말이 지금 와서는 섬뜩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나는 전주를 얼마나 더 즐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