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5시반에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맥주를 한 캔 딴다.
약간 알딸딸한 채로 한손엔 맥주를 들고, 지하철에 탄다.
이른 아침이라 지하철에 사람은 거의 없지만, 혹시나 남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지하철 구석 자리에 서서 타블렛을 꺼내 리디북스를 연다.
맥주 한모금에 책을 안주삼아, 지하철진동을 음악삼아 정처없이 달린다.
일하는 백수가 된 지 2년. 내 삶의 일부분이 된 생활 중 하나가 '혼자만의 시간'이다.
나란 워낙 규칙적으로 사는 것밖에 못하는 인간이라(자랑같은 게 아니라, 그냥 내 단점이라고 느끼는 부분이다. 아는 동생은 너무 규칙적인 날 보고 사이보그라고 부른다.)
일부로라도 내 삶에 '깨트림'을 끼워넣기 위한 방법 중에 하나로 시작한 일정.
대충 프로세스는 이렇다.
아침에 맥주를 한캔 깐다.
기분내키는 대로 이동한다.
되도록이면 새로운 장소로 향한다.
되도록이면 다른 길로 간다.
서점에 간다면 다른 책을 읽는다.
점심은 낮맥을 한다.
이정도의 생각만 가지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날.
물론, 워낙 경직된 인간인지라 이것도 그렇게 자유롭게 되진 않는다.
나름 전날 어디를 갈지, 어떻게 움직일지 계획을 짜게 된다.
하지만, 도착하는 곳이 새로운 곳이라는 건 동일하다.
모르는 곳에서는 계획대로 움직일수 없으니 강제로 자유로워지는 상황이다.
되도록 한달에 한번은 가지려고 하는 시간이고, 그때마다 가는 곳도 달라진다.
한번 간 곳을 또 가는 일도 종종 있지만, 그때마다 움직이는 경로는 다르게, 눈에 보이는 건물도 다르게.
못본 골목이 있으면, 무작정 들어갔다가 돌아나오기도 하고.
어느날은 기차를 타고, 일단 강릉으로 가서 바다를 실컷보고, 맥주를 실컷마시다가
돌아오는 버스에서 잠이 들어, 엉뚱한 곳에 내린다음, 네이버지도를 친구삼아 열심히 기차역으로 걷다가 기차를 놓친 적도 있고
어느날은 창덕궁으로 가서 정취를 구경하다가, 경복궁, 박물관, 서점을 맴돌기도 하고.
어느날은 생각없이 인천으로 향해서, 이가게 저가게 기웃거리다가, 뜬금없이 바다열차에 올라타 한바퀴 돌기도 했고.
그렇게 알딸딸한채로 돌아다니다보면 머리가 비워지고, 거기에 새로운 생각이 들어찬다.
경직된 내가 깨어지는 순간. 늘 무언가 얻게 된다는 것이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