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의 덕목
많은 사람들이 메모를 한다.
하지만 좋은 메모를 만드는 사람은 드물다.
오히려, 나쁜 메모의 쓰레기 더미만을 만드는 사람도 많다.
어떤 메모가 좋은 메모일까?
우리는 어떤 메모를 만들어야 할까?
간결한 메모가 좋은 메모다.
실제 독일의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이 작성한 메모의 50% 이상은 1~2줄의 짧은 문장이다.
메모를 쓰는 것도, 읽는 것도 뇌를 혹사시키는 일이다.
아름다운 미사여구나, 관련된 재미있는 사례는
다른 사람을 위한 글에 필요한 것이지, 내가 읽을 메모에 들어갈 내용은 아니다.
메모는 오로지 당신을 위한 지식의 조각이자 뼈대이다.
다시 읽었을 때 오해가 없도록, 당신이 읽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도록
꼭 필요한 내용만을 간결하게 적어야 한다.
(메모에 사례가 정 필요하다면 사례만 담은 메모를 따로 만든 뒤
참조 링크를 거는 편이 차후 재활용을 위해서도 좋다.)
완전한 메모가 좋은 메모다.
불렛 저널의 저자 라이더 캐럴은 며칠 뒤에라도 내가 적은 메모를 이해할 수 없다면,
그 메모는 아무 쓸모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며칠 뒤 이해할 수 없는 메모는 불완전함을 의미한다.
불완전한 메모는 지금의 당신만 이해할 수 있는 맥락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불완전한 메모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메모로 변한다.
메모가 변해서가 아니다. 당신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메모를 작성했을 때의 무의식적으로 당연시했던 당신의 관심사나 주변 상황, 당시의 지식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당신에게 더 이상 맥락으로 동작하지 못한다.
불완전한 메모를 줄이기 위해서는, 지난 메모를 수시로 다시 읽어보고,
명확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지점을 찾아 명확하게 다듬고 보충해야 한다.
1년 뒤에 보아도, 관심사에서 멀어지더라도, 상황이 바뀌었더라도,
메모의 내용을 원래 의미대로 이해할 수 있는 메모가 완전한 메모. 시간과 공간에서 독립된 메모.
좋은 메모이다.
찾기 쉬운 메모가 좋은 메모다.
아무리 많은 메모가 있어도, 내가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특히, 디지털 메모는 만들기 쉬워, 중요하지 않은 메모가, 급격히 늘어나기 마련이고,
그로 인해 정작 필요한 메모는 찾기 어려워지게 된다.
종이 메모를 사용한다면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항상 염두에 두자.
인덱스카드라면 주제별로 모으고, 카드별로 번호를 매겨서 정리하자.
자주 찾는 메모는 주제+번호로 기억에 남아 더욱 빠르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메모를 사용한다면 검색어를 충분히 고민하자.
가장 좋은 검색어는 메모의 본문보다는 제목에 우선 포함되는 것이 좋다.
많은 앱들이 제목을 우선해서 검색 결과를 내놓기 때문이다.
파일은 같은 주제의 폴더에 보관하고, 가능할 경우에는 참조할 링크나, 태그를 설정하자.
태그의 개수는 최소화하자. 늘어날수록 나에게 독이 된다.
메모가 늘어나는 것을 늘 경계해야 한다.
수시로, 메모들을 확인해서 나에게 의미가 사라진 메모는 미련 없이 제거하자.
특히 디지털 메모의 빠르게 작성할 수 있다는 장점은 필요 이상으로 빠르게 늘어나는 메모를 만든다.
가치를 판단하고, 가차 없이 제거하자.
힘겹게 얻은 메모가 좋은 메모다.
내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내용을 메모로 만들지 마라.
특히 빈 카테고리를 채우기 위해, 무의미한 메모를 만드는 것을 주의해라.
이미 아는 내용의 메모는 만들기도 편하고, 만족감을 주는 메모다.
하지만, 자기만족 이외에는 사용할 일이 없는 메모이기도 하다.
검색하면 5초 만에 튀어나오는 뻔한 내용 역시 메모로 만들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필요할 때 다시 검색하는 것이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아 검색 페이지를 몇 번씩 거쳐가며 1시간 넘게 검색해 얻은 지식,
수많은 시도와 실패, 고민 끝에 얻은.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노하우.
이런 지식을 메모로 만들어 두었을 때, 나에게 큰 힘이 된다.
통찰을 주는 메모가 좋은 메모다.
내가 평소에 늘 생각하는 내용이 아니라, 나의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을.
나의 근거 없는 의심을 뒷받침해주는, 단단한 근거를.
내 주장과 비슷하지만, 결이 다른 주장을.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가 알던 지식과 유사하다고 직감이 이야기하는 내용을.
머릿속에 떠오른 이전엔 발견하지 못했던 바다의 아름다운 묘사를.
메모로 만들어야 한다.
통찰이 담긴 메모는 그것만으로 가치 있다.
또한 통찰이 담긴 메모는 내가 해당 주제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할 시점에,
내가 해야 할 고민을 빠르게 답해주며 동시에 나의 의견을 반박하기도 하는,
의미 있는 토론 상대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