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는 임무를 완수하고 소멸한다.
메모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메모의 사전적 정의를 알아보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메모의 정의는 아래와 같다.
메모란 '다른 사람에게 말을 전하거나 자신의 기억을 돕기 위하여 짤막하게 글로 남김. 또는 그 글.'
즉, 메모의 대상은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이미 기억한 것을 메모하지 않는다.
1+1=2를 메모하지 않는다.
부모님의 이름, 아이의 이름, 연인의 이름을 메모하지 않는다.
하늘의 파란색을 메모하지 않는다.
메모의 대상은 아직 기억하지 못했지만, 꼭 기억해야 하는 것들이다.
이는 인간의 기억력은 완전하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정확히는 무한에 가깝다.
cnsnevada 의 기사에 따르면 뇌의 용량은 약 2.5페타바이트에 달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기가바이트 단위로 환산하면 무려 250만 기가에 달한다.
최신 휴대폰 용량의 몇 만 배이며, 하루에 고용량 사진 4000장을 찍어도, 평생 쓸 용량이다.
그만큼 뇌의 용량은 거대하다.
그 거대한 용량 덕분에 우리는 언어로 대화할 수 있고, 글을 읽을 수 있으며,
몇십 년 전의 기억도 뚜렷하게 떠올릴 수 있다.
그런데 왜 이 거대한 용량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원하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왜일까?
뇌는 기억할 것을 철저하게 고른다.
기억은 감각 기억, 단기 기억, 장기기억이 있다.
이 중에서 몇 개월~ 몇십 년까지 유지되는 기억을 장기기억이라고 한다.
모든 것이 장기기억이 되면 여러모로 문제가 크기에 뇌는 장기기억으로 가는 것들을 깐깐하게 선별한다.
(어제 문턱에 찧은 새끼발가락의 고통이 평생 뚜렷하게 떠오른다고 생각해보라. 끔찍할 것이다.)
장기기억은 저장해! 단백질(CREB-1)과 저장하지 마! 단백질(CREB-2)의 싸움의 연속이다.
강한 자극을 통해 저장해! 단백질이 자주 이길수록 장기기억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선천적으로 기억력이 좋은 사람은 저장하지 마! 단백질이 유전적으로 약하기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장기기억으로의 저장을 성공하면, 뉴런에서 새로운 가지가 뻗어 나오고, 뇌의 물리적 배선이 바뀐다. 물리적 배선이기에 몇십 년 동안 유지가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우리의 의지로 우리가 저장할 수도, 저장할 기억을 선택할 수 없다.
의지대로 저장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노력과 꽤 긴 시간이 필요하다.
기억되기까지 그 노력과 시간을 보조하기 위해 메모가 필요하다.
메모는 우리가 아직 기억 못 했지만, 꼭 기억해야 하는 것들을 담는다.
메모의 임무란 인간이 최대한 잘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다.
그리고 메모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으로 메모의 임무는 완수된다.
불필요한 메모의 마지막은 소멸이다.
메모는 소멸하기 위해 존재하다.
우리의 임무는 기억할 것을 메모함과 동시에 메모에 담긴 내용을 최대한 정확하고,
빠르게 250만 기가바이트의 광활한 뇌에 옮기고, 메모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임무에 충실한 메모를 남기고, 임무에 게으른 메모는 보완하거나, 제거해야 한다.
자, 메모의 임무를 완수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