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TD 기본 프로세스 5단계
GTD의 기본 프로세스는 5단계다.
많은 GTD설명에서 단골처럼 나오는 내용이라, GTD를 한 번쯤이라도 훑어본 사람이라면 익숙한 내용일 것이다.
나도 남들처럼 뻔한 이야기 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오리지널과 개정판의 명칭이 조금 다르긴 한데, 실제 의미는 비슷비슷하니까 적당히 알아도 된다.(나도 헷갈린다)
자세한 내용은 앞으로 긴 시간을 걸쳐(...) 차차 설명하고, 지금은 이 큰 틀만 간략히 설명해보자.
수집(Capture) - 아직 파악되지 않은 것을 모조리 일단 수집하는 과정이다.
명료화(Clarify) - 수집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분류하는 과정이다.
정리(Oranize) - 파악한 것을 필요할 때 볼 수 있도록 상황별로 정리하는 과정이다.
검토/반영(Reflect) - 앞서 정리한 정보와 함께 내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수시로 갱신하는 과정이다.
실행(Engage) - 상황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일을 하는 과정이다.
뭔가 그럴듯하긴 하지만, 어렵기도 하다. 영어가 섞여서 더 그런 것 같다.
위 5단계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용어도 익숙하지 않은 데다가 내용은 그렇다 치고,
저게 무슨 도움이 되나, 왜 필요한가? 싶기도 할 것이다.
게다가 인간의 단기 기억은 3개 이상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한계가 있다.
(아기돼지 3형제, 삼총사, 삼국지를 떠올려보자. 인간은 3이 넘어가는 것은 보통 기억에서 지운다.)
그래서 GTD 5단계의 일부분을 잊어버리면서, 실패하는 과정을 거치기 쉽다.
일부 기억의 파편만으로 GTD를 오해하는 안타까운 일도 종종 발생한다.
하지만 용어만 어려워 보이지, 알고 보면 GTD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GTD는 인간의 행동 프로세스를 그대로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다른 포스팅에서 원시인의 예를 들며 이야기했던 내용인데 다시 한번 보자.
인간이 행동하고 학습하는 과정은
인지(나무 열매다) -> 판단(먹어도 될까?) -> 행동과 결과(먹으니 배탈) ->학습(이 열매는 먹지 말자)-> 인지(먹고 배탈 났던 그 열매다)이다.
행동 결과에 따라 학습이 달라지며, 이것은 다음 판만의 기준이 된다.
이것은 원시시대 때부터 달라지지 않은 인간의 기본 프로세스다.
GTD의 5단계를 자세히 보면, 이 앞서 이야기한 인지-학습 사이클이 2번 돈다는 걸 알 수 있다.
인지한 정보를 수집 -> 정보를 판단 -> 판단한 것을 정리해서 모으는 행동 -> 그 결과와 현재 상황을 판단하고 -> 판단한 상황에 따라 실행
전후반 사이클별로 나누면 아래와 같다.
전반부: 수집하기 (정보를 인지) → 명료화(판단) → 정리하기(행동)
후반부: (정리한 정보를 인지) → 검토하기(판단) → 실행하기(행동)
(왠지 5단계가 6단계가 된 것 같지만 신경 쓰지 말자.)
이 2단계는 인지-학습 사이클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판단하는 대상이 다르다.
GTD 프로세스의 전반부는 수집한 외부의 일거리를 파악하는 과정이다.
반면 GTD 프로세스의 후반부는 나 자신의 상황을 파악하는 과정을 거친다.
상대방을 파악하고, 자신을 파악하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손자병법을 이야기하다 보면 꼭 한 번은 나오는 이야기이며,
풀어보면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우면 백번 이긴다는 의미이다.
중요한 것은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서양 아저씨 데이비드 앨런이 이야기한 GTD 5단계는
손자병법의 '지피지기'를 그대로 따른다. 동양의 신비란.
GTD 프로세스 전반부는 일거리(적)를 우선 파악하고, 그걸 정리하고 필요할 때를 위해 저장하는 과정이다.
후반부는 전반부에서 모은 정보와 함께 나 자신의 상황을 파악하고, 상황에 따라 업무(적)를 처리하게 된다.
이왕 손자병법 이야기가 나왔으니, GTD 5단계 프로세스를 전투에 비유해보자.
좀 더 확 이해될 것이다.
수집하기는 뭔가 눈에 띄는 정보를 모으는 과정이다. 예를 들면
지나가던 촌부의 '지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구먼유~'같은 신고
멀리 숲 속에서 무언가에 놀라 날아오는 새 떼.
본부 쪽에서 피어오르는 봉화
저 멀리서 다가오는 정체모를 무리들
갑자기 일어나는 불안한 예감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길한 별똥별
수집하기에서 중요한 것.
촌부의 한마디나 날아오르는 새 떼를 보고 바로 전군 돌진!!! 을 외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특히 한창 전투 중이라면 말이다.
미래의 적은커녕, 지금 싸우는 적조차 제대로 물리치지 못한 채 아군은 너덜너덜해질 것이다.
'당연한 거 소리 아냐?'라고 생각한다면 스스로를 되돌아보자.
중요한 일을 하다가 이메일이나 상사의 요청 때문에 하던 일을 중단하고,
들어온 일부터 허겁지겁 처리하다가 정작 중요한 일 마감은 놓친 적은 없나?
그렇다면 당신은 촌부의 한마디에 휘말려 전투 중에 군대를 돌린 것이다.
당신이 한창 일할 때는 정보수집만 빠르게 하고 하던 일로 복귀해야 한다.
촌부가 본 것이 뭔지 파악하는 것은 일이 끝난 뒤에 하자.
그렇다고 들어온 정보를 마냥 무시해서도 안된다.
정보에 흔들리지 않되, 잘 수집해두고 전투에 집중하고,
전투가 끝난 뒤 세밀히 살펴보는 게 순서다.
그 어떤 사령관도 촌부의 한마디나 날아오르는 새떼를 보고 전군을 돌진시키지 않는다.
일단 수집한 다음, 전투가 끝나고 정비하는 시간 동안 촌부의 말이 뭔지,
그가 말한 게 사실인지 정찰병을 보내 확인을 할 것이다.
정찰병을 보내 확인하는 것. 그것이 명료화 - 파악 과정이다.
정찰병의 보고는 대충 이렇게 나뉠 것이다.
그냥 썩은 나무둥치라 신경 안 써도 될 것 같다.(버리기)
적이 2주 뒤면 도착해 우리를 공격할 것 같다. 대비해야 한다.(일정표)
멧돼지라 잡아서 먹으면 될 것 같다.(참고자료)
수적이라 바다에 전문인 해군에게 연락해서 처리해야 할 것 같다(위임)
적인 것 같은데 너무 멀어 확실하지 않다. 다가올 때까지 좀 더 살펴보자.(언젠가/아마도)
적이지만 여러 병종이 섞여있어 차근차근 유도해서 처리해야 할 것 같다. 작전을 짜 보자.(프로젝트)
병종 중에 딴 놈들은 그렇다 치고 정찰병은 우선 처리해야 할 것 같다.(다음 행동들)
홀로 낙오병인 것 같다. 작전은 필요 없고 지금 바로 잡아서 감옥에 넣자.(2 분룰. 바로 실행)
이렇게 나뉘었다고 마냥 전군 공격! 하는 것 역시 아니다.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지형 파악하고, 잡은 멧돼지는 보관하고, 어디서 싸우면 좋을지 등등의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야 실제 전투에 들어가도 허둥대지 않을 것이다.
정리하기는 앞서 명료화한 내용을 토대로 다양한 작전 안을 짜고,
식량창고를 채우고, 무기를 정리하는 과정이다.
어디서 싸워야 할지, 적이 언제쯤 들어올지, 전투지 근처에 위험한 요소는 없는지,
도움을 줄 아군에게 연락할 수는 없는지, 할 거면 적이 어느 정도 가까이 왔을 때 해야 할지
전투가 언제 벌어져도 상황에 맞게 작전 안과 식량, 무기들을 즉시 꺼낼 수 있도록 잘 보관하는 것이 중요하다.
적군이 코앞인데, 작전지도를 찾느라, 창고 안을 뒤지느라 미적거리면 승리는 멀어진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러시아는 큰 고전을 겪는다. 원인이 무얼까?
답은 내부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로 전쟁을 치렀기 때문이다.
'적'은 잘 파악했다고 해도 '나'를 파악하지 못하면 결국 위태로워진다.
검토하기는 전쟁으로 치자면 아군의 상태를 점검하는 시간이다.
아픈 병사는 없는지, 혹시 전염병은 아닌지, 병사의 숫자는 몇인지
무기는 충분한지, 혹시 녹이 슨 무기는 없는지
병량은 충분한지, 상하거나, 쥐가 먹진 않았는지
연락한 해군은 적을 잘 처리하고 있는지, 해군의 연락체계가 바뀌진 않았는지
전쟁의 목표는 그대로인지, 혹시 화평을 맺고 있진 않은지.
2주 뒤에 온다는 적은 지금 어디까지 왔는지
다음 전투는 어디서 일어날 것인지
주변에 무슨 일은 없는지
내부를 점검하는 것은 언제 해야 할까?
당연히 전투에 문제가 없을까? 의문이 들 때다.
그때마다 의문이 드는 부분을 검토하면 된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이 발견되면 정보든 식량이든 채워 넣으면 된다.
중요한 것은 내가 불안하지 않게,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실행하기는 일을 처리하기. 전투에 돌입하는 것이다.
다만 실행하기에서 중요한 것은 실행 자체가 아니다.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고, 그에 맞추어 전장과 적을 선택하는 것이다.
내가 '이기는' 판을 만드는 것이다.
전장이 물바다인지, 안개 속인 지, 평야인지, 숲 속인지 (상황)
적군과 싸워야 하는 아군의 상태는 어떤지.(에너지)
여러 적 중 전황을 바꿀 수 있는 상대는 누구인가. (중요도)
적군의 대장을 처치하기 위해서 어떤 적들을 먼저 제거해야 하는가 (다음 행동)
당연히 대군과 평야에서 싸울 때와, 안개 속이나 숲 속에서 싸울 때는 다르게 싸워야 한다.
적은 많고, 아군은 수적 열세에, 배탈까지 난 상황이라면?
전면전보다는 게릴라전을 택해 야금야금 적의 수를 줄이는 게 낫다.
코앞에 적의 대장이 있지만, 싸워도 지는 형국이라면? 벼랑 끝에 몰린 것이 아닌 이상, 분을 참고 물러나야 한다.
이왕이면 우리가 가장 유리한 고지에서 싸우고, 상대방이 유리한 상황에는 전투에 돌입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중요한 적이라도 내가 질 것 같은 상황에서는 싸우면 안 된다.
업무 역시 마찬가지다. 다음 회의까지 15분 남았다면, 1시간짜리 주요 입무에 돌입하면 안 된다.
그렇다고 휴대폰 게임을 켤까? 그렇다면 오늘도 야근이다.
GTD 프로세스를 잘 따랐다면 당신의 수첩에는 10분과 회의라는 상황에 걸맞은 행동이 적혀 있을 것이고
그것을 우선 해냄으로써, 회의에서 좋은 결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업무에 영향을 미치는 일을 처리해야 하지만, 그 걸 위해서 먼저 해야 하는 일들도 파악하며 진행해야 한다.
GTD 역시 중요도보다 오히려 상황을 가장 중요시한다.
적을 처치하는 것(행동) 중요하지만, 피해 없이 이길 수 있는 판을 짜는 것(상황 파악)이 더 중요하다.
자, 끝으로 그림으로 한번 더 복습해보자.
지하철에서 서서 그린 거라 선이 비뚤지만, 상상하기엔 나쁘지 않을 것이다.
아마 이 정도면(?) GTD프로세스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손자병법에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은 없다.
원래 손자병법 모공 편에 나온 말은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100번을 싸워도 다 이긴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결코 위태롭지 않다는 의미다.
GTD의 목적은 물과 같은 마음이다.
100번을 싸워도 결코 위태롭지 않다 와 물과 같은 마음은 닮아있다.
손자병법의 기본은 '이기는 판을 짜고' 시작한다는 것이다.
GTD 프로세스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상황에서 용맹하게만 싸워서, 승리했지만 깊은 상처와 피로로 번 아웃하는 것보다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만반의 준비로 적(업무)을 처리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전진하는 방법
그것이 바로 GTD이다.
다음 시간에는 수집하기를 좀 더 디테일하게 살펴보며, 우리의 평화를 호시탐탐 노리는 3가지 적 진영에 대해 서도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