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이 책의 저자. 곤도 마리에는 정리 정돈 전문가다.
넷플릭스에서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Tidying Up)'이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전 세계에 소개되었다.
사실상 원하면 얻을 수 있는 사회. 오히려 너무 많이 가진 나머지 고통받는 사회에
그녀의 다큐멘터리는 세계적으로 호응을 얻으며 이른바 '곤 마리' 열풍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 책 역시 정리에 관한 책이다.
사실 읽을 생각은 없었던 책이다.
내가 딱히 미니멀리스트를 원한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그럴 때가 있다.
딱히 원하지도 않았고 관심이 없던 책이
내 삶에서 조금씩 이름을 드러내더니,
갑자기 눈앞에 등장하는 경우.
이럴 때는 운명인가 싶어 읽게 되고, 보통 그런 책은 나에게 큰 울림을 준다.
곤도 마리에의 '정리의 힘'이 그런 경우였다.
안성은의 믹스(Mix)라는 책을 한창 읽고 있었던 때였다.
중간에 곤도 마리에의 이야기가 나오길래,
늘 그렇듯 예시 중 하나로 넘어갔다.
며칠 지났을까, 우연한 기회에 와이프님과 '정리의 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신기하다 싶었다. 살까 고민도 되던 차.
믹스를 다 읽어갈 때 즈음, 읽을 만한 책이 없을까 싶어
리디 셀렉트(정액제로 여러 권을 볼 수 있는 서비스)를 뒤적거렸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없었던, 정리의 힘이 리디 셀렉트에 떡 하니 올라온 것이 아닌가.
.... 이 정도면 삼고초려라도 불러도 될 지경.
읽을 운명이라 생각하고 망설임 없이 책을 다운로드해 읽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수납과 정리에 자신 있다고 생각했다.
적절한 수집함을 책상 위아래에 배치 정리하고,
나름 필요한 깔끔하게 정리한다고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곤도 마리에의 이야기는 뜨끔하게 만들었다.
그렇게까지 수납 제품을 좋아했지만 그것이 진리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수납법으로는 정리가 해결되지 않는다. 수납은 결국 벼락치기 해결법에 불과했던 것이다.
수납법에서 가장 골치 아픈 문제는 물건을 안에 넣어버리면 언뜻 정리 문제가 해결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수납 제품의 내부가 꽉 채워질 무렵에는 다시 방이 어수선해지고, 또다시 안이한 수납법으로 내달리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정리는 수납이 아니라 ‘버리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물건을 버릴지 남길지 선별 작업이 끝날 때까지는 절대 수납법을 활용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서랍 안을 보았다.
서랍은 내가 처음 샀을 때와 달리 이미 꽉 차 있었다.
이중에 내가 정말 사용하는 건 무엇인지 생각을 해 보았다.
많은 물품 중 3~4 개가 고작.
그 외는 내가 별로 관심 없는, 샀으니까 버리지는 못하는 것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곤도 마리에의 말이 맞았다.
수납은 해결하지 못한다.
결국 물건들은 버리지 않는다면, 잊힌 채로 자리를 차지하고,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항상 나의 주의력을 일부 빼앗게 된다.
(최근 적은 글 - 읽은 책 도서관 만들기를 포기한 이유가 정리의 힘에서 영향을 받아 작성되었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는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만 뇌 과학적으로는 옳은 이야기다.
GTD 수집하기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내 인지 범위 속, 스트레스를 주는 물건이 많을수록
나는 지속적으로 정신에너지를 깎이게 된다.
하지만 인지 범위 안의 요소 모두가 볼 때마다 '설레는' 것이라면 어떨까?
우리가 좋아하는 대상은 우리의 정신 에너지를 오히려 돋우게 된다.
우리가 힘들 때 좋아하는 배우의 사진을 보며,
연인을 바라보며,
아이들을 바라보며 에너지를 얻는 이유다.
모든 것을 없앨 수 없다면, 설레는 것만 남기는 것도
그 가능성을 제쳐두고서라도 방법이긴 하다.
설레는 것만 남기기.
필요한 것이라면 설레지 않더라도 버리라는 이야기일까?
굳이 그렇진 않을 것이다. 그건 사실 낭비일 테니까.
하지만, 그냥 쓰던 것을 설레는 것으로 바꿔보는 시도는 한 번쯤 해보는 것이 좋다..
나는 최근에 S펜 뚜껑을 잊어버리면서, 고양이 발 모양 연필 캡으로 바꾸었다.
4개 천 원이니, 1개 250원. 싸다.
하지만 볼 때마다, 사용할 때마다 설레고, 행복해진다.
나뿐만 아니라 보는 사람들도 즐거워하는 걸 보면 바꾸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정리의 힘은 수납에 관련된 저자의 많은 고민과 경험에서 우러나온 실질적인 노하우가 담긴 책이다.
최근 GTD연작을 시작하면서, 자료관리에 대해 많은 것을 고민하고 있는데
'정리의 힘'을 보면서 의외로 자료 관리에 대한 힌트를 많이 얻고 있다.
사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자료든 옷이든 '수납'에 대한 고민이라는 점은 같으며,
사실 인간의 뇌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한다.
(마셜 맥루한에 의하면 자동차와 자신의 몸도 구별 못한다 카더라.)
자료관리, PKM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맥락이 다르게 읽힐 부분, 도움받을 부분이 상당히 많다.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라도 지식근로자라면 읽을 가치가 충분한 책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