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호 노무사 Oct 25. 2018

 당하지 않습니다 : 작가의 말

소설로 읽는 노동법을 출간합니다.

브런치 위클리 매거진에 올렸던 [소설로 읽는 사회생활과 노동법]의 글들을 모아 이번에 책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책 출간의 기회를 주신 브런치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브런치의 통계수치를 보니 전체 20회 차의 글을 총 80만 명이 보았더군요.

책 출간 예상 일자는 11.5일입니다. (각 서점에서 예약판매도 받고 있습니다)


책이 출간되기 전에 책에 대한 홍보도 할 겸 조금씩 조금씩 이 책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책 제목은 "당하지 않습니다"입니다.  

제목은 출판사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했습니다.

처음에는 표현이 조금 강하지 않나 싶었는데, 곰곰 생각해 보니 온갖 갑질로 끓어오르는 분노를 속으로 누르고 눌러 간신히 밖으로 튀어나온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짧은 문장 속에 많은 것들을 담고 있는 것 같아, 맘에 듭니다.   


책 뒷머리에 작가의 말을 실었습니다. 이 책을 향한 제 마음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작가의 말


"함께 외치면 세상이 바뀝니다!"


진리의 송곳이 각자의 양심을 찌를 때, 그리고 그 상식적인 양심의 소리가 밖으로 드러날 때, 사회는 변한다고 생각했다.      


무언가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빨간 머리띠를 굳게 동여매고, 두 주먹 불끈 쥔 채, 익숙하지 않은 구호를 외칠 만한 용기가 없었다.

‘단결, 투쟁’이라는 구호가 새겨져 있는 허름한 조끼를 입고 사람들 앞에 서는 것도 부끄러웠다.

노동조합이라면 아무 이유도 묻지 않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의 편견도 싫었다.

하청업체와 비정규 노동자의 목소리에 눈과 귀를 닫아 버린 일부 공공기관과 대기업 노조의 이기적인 민낯을 보고 실망하기도 했다.

오히려 침묵이 편했다.

갑질을 볼 때마다 살짝 양심의 눈을 감으면 됐다.


그러자 나의 양심도 침묵 속에 말라비틀어져 갔다.     


나를 둘러싼 다른 이들도 침묵했다.

암흑과도 같은 침묵 속에서 아메바와 같은 조그마한 괴물들이 태어났고 형체조차 보이지 않던 조그마한 생명체가 소리 없는 양심을 먹으면서 끝도 없이 자라 갔다.

진격의 거인처럼, 인간성을 잊어버린 괴물들은 진리를 사냥하며, 사회 공동체를 파괴했다.

어느새 그런 전쟁이 사회의 일상이 되었다.

낮에는 카페인의 힘으로 밤에는 알코올의 힘으로 힘겹게 삶을 유지하는, 과로의 천국이 되었다.

사주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백주대낮에 부하직원에게 손가락질을 해대고, 쌍욕을 퍼부어대도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는 갑질의 천국이 되었다.      


을이라고 불리는 이들조차 다시 병과 정으로 분화되었고,
을은 병에게, 병은 정에게 갑이 되었다.

정규직은 비정규직과 연대하지 않았고, 원청업체는 하청업체를 희생양 삼아 스스로의 배를 채웠다.

특성화고 학생들과 실습이 필요한 대학생들은, 열정 페이라는 희한한 단어를 삶이라는 학교에서 배웠다.

노동의 권리를 주장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프리랜서 작가들과 외주제작사 PD들이 과로로 쓰러지는 모순이 이어졌다.      


차별과 희생이 시대정신이 되었다.

연대의 정신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아주 오래된 전설이 되어 버렸다.

도덕의 최소한에 불과한 법조차 함부로 얘기할 수 없었다.

상식적인 법의 권리를 외치는 이들에게 사회생활도 못하는 무능한 사람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남녀평등이라는 당연한 법의 목소리에도 혐오주의자라는 주홍글씨를 새겨 버렸다.

IMF라는 기나긴 터널에서 빠져나와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우리 사회는 각자도생의, 소리 없는 전쟁터가 되어 있었다.

온갖 벌레들로 가득한 혐오 사회가 되어 있었다.      


노래패에서 노래를 불러보기도 했다.

노래는 젊고 소심한 내가 할 수 있는, 괴물들에 대한 최대한의 저항이었다.

하지만 연대를 외치는 노랫말의 가사가 현실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 칼과 총이 서로의 심장을 겨누는 듯 보였다.

하얀 종이 위에 곱게 새겨져 있던 고귀한 노랫말들은 전쟁과도 같은 붉은 현실 속에서 무릎을 꿇었다.      



     

법을 싫어했다. 아니, 싫어했다기보다는 무시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무시의 결과는 무지였다. 법에 대해 무지했다. 법전의 한 단어가 바뀌면 일상의 삶이 요동친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에야 비로소 법전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법전에 새겨져 있는 언어는 우리말이 아니라 외계어 같았다.

노동법 해설서에 쓰여 있는 학자들의 말도 읽기가 쉽지 않았다. 학자의 언어가 아닌 현실의 언어로, 직장인들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노동법 책을 써 보고 싶었다.  

    

노동법은, 갑질 가득한 치열한 전장에서
노동자에게 주어진 최후의 방패 같은 거다.


노동법은, 노동자가 전쟁터의 병사가 아니라 존엄한 인간이라는 걸 고독하게 외치고 있는, 마지막 선지자 같은 존재다.

사회생활의 현실과 노동법의 고독한 외침을 소설의 옷을 입혀 담아 보고 싶었다.

물론 노동법은 직장 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직장 내 갑질에 저항하는 작은 첫걸음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글을 다 쓰고 보니, 경험의 울타리를 넘어서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사라진 권리를 부르짖던 서연의 목소리 속에 교내 알바를 하던 나의 대학시절이 묻어 있었고, 인사팀에서 각종 기안을 하며 자괴감을 느끼던 민주의 모습은 인사팀에서 근무할 때의 내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조가 유일한 대안이라 생각했지만 노노 갈등을 겪으며 무너질 때의 참담함은 민기의 눈물 속에 녹아 있었고, 노동법의 이상만으로 현실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는 한신의 독백은 곧 나의 고백이기도 했다.     


좀 더 재미있게 노동법의 세계에 들어올 수 있도록 소설이라는 장르를 택했지만, 현실의 경험을 넘어서지는 않았다.

다 쓰고 나니 등에 짊어지고 있던 큰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하기도 하고, 못다 한 이야기들이 순간순간 떠올라 아쉽기도 하다.

언제 다시 이런 글을 쓰게 될지는 모르겠다.

다시 키보드를 치며 그리고 있을 세상의 풍경은 어떨까?

이 소설이, 말도 안 되는 과거의 유물이 돼 있는 그런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5년 뒤, 10년 뒤의 서연은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티끌같이 작은 응원을 바람결에 실어 이 땅의 모든 서연에게 보낸다.     

이 책이 양심에 소곤대는 조그마한 귓속말이라도 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교보문고 goo.gl/iqvTuC

예스24 goo.gl/HhLpQ4

알라딘 goo.gl/5LExb6      


매거진의 이전글 작은 것이 아름답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