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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호 노무사 Feb 21. 2019

1. 인사팀 은서에게.

임금은 누더기다.

인사팀 은서에게.     

 

은서야. 인사팀에 발령받았다는 소식, 들었다.

이런, 인사팀이라니. 삼촌이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삼촌도 옛날 옛날 옛적에 인사팀에서 근무했던 것 기억나지? 솔직히 나는 잘 안 맞았어. 사람을 관리한다는 거, 내 성향과는 달랐던 거지. 다른 사람들은 조직의 핵심부서라고도 하지만, 평안감사도 자기가 싫으면 그만이지, 뭐.  


어쨌든 은서 너는 인사팀에 발령받았으니까, 팀에서 네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기를 바라. 은서야. 그런데, 사람을 비용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아마도 인사팀에 오래 근무할수록 사람이 비용으로 보일 가능성이 높아. 물론 모든 회사에서 인건비라는 항목은 매우 중요해. 비중도 크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익을 추구하는 회사라면 당연히 인건비를 관리해야 해.

하지만, 거기에 매몰되지는 마라. 기억나니?

예전에 삼촌이랑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따뜻한 자본주의를 얘기했었잖아. 네가 그 따뜻함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전에 정민이 오빠 알바할 때, 필요한 노동법 지식들을 편지로 알려준 적이 있어. 이번에도 네게 내가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없을까, 고민하다가 인사팀에서 꼭 필요한 실무지식에 대해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너를 따로 만날 시간도 없을 것 같고, 카톡으로 남기자니, 너무 단편적인 내용만 얘기하게 될 것 같아서, 이번에도 매주 너에게 편지를 보낼까 해.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음식을 먹으면 체하기 마련이지? 조금씩 조금씩 인사의 기본 실무에 대해 알아가 보자꾸나.      


올해 다룰 주제는 임금이야. 준비됐니? 오늘은 그 첫 시간이야. 예전에 정민이에게 편지를 쓸 때는 단편적으로만 다뤘던 주제인데, 너는 좀 더 실무적으로 이 이슈에 접근할 필요가 있어. 그래서 이 편지가 약간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끝까지 잘 따라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임금은 누더기다     


처음 쓰는 표현부터 분위기가 싸하다, 그지?

그런데 이 표현만큼 임금을 잘 표현한 게 있을까, 싶어.

임금만큼 중요한 노동조건이 어디에 있겠니?

아무리 서로를 배려한다고 하더라도 사장과 노동자의 이해관계는 엄연히 다를 거야. 정책을 집행하는 정부는 또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있지. 임금에 대해서 노와 사와 정부가 난도질을 한 건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결과일지도 몰라.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가 임금을 통해 드러나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찌 보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그런 혼란을 막기 위한 장치가 바로 법이야. 그 법의 바탕 위에 때로는 단체협약을 체결하기도 하고, 때로는 취업규칙을 작성하기도 하고, 때로는 근로계약을 만들기도 하면서, 임금을 결정하는 거야.

그런데, 문제는 임금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사회계약장치인 법규범이 누더기가 되어 있다는 거야.

임금이 무엇인지, 또 평균임금이나 통상임금이란 개념은 왜 등장하는지, 최저임금은 또 뭔지, 과세가 되고 안 되는 건 또 어떤 의미가 있는지, 파고들면 들수록 정신분열현상이 일어나는 파트가 바로 임금 파트란다. 임금에 대한 법적 안정성은 사라진 지 오래인 것 같아. 해마다 얼기설기 짜깁기 해 놓은 옷처럼 노사 간의 이해관계를 봉합해 왔지. 그게 바로 임금이야.


이제 그 누더기를 분해해 볼까 해. 피곤한 작업이겠지만, 그건 너를 위한 일이기도 하고, 네가 섬겨야 할 동료들을 위한 일이기도 해.


앞으로 내가 쓸 편지의 큰 줄기만을 이야기하고 이번 편지는 마무리할까, 해.      


1. 우선 직장인들이 받는 수많은 명목의 금품들이 있어. 우리는 먼저 그 금품들 중에서 임금인 것과 임금이 아닌 것을 구분해 내야 돼. 임금으로 인정되면, 적어도 퇴직급여 속에는 그 금품을 포함해야 하거든. 하지만 지급받는 금품 중에서 임금이 아닌 것들도 있어. 그런 것들은 퇴직급여를 산정할 때는 제외가 되는 거지.      


2. 그런데, 어떤 금품이 임금에 해당되는지를 알아냈다고 해서, 끝이 아니야. 오히려 모든 임금관리의 시작에 불과하지. 임금에 해당하는 금품으로 인사팀에서 뭘 해야 할까? 우선 퇴직급여를 지급하거나 산업재해보상을 해야 해. 그걸 지급하기 위한 임금 개념이 평균임금이야. 네가 평균임금을 산정할 수 있어야, 퇴직급여를 정확하게 지급할 수 있게 되는 거지. 네가 평균임금을 잘못 계산하게 되면, 퇴직하는 동료가 지금까지 일하면서 번 노동의 대가는 공중에 흩어지게 되는 거지.       


3. 또 뭘 해야 할까? 직장인들이 연장근로나, 휴일근로, 야간근로 같은 것들을 하게 되면, 수당을 지급해야 해. 그걸 지급하기 위한 임금 개념이 통상임금이야. 마찬가지로 통상임금을 잘못 계산하게 되면, 연장근로의 대가가 사라지는 거지.      


4.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사업장 형편이 어렵더라도, 아무리 사업장 규모가 작더라도 반드시 지급해야 할 임금액수가 있어. 그걸 최저임금법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놓았단다. 인사팀에서 최저임금법에 위반되는지 안되는지를 또 알아내야겠지.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는 최저임금과 비교하기 위한 임금을 정확하게 산정해야 할 거야.       


5. 그 외에도 임금을 어떻게 지급해야 하는 것인지, 퇴직급여는 어떤 종류가 있는 것인지, 그런 것들도 내가 이 편지를 통해 차근차근 전달해줄까 한다.      




어때? 준비가 된 것 같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온다고?

은서야, 어차피 네가 인사팀에 온 이상 거쳐야 할 관문이야. 아까도 얘기했지만, 반드시 너를 위한 것만은 아니야. 임금에 자신의 밥줄이 걸려 있는, 네 동료 직장인들을 섬기는데 꼭 필요한 거야. 난 네가 임금을 제대로 관리해서, 정당한 대가를 그들에게 돌려주기를 바란다. 

동기부여가 좀 됐니? 그럼 다음부터 본격적으로 임금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글을 쓰마.

다음 주가 첫 월급날이라고 했니? 첫 월급, 네 노동의 대가. 그건 우주만큼 의미 있는 거란다. 그때 한 번 볼까. 차나 한 잔 마시면서 우주와 인생의 크기를 논해볼까나.      



브런치 매거진에 올린 글을 엮어서 "누더기가 된 임금(부크크)"이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책 발간의 기회를 주신 브런치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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