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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호 노무사 Mar 07. 2019

7. 명절 선물도 임금이 될 수 있나요?

-현물의 임금성 여부-

대법원 2019.8.22. 선고 2016다48785 전원합의체 판결 

은서야. 지금까지 삼촌이 보낸 편지는 잘 읽고 있는 거니?

사실 이런 편지를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는 게, 조금 피곤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래서 오늘은 편지를 조금 짧게 써 보았다.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는 주제라서 말이야.      




예전에 우리 집에는 치약과 비누가 엄청 많았어. 너도 알다시피 우리 집이 매 번 양치하고 매번 비누로 손을 씻을 만큼 유난 떠는 집이 아니잖니? 우리 집이 특별히 깔끔해서가 아니라, 추석이나 설이 되면 아버지 회사에서 치약과 비누 선물을 많이 줬거든. 그런데, 비누를 다 쓰기도 전에 다시 명절이 찾아오는 거야. 그리고 또 치약을 받고, 비누를 받고 한 거지. 페리오 치약, 다이알 비누, 이런 것들이 화장실에 널려 있었단다. 


우리 아버지, 참 열심히 일하셨다. 새벽에 나가셔서 밤에 돌아오시고. 그리고는 피곤하셨는지  금세 코를 골면서 주무셨지. 나는 그런 아버지, 그리고 집안에서 가사를 도맡아 하셨던 어머니의 희생 위에 자라왔어.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참 미안하고 부끄러워. 자식을 위한, 그런 불꽃과 같은 삶에 대해 아무것도 보답해 드리지 못한 것 같아서 말이야. 그때만 하더라도 삼촌이 철이 없었거든. 그게 얼마나 큰 희생인지 몰랐지. 


사실은 국가도 마찬가지야. 아버지와 같은 노동자들의 희생 위에 우리나라가 이만큼 성장한 거라고 난, 생각해. 나는 우리 사회가 이 땅의 노동자들에게 적어도 고마워하는 마음, 충분히 보답하지 못하고 있다는, 그런 부끄러운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이제, 새벽에 일어나서 밤늦게 집에 돌아오는, 그런 일상은 신화로 돌아가야 해. 아들과 딸이 그런 전쟁 같은 노동현장에서 일하기를 난, 원치 않아. 그건 우리 세대로 끝나야 할 과거의 유산이 돼야 해. 


어차피 끊임없이 사람을 소비해서 성장을 강요하는 사회는 오래가지 못해. 


우리 사회의 출산율이 극단적으로 떨어진 것도 그런 것들과 무관하지 않을 거야.     

짧게 쓴다고 해 놓고 또 쓸데없이 얘기가 길어졌다. 갑자기 아버지 생각이 나서. 

그런데, 오늘 얘기할 내용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어.      



     

한 번 가정을 해보자. 

어떤 회사가 명절에 10만 원 상당의 선물을 모든 직원에게 지급한 거야. 그러면 그렇게 지급한 10만 원의 선물도 임금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에 임금에 해당한다면 그 10만 원을 퇴직급여 계산할 때 포함해야 돼. 산재보상을 할 때도 그 금액을 포함해서 보상을 해야 해. 어떻게 생각하니?     


아마 네가 이런 말을 할 것 같구나. '에이, 그게 무슨 임금이에요? 그건 선물이잖아요? 게다가 금전으로 지급한 것도 아니고 물건으로 지급했잖아요? 그건 임금이 아니에요'라고 말이야.      

오늘은 그 질문에 대해 답을 해 보려고 한다.      


1. 현물도 임금이 될 수 있을까?     


한 번 하나씩 하나씩 따져보자꾸나. 우선 그건 물건이지, 금전이 아니기 때문에 임금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 대해서 살펴보자. 

은서야. 앞으로 어떤 인사 사안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있으면, 우선 법전을 뒤져 보렴. 법조문을 보면, 궁금한 것들을 상당 부분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단다.


내가 저번에 법전을 항상 지니고 다니라고 했지? 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5호를 볼까? 거기에 임금에 대한 정의가 나와 있거든.      


“임금”이란 사용자가 근로의 대가로 근로자에게 임금, 봉급, 그 밖에 어떠한 명칭으로든지 지급하는 일체의 금품을 말한다.     


이 법문, 이 조항을 자세히 보렴. 특히 끝부분을 말이야. 발견했니? 

그래, 맞아. 일체의 “금품”이라고 돼 있지?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은 임금의 범위에 “금(전)”만 포함시키고 있는 게 아니야. “(현)품”도 포함시키고 있단다. 그러니까, 물건은 임금이 될 수 없다는 답변은 틀린 거지.      

그런데, 근로기준법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또 이런 얘기를 할 수도 있어.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임금을 통화로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 않냐고. 근로기준법 제43조 제1항의 본문에 나와 있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임금은 통화(通貨)로 직접 근로자에게 그 전액을 지급하여야 한다.      


어때? 그럴듯한 반론 아니니? 

그런데, 그 조문을 잘 보면 뒤에 이런 말이 추가돼 있어. 법령이나 단체협약에 특별한 규정이 있으면 임금을 통화 이외의 것으로 지급할 수 있다고 말이야.(근로기준법 제43조 제1항 단서) 

즉, 그 규정은 법령이나 단체협약상의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임금을 통화로 지급하라는 규정인 거지, 통화만 임금이 될 수 있다는 규정은 아닌 거야.      


정리해 보자. 우리나라 법에 따르면 금전뿐만 아니라 현물도 임금이 될 수 있단다.      


2. 현물도 지급의무와 지급형태를 고려해서 임금성 여부를 판단한단다.      


그러면 이런 의문이 들 거야. 현물로 지급되는 것은 다 임금이냐고 말이야. 

지금까지 보낸 편지를 떠올려 보렴. 임금은 노동의 대가라고 했지? 그런데 노동의 대가인지 아닌지는 명칭이 아니라 지급의무와 지급형태로 판단한다고 했잖아.  

현물도 마찬가지란다. 만약에 어떤 현물에 대해서 사용자에게 지급의무가 있고, 그 현물이 계속적으로, 그리고 정기적으로 지급되고 있다면 그건 임금이야.      


평균임금 산정의 기초가 되는 임금총액에는 사용자가 근로의 대상으로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일체의 금품으로서, 근로자에게 계속적·정기적으로 지급되고 그 지급에 관하여 단체협약, 취업규칙 등에 의하여 사용자에게 지급의무가 지워져 있으면 그 명칭 여하를 불문하고 모두 포함되는 것이고, 비록 현물로 지급되었다 하더라도 근로의 대가로 지급하여 온 금품이라면 평균임금의 산정에 있어 포함되는 임금으로 봄이 상당하다.(대법원 2005.9.9. 선고 2004다41217 판결)     


물론 지급의무가 없이 은혜적으로 지급하는 선물은 임금이 아니라는 건 설명 안 해도 이제 알겠지?       


 (1) 선물 판례      


어떤 회사에서 설과 추석에 노사합의에 따라 선물비를 연 20만 원 상당으로 정해놓고 그 선물을 현품으로 지급한 거야. 그러면 그 20만 원은 임금인 걸까. 

그렇지. 설령 현품이라고 하더라도 노사합의에 따라 지급의무가 있고, 매년 설, 추석마다 계속적으로 그리고 정기적으로 지급한 거니까, 말이야.      


회사는 단체협약에 따라 전 사원들에게 매년 설 휴가비, 추석 휴가비 각 150,000원, 하기 휴가비 250,000원을 각 지급하여 왔고, 노사합의에 따라 선물비를 연 200,000원 상당으로 책정한 후 그에 상응하는 선물을 현품으로 지급하여 온 사실을 인정하고, 위 각 휴가비 및 선물비는 단체협약, 노사합의 및 관행에 따라 일률적·계속적·정기적으로 지급된 것으로서 그 월평균액이 퇴직금 산정의 기초가 되는 평균임금에 포함된다고 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다.(대법원 2005.9.9. 선고 2004다41217 판결)     

 

 (2) 연탄 판례      


아주 오래된 판례이긴 한데, 이런 것도 있어. 회사에서 취업규칙에 따라서 연료보조비라는 명목의 수당을 지급했어. 문제는 본사에 있는 직원들에게는 현금을 지급했는데, 광업소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그 금액만큼의 연탄을 지급한 거야. 일부 직원들에게 돈이 아니라 현물로 지급한 거지. 임금이 될 수 있을까? 딩동댕.      


전 종업원에게 연료보조비를 지급하여 왔는데, 광업소에서는 제조연탄을 현물로 지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본사 및 기타업소에 근무하는 종업원들에게는 현금을 지급하여 왔고, 그 지급기준에 관하여는 단체협약이나 예규에서 이를 정하되 매월 16일 이상 출근자에 한하여 지급한 사실을 인정한 다음, 이들 수당은 모두 전직원을 대상으로 취업규칙 또는 회사의 방침으로 정한 일정 기준에 의하여 매월 또는 매년 정기적, 계속적으로 지급하여 온 것으로서 그 명칭이나 일부 현물지급 여부에 관계없이 근로의 대가로 지급하여 온 금품으로서 평균임금의 산정에 있어 포함되는 임금으로 봄이 상당하다.(대법원 1990.12.7. 선고 90다카19647 판결)

     

삼촌이 얘기했지? 현물지급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급의무와 지급형태가 중요하다고 말이야.      


 (3) 금 1돈 판례     


이런 독특한 판례도 있어. 어떤 회사가 단체협약으로 조합원이 1년간 개근하면 연말에 금 1돈을 지급한다고 약속을 한 거야. 그런데, 한 조합원이 해고를 당했어. 하지만 이 해고가 부당해고라고 확정이 된 거지. 

부당해고는 회사에게 책임이 있기 때문에 부당해고기간에 대해서는 임금을 지급해야 하거든. 그런데, 금 1돈도 지급해야 하는 걸까? 응. 맞아. 현물의 임금성을 직접 언급한 건 아니지만, 그걸 전제로 깔고 있는 판례라고 할 수 있지.       


단체협약 제45조는 조합원이 1년간 개근할 경우 연말에 금 1돈(3.75g)을, 정근(지각 3회 이하)할 경우 연말에 금 반 돈을 교부하여 표창하도록 규정되어 있다는 것인바, 이를 위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위와 같은 표창 역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고들이 계속 근로하였을 경우에 받을 수 있는 임금에 포함된다.(대법원 2012.2.9. 선고 2011다20034 판결 판례)     


너희 회사에서 복지포인트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어. 

사실 포인트도 임금에 해당하는지, 더 나아가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도 뜨거운 이슈 중 하나란다. 최근에 복지포인트에 대해서는 임금이 아니라는 판례가 나왔어. 


(4) 복지포인트 판례 


복지포인트를 어떻게 운영할지는 회사마다 다소 차이가 있긴 한데, 포인트로 회사가 지정한 물품이나 서비스 등을 구매할 수 있는 제도라고 이해하면 돼. 포인트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근로자 입장에서는 사실상 통화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지. 그래서 이 포인트도 임금으로 봐야 하지 않나, 라는 논쟁이 제기된 거야. 

사실 많은 학자들은 복지포인트가 회사에게 지급의무가 있고 매년 계속적으로, 정기적으로 지급한 것이기 때문에  임금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어. 

그런데 뜻밖에도 복지포인트는 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례가 나온 거야. 사실상 지금까지 등장했던 판례와는 결이 다른 판례가 나온 거야.

법원은 복지포인트만큼은 금으로 보기 싫었던 모양이야. 근로복지기본법이라는 법까지 그 근거로 내세운 걸 보면 말이야. 이런 논리야. 복지포인트는 근로복지기본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제도인데, 근로복지기본법은 근로복지의 개념에서 임금을 제외하고 있다는 거야. 결과적으로 복지포인트는 임금이 아니라는 거지. 사실상 복지포인트는 앞으로도 임금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법원의 시각이 짙게 깔려 있는 판례가 나온 거지. 


복지포인트를 단체협약, 취업규칙 등에 근거하여 근로자들에게 계속적․정기적으로 배정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복지포인트는 근로기준법에서 말하는 임금에 해당하지 않고, 그 결과 통상임금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대법원 2019.8.22. 선고 2016다48785 전원합의체 판결)


판례는 복지포인트를 임금으로 볼 수 없는 이유에 대하여 i) 복지포인트의 전제가 되는 선택적 복지제도는 근로복지기본법에서 정한 제도로서 선택적 복지제도에 기초한 복지포인트는 임금과 같은 근로조건에서 제외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규범해석이라는 점, ii) 선택적 복지제도는 새로운 기업복지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것으로서 비임금성 기업복지제도로서의 실질을 갖추기 위해 도입된 것이라는 점 iii) 복지포인트는 사용기간이 지나면 이월되지 않고 소멸되며 양도가능성도 없다는 점 등을 들었어. 




짧게 쓴다고 해 놓고, 쓰다 보니 또 길어졌다. 미안. 

마지막 인사말이라도 줄일게. 

은서야. 행복해라. 

이런 편지 썼다고 해서 선물할 필요는 없어. 알겠지?

선물 안 해도 돼. 알겠지? 선물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ㅋㅋ.      


브런치 매거진에 올린 글을 엮어서 "누더기가 된 임금(부크크)"이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책 발간의 기회를 주신 브런치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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