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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호 노무사 Mar 08. 2019

8. 밥. 복지인가, 임금인가?

-식대의 임금성 여부-

은서야, 오늘 주제를 떠올리며 편지를 쓰려고 하니까 갑자기 밥 아저씨가 생각나더라. 너는 아마 잘 모를 수도 있는데, 화가야. 정확한 이름은 Bob Ross.

그림을 다 그린 다음에 항상 시청자를 향해서 활짝 웃으면서, “어때요, 참 쉽죠?”라고 얘기하는 화가야.      


    

오늘 주제가 바로 밥이야. 갑자기 머릿속에 밥 아저씨가 떠오르면서, 네게도 이 편지의 주제가 참 쉽게 다가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동시에 나도 밥 좀 그만 먹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단다. 이제 삼촌도 건강을 위해서 체력을 좀 관리해야지. 아자아자. I can do it. 밥 아저씨, 이제 우리 그만 헤어져요.     




이미 이전에 네게 보낸 편지에서 식대에 관한 얘기를 일부 했기 때문에 이번 편지는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구나.      

그런데, 이 편지를 쓰기 전에 아쉬운 점 하나는 얘기하고 시작해야겠구나.      


1. 식사 혹은 식비를 회사가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걸까?      


이번에 얘기하고 있는 주제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에는 휴게시간이라는 게 있어. 하루 종일 근무하면 너무 힘드니까, 중간에 회사가 감독을 하지 않고 자유롭게 쉬는 시간을 주는 거야. 법에서는 4시간 근무하면 중간에 30분 이상, 8시간 근무하면 중간에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을 주도록 하고 있어.

그런데, 일반 직장에서는 보통 그 휴게시간을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으로 부여하고 있단다. 밥 먹을 때 만이라도 긴장 풀고 있으라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이번 편지는 임금에 관한 거니까, 휴게시간에 관한 얘기는 이쯤 하자.


그런데, 점심시간에는 밥을 먹어야 할 것 아니니? 아, 너는 샌드위치 먹는다고? 음. 그래그래. 어쨌든 무언가를 먹어야겠지? 보통 회사에서는 세 가지의 방법을 많이 택하고 있어.

큰 회사는 회사 안에 구내식당을 두고 있는 경우도 많아. 거기서 밥을 먹는 거지. 구내식당이 없는 경우나 구내식당이 있더라도 밖에서 먹는 경우에는 식비를 주는 경우도 있어. 경우에 따라서는 주위 식당과 MOU(?)를 체결해서 아예 그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식권을 제공하기도 하지. 너희 회사는 구내식당이 있다고 했지?     


그런데, 내가 질문을 하나 할게. 지금까지 내가 말한 게 회사의 의무일까? 즉 어떤 형태가 되더라도 회사가 반드시 식사, 혹은 식비, 혹은 식권을 직원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걸까?

정답은 이미 짐작했겠지? 내가 아쉽다고 이미 말했으니까 말이야. 아쉽게도 그럴 의무가 없단다.


휴게시간은 의무이지만, 밥과 밥값은 의무가 아니야.


그러니까, 밥을 주지 않더라도 직원들이 회사를 상대로 법적으로 다툴 권리는 없는 거지. 그 점은 참 아쉬운 점이긴 해.      

그래도 상당수의 회사에서는 직원들에게 식비나 식권을 주고 있어.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식사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고 말이야. 일단 이런 이해를 먼저 바탕에 깔고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2. 식사 혹은 식비는 임금일까?       


우리가 지금 얘기하고 있는 건 임금이잖아. 적어도 퇴직급여에 포함될 수 있는 것 말이야. 그럼 이런 식사나 식비는 임금이 될 수 있을까? 즉 노동의 대가가 될 수 있을까?

한 번 사례들을 구분해서 정리해 보자꾸나.       


 (1) 전 근로자에게 일정액을 일률적으로 식대를 지급하는 경우      


이건 지난번 편지에서 이미 짧게 얘기했던 부분이야. 기억나니? 결국 이런 종류의 지식을 얻는 공부는 반복이 중요한 것 같아. 지겹고 힘들겠지만, 계속 읽다 보면 어느새 네 지식이 되어있을 거야. 계속 반복해서 공부해 보려무나.

회사에서 10만 원의 식대를 주는 경우가 많다고 했었지? 그 이유 중 하나가 세법상 월 10만 원 이하의 식대에 대해서는 과세를 하지 않기 때문이야. 세금을 내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회보험료도 부과하지 않는다고 했지. 즉 10만 원 이하의 식대는 비과세 항목이라고 했잖아. 기억나지?      

그런데, 세법과 노동법은 그 법리가 달라. 세법의 관심사는 과세 여부이지만, 노동법의 관심사는 임금 여부, 즉 노동의 대가로 지급되고 있는지 여부야.      


그럼,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삼촌, 식대는 식사의 값이잖아요, 노동의 값이 아니고요. 그러니까 당연히 임금이 아닌 것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라고 말이야.

그래. 분명 임금은 노동의 대가야. 즉 노동의 값인 거지.

그런데, 노동의 대가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판단한다고 했니? 명칭으로 판단한다고 했니? 아니잖아. 세법은 명칭을 보지만, 노동법은 명칭보다는 지급의무와 지급형태를 보는 거야. 명칭 때문에 실질을 보지 못하면 안 되니까, 말이야.

만약에 식대가 정말로 식사의 값, 즉 밥의 값이면 임금이 아닐 수도 있어. 그런데, 보통 우리나라에서 식대가 어떻게 지급되고 있니? 만약 정말로 식사의 값이면, 오늘 출근해서 밥을 먹은 사람과 밥을 먹지 않은 사람의 식대가 달라야 될 거야. 그런데, 달라지니? 아니야. 오늘 나와서 일을 했으면, 직원들이 밥을 먹었건 먹지 않았건 하루치의 식대는 지급하고 있어. 그게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식대의 현실(?)이지.


어때? 이해하겠지? 명칭은 밥의 값이지만, 사실상 밥과는 관계없이 근로하면 지급해야 하는 형태로 돼 있는 거야.

밥을 먹었는지와는 무관하게 지급의무를 가지고 매월 계속적으로, 그리고 정기적으로 식대를 지급하고 있다는 거지. 그러면 그 식대는 노동의 대가, 즉 임금이라고 할 수 있어. 

통상임금으로도 인정하고 있는데, 그건 통상임금을 설명하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밑에 판례 하나를 올려놓을게.      


식대를 매월 일정액으로 전 직원에게 지급한 경우, 그 식대는 사용자가 지급의무를 가지고 근로자에게 계속적‧정기적으로 지급하는 것으로서 임금에 해당한다. (게다가 판례에 따르면, 그 식대는) 모두 소정 근로 또는 총 근로에 대하여 지급하기로 한 금품이고 또한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고정적인 임금”이므로 통상임금에도 속한다. (대법원 1996.5.10. 선고 95다2227 판결)          


 (2) 현물로만 제공하는 경우


그런데, 우리 회사에 구내식당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회사가 아예 5천 원어치의 식사를 제공하고 있는 거야. 그런데, 밥을 안 먹은 직원에게는 별도로 식비나 주위 식당을 이용할 수 있는 식권을 안 주고 있는 거야. 그러면, 그 식사는 5천 원어치의 임금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아니야. 우리 판례에서는 그 경우까지 임금성을 인정하지는 않아. 노동을 하면 지급해야 하는 게 임금이야. 그런데 오늘 나와서 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밥을 안 먹으면 다른 보상이 없는 거야. 그건 순수한 밥값, 순수한 복리후생이란다. 이해하겠지? 만약에 식사를 제공하면서, 식사를 하지 않은 직원에게 식사비에 상응하는 현금이나 다른 식권 등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면, 그건 임금으로 보지 않는단다. 해당 판례를 하나 올려놓을게.      


식대를 현물로 제공하면서, 식사를 하지 않은 근로자들에게 식사비에 상응하는 현금이나 다른 물품을 지급할 의무가 없는 경우, 해당 식대는 “근로자의 후생복지를 위하여 제공하는 것"으로서 근로의 대가인 임금이라고 볼 수 없다. (대법원 2005.9.9. 선고 2004다41217 판결)         


 (3) 식사를 제공하면서, 식사를 하지 않은 근로자에게도 상당액의 현금 등을 주는 경우     


위의 사례를 약간 변형해 볼까? 출근한 직원에게 우리 회사가 5천 원 어치의 식사를 제공하고 있어. 그런데 출근을 했지만 식사를 하지 않은 근로자에게는 다른 식당을 이용할 수 있는 5천 원 어치의 쿠폰을 제공한 경우라면 어떨까? 혹은 5천 원의 현금을 지급하는 경우라면 어떨까?

그 5천 원은 사실상 하루 일당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 판례는 이 경우에는 임금으로 인정하고 있단다. 오늘 근무한 직원들에게는 다 5천 원의 대가를 주고 있는 거니까, 말이야. 노동의 대가로 인정하고 있는 거지. 사실상 모든 직원에게 일정액을 지급하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단다. 임금이 통화일 필요는 없으니까.      


근로자에게 일정 금액 상당의 식사를 현물로 제공하되, 식사를 제공받지 아니하는 근로자에게는 위 금원에 상당하는 현금 등을 지급한 경우, 그 식대는 일급금액으로 정해진 것으로서 그 지급조건 및 내용 등에 비추어 근로의 대가로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된 임금이라고 봄이 상당하므로 임금에 해당하며, 통상임금에도 포함된다.(대법원 1993.5.11. 선고 93다4816 판결)     


 (4) 출장 식대는 임금일까?       


이 부분도 내가 이전 편지에서 설명한 적이 있어. 출장비는 뭐라고 했니? 실비변상적인 금품이라고 했잖아.

외부로 출장 갔을 경우에 지급하는 출장비의 한 항목으로서의 식대는 임금이 아니야. 출장을 갔을 경우에 지급하는 식대와 일반적인 식대를 같은 선상에서 볼 수는 없단다. 알겠지?     


출장식대 및 작업출장비는 근로의 대가인 임금으로 볼 수 없으므로 퇴직금 산정의 기초인 평균임금에 산입해서는 안 된다.(대법원 1998.1. 20. 선고 97다18936 판결)     




이 정도면, 식대가 임금인지 아닌지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을 충분히 이해했으리라 믿는다.

그런데, 구내식당 밥은 맛있니?

예전에 어떤 교육기관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본 적이 있어. 교육만족도를 조사한 건데, 뜻밖에도 밥에 대한 불만이 많더라고.


교육내용은 괜찮은데, 매번 밥 먹는 것이 고역이었습니다.
밥 생각 때문에 교육에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웃어넘길 일만은 아닌 것 같아. 의식주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자 필요야. 너희 회사도 밥에 돈 쓰는 걸 너무 아까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도 삶의 질을 올리는 중요한 한 부분이니까 말이야.       

사무실 근처에 진짜 대박인 맛집 하나 발견했어. 퇴근하고 시간 되면 한 번 들르렴. 같이 가자.


오늘도 밥을 먹기 위해 일을 하고, 일을 하기 위해 밥을 먹는다.

그 단순하고 평범한 1차원적 진리 위에서 오늘도 살아간다.

너와 나의 일이 좀 더 가치 있는 일이었으면 좋겠구나.


이만 줄인다. 안녕.      


브런치 매거진에 올린 글을 엮어서 "누더기가 된 임금(부크크)"이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책 발간의 기회를 주신 브런치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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