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 DC, IRP 그리고 외국인-
은서야.
너도 뉴스를 봐서 알겠지만, 우리 사회의 고령화 속도가 만만치 않다. 출산율은 급격하게 줄어들고 평균수명은 늘어나니까,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 속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빠른 것 같아.
이미 2000년도에 65세 이상 인구가 7% 이상이 되는 고령화 사회에 도달했고, 2017년에는 그 비율이 14% 이상이 되는 고령사회에 도달했단다. 그리고 2026년에는 65세 이상 인구비율이 20% 이상에 도달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될 예정이야. 그에 비해 2018년 기준으로 합계 출산율은 사상 처음으로 1명 이하인 0.98명이 되었어.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이지.
우리나라는 여러 측면에서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왜 자꾸 옆길로 새어 나가냐고? 아냐, 아냐. 오늘은 출산율이나 고령화 사회와 관계가 있는 얘기를 좀 해볼까 해.
내가 지금까지 임금을 얘기하면서 주로 퇴직금을 예로 들었잖아. 퇴직금 제도가 어떤 건지는 이전 편지에서 설명했으니까, 생략할게. 이번 편지에서는 퇴직금 제도의 한계에 대해서 얘기해 볼까 해.
그런데, 퇴직금 제도의 약점이 상당하긴 해. 우선 가장 큰 약점이 퇴직금을 회사가 다 지급하지 못할 수 있다는 거야. 회사가 퇴직금을 매년 바로 지급하는 건 아니야. 회계 장부상으로만 퇴직금이 계상돼 있다 보니까, 회사가 도산하면 퇴직금을 다 지급받지 못할 수도 있는 거지.
물론 그 경우에도 경매과정에서 최종 3년간의 퇴직금을 지급받을 수는 있어. 그리고 회사에 재산이 없으면 국가가 대신 최종 3년간의 퇴직금을 지급하는 제도도 있는데, 그때 국가가 지급하는 돈을 체당금이라고 해. 이 부분은 나중에 좀 더 상세하게 얘기할 기회가 있을 거야.
그런데 거꾸로 얘기하면 회사가 도산하면 최종 3년간의 퇴직금을 제외한 나머지 근속기간에 대해서는 퇴직금을 지급받기가 거의 불가능한 거야.
또 하나의 약점은 퇴직금이 은퇴자금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거지. 근로자가 이직을 자주 한다거나, (상당한 제한을 가하고 있기는 하지만) 퇴직금 중간정산을 한다거나 하면, 은퇴 이후에 사용할 수 있는 퇴직금이 별로 없다는 거야. 원래 퇴직금은 노후에 사용할 수 있는 생활자금으로서 그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 기능을 수행하기 쉽지 않다는 거야.
물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그러한 퇴직금을 확보해 줄 테니까, 민간기업에 비해서는 그런 위험이 덜할 거야.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로 국가에서는 퇴직금이라는 오래된 제도를 퇴직연금이라는 제도로 전환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단다. 원래 법적으로는 2012년 7월 26일 이후 새로 설립된 회사는 1년 안에 DB형 퇴직연금제도나 DC형 퇴직연금제도를 설정해야 해.
국가의 노력이 통했는지 2018년 기준으로 전체 노동자의 50% 이상이 퇴직연금에 가입돼 있단다. 그런데 한 가지 우려되는 게 있긴 해. 사실은 퇴직금 제도의 한계를 돌아보면 중소기업에서 퇴직연금제도가 더 필요하지 않겠니?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단다. 근로자가 300인 이상 되는 사업장에서는 이미 90%가 퇴직연금을 도입했어. 그런데, 근로자 규모가 작을수록 퇴직연금 도입률이 낮아져서 10인 미만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에서는 약 17% 정도만이 퇴직연금을 도입했단다. 오히려 퇴직연금이 더 필요한 사업장에서 퇴직연금을 더 도입하지 않고 있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는 거지. 그래도 이제는 꽤 많은 회사에서 퇴직연금을 도입했으니까, 퇴직연금에 대해서도 좀 더 공부를 할 필요가 있어.
여기서, 네가 뭘 질문할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아. 어떤 제도를 도입하려면 회사나 근로자에게 메리트가 있어야겠지? 퇴직연금이 어떤 메리트가 있는 걸까? 우선 퇴직연금이 어떤 제도인지를 설명하고, 퇴직연금의 좋은 점을 소개해 줄게.
(1) 퇴직연금의 의의와 종류
쉽게 얘기하면 사용자가 퇴직급여를 지급하기 위한 돈을 금융기관에 적립해 두고(금융기관에 납부하는 이 돈을 부담금이라고 해), 이 돈을 사용자(DB형), 혹은 근로자(DC형)가 운용해서 퇴직할 때 퇴직연금사업자가 연금이나 일시금으로 지급(퇴직할 때 받는 돈을 급여라고 해)하는 제도라고 보면 돼.
DB형 퇴직연금은 근로자가 받는 퇴직급여가 확정돼 있는 퇴직연금제도야. 퇴직할 때 근로자는 퇴직금과 동일한 액수의 퇴직급여를 연금이나 일시금으로 수령할 수 있어. 앞의 편지에서 설명했던 평균임금을 산정해서 그 금액만큼 퇴직급여를 지급하는 거야.
단지 그 확정된 퇴직급여를 지급하기 위해서 회사는 회사 밖에 있는 금융기관에 재원을 적립하고 그 돈을 운용해야 해. 운용에 따라서 부담금 액수가 달라질 수 있겠지?
DC형 퇴직연금은 회사가 납부하는 부담금이 확정돼 있는 퇴직연금제도야. 회사는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연간 임금총액의 1/12만 납부하면 돼. 이 경우에는 평균임금을 산정할 필요가 없어. 임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만 다시 한번 정리해 보렴. 그리고 그 돈을 근로자가 운용하는 거야. 그리고 퇴직할 때 근로자는 퇴직급여를 연금이나 일시금으로 수령할 수 있어.
근로자가 이 돈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여러 금융상품을 선택해야 하는데, 안정적으로 원리금이 보장되는 상품으로 운용할 수도 있고, 다소간 위험이 따르긴 하지만, 원리금이 보장되지 않는 고위험 금융상품으로 운용할 수도 있어. 수령하는 퇴직급여는 어떤 금융상품을 선택하고 운용했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거야.
DB형이나 DC형 모두 퇴직급여를 연금으로 수령하기 위해서는 55세 이상이 돼야 하고 가입기간은 10년 이상이 돼야 해.
개인형 퇴직연금(IRP)도 있는데, IRP가 Individual Retirement Pension의 약자야. 그냥 개인별로 퇴직급여를 넣어두는 연금계좌인 거지.
세 가지의 목적으로 활용돼.
우선 근로자가 회사에서 부담하는 금액보다 더 많은 금액을 퇴직연금에 넣고 싶을 때가 있어. 그때 DC형 퇴직연금계좌에 근로자가 추가적으로 더 부담금을 납입할 수도 있고, 근로자 개인이 자율적으로 IRP 계정을 만들어서 부담금을 적립하고 운용할 수도 있어.
두 번째로는 나중에 퇴직할 때 퇴직연금을 IRP계정으로 이전시키게 되는데, 그때 IRP계정을 개설해야 해.
그리고 하나가 더 있어. 상시근로자가 10인이 안 되는 사업장은 속된 말로 금융기관에서도 별로 돈이 안 되는 사업장이라서, DB형이나 DC형을 도입하기가 쉽지 않아. 그래서 그런 사업장에서는 IRP에 가입하면 퇴직연금제도를 설정한 것으로 법에서 인정해 주고 있어. DB형이나 DC형은 퇴직연금규약도 작성해야 하는데, IRP는 그런 규약 작성도 필요 없어. (이런 형태를 기업형 IRP라고 해)
IRP의 경우에는 가입기간이 10년이 안 되더라도 55세 이상의 요건만 충족되면 연금으로 수령할 수 있어.
(2) 퇴직연금제도의 좋은 점
그런데 퇴직연금제도가 좋은 점이 있을까?
특히 회사 입장에서는 퇴직연금을 도입할 때 어떤 메리트가 있을까?
첫째. 퇴직연금은 회사가 퇴직연금사업자인 금융기관에 부담금을 납부하는 거잖아. 그때 부담금 전액을 손비 처리해 줘. 법인세를 절감할 수 있는 거지.
둘째. 회사가 정기적으로 이런 부담금을 납부하는 거라서, 비용 부담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어. 분할 적립을 하니까, 일시적인 자금 압박을 방지할 수 있는 효과가 있지.
셋째. 퇴직급여에 관한 각종 업무를 금융기관에서 처리해 주니까, 업무를 좀 더 간소화할 수 있어.
근로자들 입장에서 좋은 점은 뭐가 있을까?
첫째. 퇴직급여를 지급하기 위한 재원을 사외에 적립해 두는 거니까, 퇴직급여에 대한 수급권을 보호할 수 있다는 거겠지. 회사가 망하더라도 금융기관에서 퇴직급여를 지급하는 거니까, 좀 더 안정적으로 퇴직급여를 지급받을 수 있는 거야.
둘째. 퇴직연금에 가입돼 있는 경우에는, 퇴직할 때의 퇴직급여를 개인퇴직연금계좌(IRP)로 이전시켜 준다고 했잖아. 직장을 옮기더라도 IRP를 활용해서 퇴직급여를 계속 합산해서 적립할 수 있어.
셋째. DC형이나 IRP계정을 운용할 때, 근로자가 추가로 부담한 금액은 최대 700만 원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도 있어.(연금저축에 가입한 경우에는 연금저축까지 합산해서 700만 원 한도)
넷째. 퇴직할 때, IRP계정에 퇴직급여를 넣어두고 있으면, 당장은 과세가 되지 않아. 나중에 그 돈을 인출할 때 과세가 되는 효과가 있어. 과세이연효과라고 하지. 일시금으로 인출하면, 퇴직소득세로 과세가 되고, 연금으로 인출하면, 연금소득세로 과세가 돼.
다섯째.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위한 연금설계에서 퇴직연금이 한 축을 담당할 수 있어. 보통 노후생활을 위해서는 3층 연금체계가 필요하다고 하잖아. 국민연금, 퇴직연금, 그리고 개인연금. 물론 기초연금도 꽤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 어쨌든 퇴직연금은 이런 연금체계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수행해. 그런데, 상당수의 근로자들이 퇴직할 때 연금을 선택하지 않고 일시금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 돈이 꽤 필요한 시기에 은퇴하다 보니까, 퇴직급여 일시금으로 다른 일을 해보려는 목적이 있는 거지. 우리나라 노인빈곤율도 심각한 상황이야. 노인 상대빈곤율이 OECD 평균 12% 정도인 반면에 우리나라의 빈곤율은 49.6%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을 정도니까.(65세 이상, 2013년 기준)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하려면 어떤 절차가 필요할까? 프로세스를 설명해 줄게.
우선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할지 여부를 결정해야겠지. 원래 퇴직연금을 도입하거나 퇴직금을 퇴직연금으로 변경하려면 근로자대표의 동의를 받아야 해. 만약에 과반수 노동조합이 있으면 그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으면 되는데, 과반수 노동조합이 없으면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해.
둘째.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에 따르면 퇴직연금규약을 작성하고 퇴직연금사업자를 선정해야 해. 그 법을 보면 무얼 기재해야 할지가 나와 있어. 기업형 IRP(상시 근로자 10인 미만 사업장 특례제도)의 경우에는 규약 작성과 신고의무가 면제돼 있어. 퇴직연금사업자는 보통 회사의 주거래 은행을 선정하는 경우가 많아.
셋째. 퇴직연금사업자를 선정하고 규약을 작성했으면 관할 지방노동청에 규약을 신고하면 돼. 그러면 노동청에서 신고를 수리했다는 공문을 보내 줄 거야.
넷째. 퇴직연금 사업자와 계약을 체결하고 가입자를 확정하고 부담금을 납부하면 돼.
아마 너희 회사에도 외국인이 일부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 외국인에게는 퇴직금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일반적으로 가장 질문이 많이 나오는 것 중심으로 얘기해 줄게.
우선 외국인의 비자 종류를 보렴.
E9비자(비전문취업)나 H2 비자(방문취업)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반드시 사용자가 출국만기보험에 가입해야 해. 퇴직금제도에 갈음하기 위한 목적이야. 보통 외국인 보험을 가입하게 되는데, 그 외국인 보험에 출국만기보험도 포함돼 있어. 퇴직급여제도를 보험에 가입해서 해결하는 구조라고 이해하면 돼. 외국인보험 가입을 위해서는 외국인보험 콜센터에 문의하면 돼.
만약에 F4비자(재외동포)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일반 근로자와 동일하게 퇴직금이나 퇴직연금으로 지급하면 돼.
외국인의 비자 종류와 퇴직급여에 대해서는 이 정도 초보적인 내용으로만 갈음할게.
사실 나도 금융지식이 별로 없는 편이야. 너도 알고 있지?
하지만 100세 시대에 도달한 지금, 연금제도에 대해서 기본적인 내용은 알고 있어야 해. 특히 은서 너는 퇴직연금에 대해서 편지에서 설명한 것보다 더 전문적으로 공부해 보기 바란다. 개인적으로도 연금 설계를 체계적으로 했으면 좋겠다.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드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인품도 함께 깊어졌으면 좋겠다.
오늘은 이만 줄인다. 안녕.
브런치 매거진에 올린 글을 엮어서 "누더기가 된 임금(부크크)"이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책 발간의 기회를 주신 브런치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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