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시간 근로자의 정의와 퇴직금 지급-
은서야. 최근에 네 또래로 보이는 어떤 청년 한 명과 상담을 한 적이 있어. 근로계약서를 가지고 날 찾아왔더라고.
조그마한 회사에서 1년 넘게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하더구나. 1년 넘게 일을 하고 그만뒀는데, 퇴직금이 안 나왔대. 정말 본인이 퇴직금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인지 궁금해서 나를 찾아온 거였어.
어때? 은서야? 너라면 그 친구에게 어떻게 상담을 해 주겠니?
상담을 하다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단다. 한 편으로는 아쉬울 때도 많아.
적어도 세법과 노동법의 기초적인 내용은 학교에서 필수과목으로 가르쳐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아. 세금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노동자와 무관한 사람도 거의 없지. 우리 모두는 국가나 지자체에 세금을 내고, 노동자로 혹은 노동자를 고용한 사장으로 살아가고 있지. 그런데, 세금에 관한 법에 대해서, 노동자에 대한 법에 대해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황량한 시장의 한가운데 던져지고 있는 것 같아.
개인적인 생각이긴 해.
우리는 실무적인 것과 디테일한 것들을 너무 무시하는 경향이 많아.
그런데 사실은 그 디테일한 부분에서 개인과 사회의 철학이 드러나는 법이야.
사마리아인에 대한 비유를 알고 있을 거야. 강도당한 어떤 사람을 바리새인은 외면했지. 제사장도 피해 갔어. 그 사람을 도운 것은 그 사회에서 가장 멸시받고 있던 사마리아인이었어.
바리새인과 같이 큰 소리로 종교 경전을 달달 외우고, 제사장처럼 신의 앞에서 화려한 제물을 드린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니?
배고픈 사람에겐 밥을 주고, 마음이 무너진 사람에겐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라도 건네는 게 진짜 철학이야. 그게 사랑이야.
아, 미안. 단시간 근로자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하다 보니, 옆길로 새어 버렸구나.
그래, 오늘은 단시간 근로자에 대한 퇴직금 얘기를 해볼까, 한다. 먼저 말해두고 싶은 게 있어. 단시간 근로자들은 단지 짧은 시간 일하기로 계약을 했을 뿐이야. 그들의 존엄성마저 짧게 보면 안 된다.
사람의 존엄성을 그가 소유한 시간과 돈의 크기로 재단하지 말기를 바란다.
단시간 근로자에 대해서는 여러 법에서 얘기를 하고 있단다.
단시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서는 ‘근로기준법’과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어. 단시간 근로자의 퇴직급여에 대해서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에서 얘기를 하고 있지. 그리고 단시간 근로자의 4대 보험에 대해서는 ‘각각의 사회보험법’에서 기본적인 내용을 설명하고 있단다.
그런데, 그런 법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단시간 근로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알아야겠지? 근로기준법에서는 단시간 근로자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어.
“단시간 근로자”란 1주 동안의 소정근로시간이 그 사업장에서 같은 종류의 업무에 종사하는 통상근로자의 1주 동안의 소정근로시간에 비하여 짧은 근로자를 말한다. (근로기준법 제2조제1항제8호)
단순하게 얘기하면 우리 회사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정규 근로자가 있는데, 나는 그 정규 근로자보다 1주간의 소정근로시간이 짧은 거야. 그러면 바로 내가 단시간 근로자인 거지. 예를 들어서 같은 판매직인데, 다른 근로자들은 1주 40시간으로 계약을 했어. 그런데, 나는 1주 30시간으로 계약을 한 거야. 그럼 바로 내가 단시간 근로자인 거지.
사실 생각보다 쉬운 개념은 아니야. 한 번 예를 들어볼게. 회사에서 사장을 제외하고는 모든 근로자가 1주 30시간을 일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회사는 1주 30시간을 일하는 근로자가 통상 근로자인 거야. 정확하게는 1주 40시간이라는, 법정 근로시간보다 짧게 일하는 근로자가 아니라, 그 회사의 통상(일반) 근로자가 근로계약서에서 1주간 근로하기로 합의한 시간, 즉 통상 근로자의 1주 소정근로시간보다 짧은 근로자가 단시간 근로자인 거지.
벌써부터 체할 것 같다고? 그래, 그래, 알았어. 더 이상 깊게 얘기하지는 않을게. 너희 회사는 일반적으로 어떤 업무를 맡고 있든지 간에 다 1주 40시간 계약을 하고 있으니까, 1주 40시간보다 짧게 계약을 한 근로자가 있으면 다 단시간 근로자라고 생각하면 돼.
이런 의문이 들지 않니? 단시간 근로자에게도 주휴수당을 지급해야 할까? 단시간 근로자에게도 연차휴가를 부여해야 할까? 단시간 근로자에게도 퇴직급여를 주어야 할까?
내가 얘기했지. 단지 짧게 일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이야.
단시간 근로자라고 하더라도 그 시간의 길이만큼은 보호하고 있단다.
다른 통상 근로자들의 근로시간에 비례해서 보호하고 있는 거지.
만약에 1일 4시간을 일하는 단시간 근로자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꾸나. 통상 근로자들은 1일 8시간의 주휴수당을 지급하지만, 이런 단시간 근로자에게는 1일 4시간분의 주휴수당을 지급하는 거지. 연차휴가도 마찬가지야. 시간에 비례해서 보호하고 있는 거지.
이번 편지는 퇴직금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으니까, 퇴직금에 대해서 좀 더 상세하게 얘기할게.
퇴직금도 마찬가지야. 계속 근로기간이 1년 이상이면, 단시간 근로자라고 하더라도 퇴직금을 지급해야 해.
퇴직금을 지급하는 공식은 동일하게 적용된단다. 퇴직하기 전 3개월 동안 지급받은 임금총액을 그 기간의 총일수로 나눠서 1일 평균임금을 산정하고, 그 1일 평균임금으로 퇴직금을 지급하면 돼.
어때? 저번에 설명했던 내용과 동일하지.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면 법의 허점도 보이게 된단다. 통상 근로자들도 마찬가지의 문제가 발생하기는 해. 퇴직 전 3개월을 기준으로 1일 평균임금을 산정한다는 걸 생각해 보렴. 퇴직 전 3개월을 제외한 기간에는 회사의 요구로 다소 무리한 초과근로를 하다가 퇴직을 앞둔 3개월간은 최소한의 근로만 하는 거지. 그러면 퇴직금 액수가 사실상 줄어드는 효과가 나올 수도 있는 거지.
법이란 건 구멍이 있을 수밖에 없어.
법을 집행하는 사람의 철학과 그 사회의 문화가 그 구멍을 메우게 되는 거지. 아무래도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가치가 척박한 문화에서는 그 법의 구멍이 더 크게 보이게 되겠지.
그런데, 그 아르바이트를 했던 청년은 왜 나를 찾아온 걸까? 아르바이트라고 하더라도 1년 이상 근로했으면 회사가 퇴직금을 지급하는 게 당연할 텐데 말이야.
여기서 아예 공개된 법의 허점이 하나 등장한단다. 바로 초단시간 근로자야.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제4조 제1항은 이렇게 규정되어 있어.
사용자는 퇴직하는 근로자에게 급여를 지급하기 위하여 퇴직급여제도 중 하나 이상의 제도를 설정하여야 한다. 다만, 계속근로기간이 1년 미만인 근로자, 4주간을 평균하여 1주간의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근로자에 대하여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제4조 제1항)
4주간을 평균하여 1주간의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근로자에게는 퇴직금을 지급해야 할 의무를 면제시켜 놓았어.
이른바 초단시간 근로자에게는 회사가 퇴직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어.
실제 근로시간이 1주에 15시간 미만인 근로자를 의미하는 게 아니란다.
여기에서 1주 15시간은 소정 근로시간, 즉 근로자와 회사가 근로계약서에 근로하기로 합의한 시간을 의미해.
계약서에서는 1주 14시간을 계약했는데, 가끔씩 초과근로를 해서 특정한 주에 15시간 이상 근로했다고 해 보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1주 15시간 이상 계약을 한 근로자가 되는 건 아니란다. 이 근로자는 1주 소정근로시간이 14시간인 초단시간 근로자야. 단지 그 주에만 실제 근로시간이 15시간 이상이 된 것에 불과해.
그러다 보니, 이런 내용을 악용할 수도 있겠지. 계약서에는 1주 14시간이라고 적어 놓고, 실제 근로는 매주 15시간 이상을 하는 경우, 말이야.
가끔씩 일이 많아서 15시간 이상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매주 15시간 이상 일을 하는데,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을 의도로 계약서에만 14시간이라고 적혀 있으면 어떨까? 그래. 그런 경우에는 소정 근로시간이 15시간 이상인 것으로 해석해야 하겠지. 실제 매주 15시간 이상 일을 했다는 걸 증명할 만한 자료들이 있다면, 퇴직금을 지급하라는 결론이 도출될 거야.
퇴직금은 계속 근로기간이 1년 미만이거나, 1주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경우에는 적용하지 않는다고 했잖아. 그런데, 어떤 주는 15시간 이상 계약을 하고, 어떤 주는 15시간 미만을 계약한 경우에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걸까?
이 경우는 두 가지의 문제가 등장하게 돼.
첫째. 퇴직금 지급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계속 근로기간이 1년 이상이 돼야 하는데, 계속 근로기간을 어떻게 산정해야 하는가가 문제 돼.
이 경우에는 15시간 이상인 주를 합산해서 52.14주 이상이 되는지를 따져보게 된단다. 조금 두루뭉술하게 얘기해 보자꾸나. 6개월은 1주 14시간, 6개월은 1주 15시간으로 계약한 경우, 퇴직금 지급을 위한 계속근로기간은 6개월밖에 되지 않는 거야. 그 경우에는 퇴직금 지급의무가 없는 거지.
그런데, 6개월은 14시간, 6개월은 15시간, 다시 그다음 해 6개월은 15시간, 6개월은 14시간 계약을 했다면 어떨까? 그때 1주 15시간 이상 근로계약을 체결한 기간은 1년이 되는 거지. 그러면 1년 치의 퇴직금은 지급해야 하는 거지.
둘째. 1주간의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이상인지, 미만인지를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가 문제 돼.
법조문을 잘 살펴보렴. 4주간을 평균한 1주간의 소정근로시간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 그래. 정확하게는 4주간을 평균하여 1주의 소정근로시간을 산정하게 돼.
예를 들어 볼게.
-1월 1일부터 1월 28일까지의 4주를 평균한 1주의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이상이면 그 주의 소정근로시간은 15시간 이상인 거야.(1주 포함)
-1월 8일부터 2월 4일까지의 4주를 평균한 1주의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이면 그 주의 소정근로시간은 15시간 미만인 되는 거지.(2주 미포함)
-1월 15일부터 2월 11일까지의 4주를 평균한 1주의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이상이면 그 주의 소정근로시간은 15시간 이상이 되는 거야.(3주 포함)
이런 식으로 4주를 평균한 1주의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이상인 주가 52.14주 이상이 나오면 퇴직금을 지급해야 하는 거야. 1년을 평균하면 52.14주(365일÷7일)가 나오니까 말이야.
그 청년은 1주에 14시간 30분 계약을 했더구나. 분 단위 계약이 위법은 아니니까, 실제 매주 15시간 이상 근로했다는 걸 입증하지 못한다면, 퇴직금은 지급받기 어려울 거라고 얘기했어.
현실의 온도가 얼마나 차가운지, 새삼 느꼈다고 하더라.
우리 사회의 초단시간 근로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어. 2018년 현재 1주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근로자는 756,000명이나 돼. 전체 임금근로자의 3.8%에 해당하지.(출처 : 월간 노동리뷰(한국노동연구원), 2019.3월호, 117p)
오늘은 퇴직금에 대해서만 주로 얘기했지만, 초단시간 근로자들은 퇴직금뿐만 아니라, 주휴수당, 연차휴가, 기간제법상 무기계약간주조항도 배제가 돼 있어. 그리고 산재보험을 제외한 3대보험에서도 원칙적으로는 적용이 배제돼 있단다.
그래서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2017년 11월 23일에 주 15시간 미만 근로하는 초단시간 근로자에게도 유급주휴, 연차휴가, 기간제법상 고용의제, 퇴직급여, 고용보험이 적용될 수 있도록 관련 법률을 개정할 것을 고용노동부에 권고하긴 했어.
글쎄다. 이런 초단시간 근로자에 대해서 우리 사회의 노동법이 어떤 식으로 대응해 나갈지 한 번 지켜보자꾸나.
법이 어떤 식으로 대응해 나가든, 일단 우리는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자.
솔직히 난 그게 인사팀의 제1덕목이라 믿는다.
좋은 인사 전문가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은서야.
브런치 매거진에 올린 글을 엮어서 "누더기가 된 임금(부크크)"이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책 발간의 기회를 주신 브런치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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