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서야, 예전에 네가 알바할 때의 모습이 가끔씩 떠오를 때가 있어. 생계를 위한 기본적인 돈은 스스로 벌어야 하지 않겠냐며, 나한테 말했었지. 알바를 하면 얼마 정도 벌 수 있냐고 나한테 물었던 기억, 나니? 그때, 너한테 최저임금을 설명했던 기억이 난다.
강산이 변할 만큼의 시간이 흘렀구나. 이제 네가 회사에서 다른 알바 노동자들을 관리해야 하는 인사팀 사원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참 묘하다.
그런데, 경험이 오히려 상대방을 찌르는 칼이 될 때가 있더라. 그건 너도 조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나도 다 해봤는데, 너는 왜 그걸 못하니?”
“내가 알바할 때는 그런 권리는 주장도 안 했어.”
“나는 애 키우면서 직장생활도 열심히 했어. 그게 뭐 대수라고...”
은서야. 너는 그런 생각, 그런 말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자신의 경험과 상대방의 경험이 같을 수는 없어. 우리가 살아왔던 시대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시대를 동일한 잣대로 평가할 수도 없을 거고 말이야.
난 물론 네가 숫자와 데이터로 합리적으로 일하기를 바라. 하지만, 사람에 대한 긍휼함을 마음에 품고서 일을 했으면 좋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게 쉽지 않다는 거, 알아. 하지만, 누군가는 철학이 있는 인사관리를 해야 하지 않겠니? 그게 은서, 네가 되기를 바란다.
오늘부터 최저임금에 대한 얘기를 해 볼까, 한다. 말이 최저 임금이지, 사실 수많은 알바 노동자에게는 표준 임금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 소상공인과 정부 사이에 지금도 치열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 테마라고 할 수 있어.
이런 치열한 논쟁 속에 사회가 한 단계 더 진보하기를 기대하지만, 누가 옳고, 그르고를 논증하려는 게 이번 편지의 목적은 아냐. 그저 인사팀 직원이 된 너에게 지금 현재 시행되고 있는 최저임금법의 내용을 소개하려는 게 목적이야. 당장은 그 목적에 충실하려고 해. 나중에 기회가 되면, 최저임금에 대해 나랑 좀 더 상세하게 토론해 보자꾸나.
오늘은 최저임금법이 어떤 사업장에 적용되는지, 그리고 어떤 근로자에게 적용되는지를 설명하려고 한다.
1. 최저임금법의 적용 범위
최저임금법은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단다. (최저임금법 제3조 제1항 본문 참조)
(1) 전면 적용
몇 명의 근로자가 근무하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최저임금은 원칙적으로 모든 회사에 적용된단다.
소상공인들이 운영하는 사업장에도 최저임금은 적용돼.
종교법인에서 운영하는 사업장에도 최저임금은 적용돼.
근로자가 한 명밖에 없는 사업장이라도,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사업장이라도 최저임금은 적용된다는 점, 기억하렴.
(2) 전면 미적용
단지, 동거하는 친족만을 사용하는 사업과 가사사용인에게는 최저임금법을 적용하지 않는단다.(최저임금법 제3조 제1항 단서 참조)
법률상으로는 8촌 이내의 혈족과 4촌 이내의 인척, 배우자를 친족이라고 하는데(민법 777조), 그냥 같이 살고 있는 가족이나 친척만으로 회사가 운영되는 경우에는 최저임금법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보면 돼. 가족끼리의 공동경영으로 이해하려는 취지겠지.
가사사용인은 주로, 가정부나 파출부, 유모, 집사, 이런 이름으로 불리는 분들이야. 가정 내부의 사생활과 관련된 업무를 하다 보니까, 국가가 직접 감독하고 관리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최저임금법이나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않고 있어. 은서 네가 회사에서 가사사용인을 볼 일은 거의 없을 테니까, 이 부분은 더 상세히 설명하지는 않을게.
뉴스를 통해 가사사용인에 대해 가해지는 비합리적인 행태를 많이 보게 된다. 가사사용인의 노동인권보호에 대해서도 사회적인 논의가 좀 더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것, 그 정도로만 얘기하고 넘어갈게.
선원법의 적용을 받는 선원과 선원을 사용하는 선박의 소유자에게도 최저임금법을 적용하지 않는다.(최저임금법 제3조 제2항)
선원법에서는 해양수산부장관이 임금 최저액을 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어(선원법 제59조). 2020년도에 고시된 선원의 최저임금은 월 2,215,960원이야.(해양수산부고시)
은서 너희 회사야 선원법과는 무관한 회사니까, 이 부분도 이 정도로만 보고, 넘어갈게.
은서 너희 회사는 최저임금법이 적용되는 회사니까, 오히려 다음에 설명할 내용이 더 중요할 거야.
2. 최저임금 감액 적용 근로자 – 최저임금액의 90%
1년 이상의 기간을 정하여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수습 중에 있는 근로자로서 수습을 시작한 날부터 3개월 이내인 자에 대하여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제1항에 따른 최저임금액과 다른 금액으로 최저임금액을 정할 수 있다. 다만, 단순노무업무로 고용노동부장관이 정하여 고시한 직종에 종사하는 근로자는 제외한다. (최저임금법 제5조 제2항)
최저임금법이 적용되는 사업장이라면, 고시가 된 최저임금액수의 100%를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해.
그런데, 최저임금의 10%를 감액할 수 있는 경우가 있어. 매년 고시되는 시간급 최저임금액의 90%를 지급하는 걸 인정하고 있는 거지.
3개월 이내의 수습 중에 있는 근로자는
최저임금액수의 90%를 지급하는 게 가능해.
아마, 너도 알바 경험이 있으니까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런데, 몇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어.
우선, 최저임금액의 90%를 적용할 수 있는 수습 근로자란 수습일로부터 3개월 이내인 사람으로 한정돼.
회사의 수습 기간을 6개월로 정했다고 하더라도 3개월까지만 최저임금의 90%가 인정되고, 나머지 3개월은 최저임금의 100%를 지급해야 하는 거지.
둘째, 1년 이상의 근로계약기간을 정한 근로자에게만 적용되는 내용이야.
1년 미만의 근로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는 아무리 수습기간 3개월을 정했다고 하더라도 최저임금액의 100%를 지급해야 해.
근로계약기간을 6개월로 정하고, 그중 3개월을 수습기간으로 정해 두고서는 수습기간이라는 이유로 최저임금액의 90%를 지급하는 건, 금지되고 있는 거야. 너무 근로자에게 불이익한 근로계약이라는 이유겠지.
셋째, 1년 이상의 근로계약기간을 정했다고 하더라도 단순노무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에게는 수습기간을 3개월 이내로 정했다고 하더라도 최저임금액의 100%를 지급해야 해.
수습기간 중에 최저임금액의 90%를 지급하는 걸 허용하고 있는 건 숙련도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야. 그런데, 단순노무업무인 경우에는 그런 점을 고려할 필요가 없는 거지.
네가 집중해서 이 편지를 읽고 있다면, 이런 질문을 할 것 같아. 단순노무업무가 도대체 어떤 업무인지 말이야.
단순노무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란 한국표준직업분류상 대분류 9(단순노무종사자)에 해당하는 사람을 말한단다. [최저임금법 제5조에 따른 단순노무직종 근로자지정 고시(고용노동부 고시 제2018-23호, 2018.3.19. 제정)]
나중에 통계청 사이트에 방문해 보렴, 거기에 한국표준직업분류의 내용이 나와 있을 거야. 한국표준직업분류 대분류 9는 6개의 중분류로 구성되어 있어.
91 건설 및 광업 관련 단순 노무직
92 운송 관련 단순 노무직
93 제조 관련 단순 노무직
94 청소 및 경비 관련 단순 노무직
95 가사․음식 및 판매 관련 단순 노무직
99 농림․어업 및 기타 서비스 단순 노무직
그리고 또 그 중분류 안에 여러 소분류가 나뉘어 있는데, 이 편지에 그 내용을 다 담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네가 예전에 해봤던 주유원, 포장원, 판매관련 종사원, 전단지 배포원, 주방보조원, 패스트푸드 준비원, 청소원 등이 다 이 분류 안에 포함돼 있다고 보면 돼.
자, 한 번 정리해 볼까?
우선 1년 미만의 기간을 정한 기간제 근로자에게는 최저임금 감액이 안되니까, 100%의 최저임금을 지급해야 해.
그리고 설령 1년 이상의 기간을 정했다고 하더라도 단순노무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는 수습기간과 무관하게 최저임금액의 100%를 지급해야 해.
알겠지?
3. 최저임금 적용제외 근로자
정신 또는 신체의 장애가 업무 수행에 직접적으로 현저한 지장을 주는 것이 명백하다고 인정되는 사람으로서 사용자가 고용노동부장관의 인가를 받은 근로자에게는 최저임금액을 적용하지 않는다. (최저임금법 제7조, 최저임금법 시행령 제6조 참조)
노동자의 장애가 업무수행에 직접적으로 현저한 지장을 주는 것이 명백한 경우에 사용자가 노동부장관에게 신청하면, 노동부장관이 인가를 해 주는 제도가 있어. 그때 인가를 받으면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을 수 있어.
인가를 원하는 사업주는 사업장 전체 노동자 임금대장, 장애인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 친권자 의견서(지적장애·정신장애 등) 등 필요서류를 첨부해 지방노동청에 신청하면 돼.
그러면, 신청을 받은 지방노동청에서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작업능력평가를 의뢰하고 이 평가결과에 따라 최저임금 적용제외 인가여부가 결정되는 구조야. 이 때, 장애로 인해 근로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장애노동자의 작업능력값이 비장애노동자의 작업능력값보다 70 미만인 경우에 인가를 해 줘(2018년 기준).
이 부분은 삼촌이 자세히 살펴보지는 못해서, 정확하게 평가는 못 해. 하지만, 장애노동자들의 노동인권이 이런 제도 때문에 침해돼서는 안 되겠지. 관련된 공무원이나 공단 직원들의 전문성이 보다 확보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 거야.
오늘은 최저임금법이 적용되는 사업장과 근로자에 대해서 설명했다.
어때? 좀 이해가 되지?
최저임금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갈등이 이제는 꽤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만큼 소득 양극화와 임금 양극화가 심하다는 걸 보여주는 걸 거야.
이제 은서 너의 통장에는 알바시절 받았던 최저임금액보다는 더 많은 금액이 찍혀 있을 거야.
하지만, 너의 그 시절을 기억하고 존중하렴. 너와 함께 호흡하고 있는 사람들도 존중하기를 바란다.
그 사람이 받고 있는 임금의 액수로 그 사람의 인격을 재단하지 말기를 바란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는 그 선언이, 나와 너의 삶 가운데 행동으로 드러나기를 희망한다. 안녕.
브런치 매거진에 올린 글을 엮어서 "누더기가 된 임금(부크크)"이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책 발간의 기회를 주신 브런치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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