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을 시작하며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역시 마트다. 요리와 장보기 담당을 하고 있는 만큼 마트에 갈 일이 많은데, 다행히 살고 있는 동네는 각각의 특색을 갖춘 다양한 마트들이 있는 편이라, 오늘은 저 마트, 다음 주는 이 마트 등 나름 골라 가는 재미가 있다. 그중 제일 애정하는 마트는 냉장 식품을 전문으로 파는 곳이다. 냉동식품 대국인 미국에서, 냉장 식품 위주로 판매하는 게 쉽지 않은데, 그만큼 값을 더 지불해서라도 신선한 식품을 먹고 싶어 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마트다. 식료품만 팔기 때문에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양고기와 두꺼운 T본 스테이크, 해산물과 피자까지, 전부 냉동이 아닌 신선한 상태로 판매하고 있다. 똑같은 개수를 사더라도 다른 마트에 1.5배~2배 이상 나오는 가격 때문에 마음껏 가지는 못 해도 집에서 가깝고 질 좋은 먹을거리를 산다는 핑계로 자주 향하게 된다.
그런데 내가 제일 애정하는 이 마트의 입구에서 발이 얼어붙는 일이 생겼다. 한동안 우중충하던 하늘이 걷히고 날이 쨍하고 좋아, 가벼운 옷차림에 콧노래까지 부르며 식료품점으로 차를 움직였다. 주차를 하고 마트 입구로 걸어가는데,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마트 주변에 모여 있었다. 핸드폰으로 카메라를 켜고 마트 앞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모습이 궁금증을 자극했다. 내 작은 키로는 길쭉길쭉한 서양인들을 뚫고 볼 수 있는 것이 없어, 앞으로 다가갔다. 더 이상 내 시야를 가리는 게 없을 만큼 나아가자, 오금이 저리는 장면이 펼쳐졌다.
짙은 녹색의 울퉁불퉁한 피부, 샛노란 눈알을 가지고 있는 대형 악어가 마트 앞에 있는 것이다. 악어의 머리만 해도 내 상반신은 충분히 들어갈 만큼 아주 큰 녀석이었다. 한국이었다면, 마트에서 판매하는 인형인가? 진짜 같은 장식품인가 하고 겁부터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난 이 악어를 보는 순간 이 녀석이 진짜 살아있는 녀석임을 알 수 있었다. 야생 악어를 보는 게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365일 덥기로 유명한 플로리다는 악어들의 천국이다. SNS에서 동네 주민들이 쓰레기 통으로 집 앞에 나타난 악어를 잡는 장면이나, 골프장을 여유롭게 누비는 악어를 멀리서 촬영한 영상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내가 사는 곳은 플로리다 주는 아니지만, 거기서 1시간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남쪽 지역이다. 플로리다만큼 악어가 사람 사는 지역에 등장할 정도는 아니어도, 집 근처 작은 강가에 가면 그곳에 살고 있는 야생 악어를 볼 수 있고, 늪이 있는 트레일을 걸을 때는 늘 악어 조심이라는 표지판을 보곤 한다. 아스팔트가 깔려 있는 트레일을 걸을 때도, 그 옆에 늪과 풀밭이 있다는 이유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 악어 세 마리가 납작한 바위 위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는 것도 목격했다. 물론 새끼들 뒤에 눈만 드러낸 채 몸을 담그고 있는 어미 악어와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더 가까이 갈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심지어 집에서 30분 거리에는 관광지로 유명한 악어 사육장까지 있다.
한국에서는 동물원에서만 봤던 악어가, 미국에 살면서는 동네 이웃이 되어버린 셈이다. 그래도 물가에서 좀 떨어진 사람 많은 상점가에 대형 악어가 떡하니 등장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니 악어가 익숙한 이곳 주민들도 식겁한 상태로, 믿기 힘든 이 장면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악어는 먹이를 먹거나 공격을 할 때는 포착하기 힘들 만큼 엄청난 스피드로 움직이지만, 그럴 때가 아니면 그리 움직임이 크지 않은 동물이다. 그래서 내가 발견했을 때도 가만히 따뜻한 아스팔트 바닥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그래도 언제 머리와 꼬리를 들어 움직일지 모르는 상태라 모두들 어찌할 바를 몰랐다. 상점 안에 있는 사람들도 가게 유리문 앞에 붙어 밖으로 나오지 못 한 채 상황만 살피는 게 보였다.
천만 다행히도 이 상점 거리에는 경찰서가 있다. 물론 그들은 악어 전문가는 아니지만, 일반인보다야 뭔가 싸울 수 있는 장비라도 하나 더 가지고 있지 않겠는가. 결국 경찰이 나서서 사람들의 접근을 막았고, 올가미 같은 걸 가져와 제압하려 했다. 자극을 받은 악어가 어디로 튈지 몰라 무서워진 나는 급히 차 안으로 도망가 자리를 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 페이스북 커뮤니티에는 누군가가 그곳에서 찍은 악어 사진이 올라왔고, 악어는 무사히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갔다는 코멘트를 봤다.
워낙 치안 문제가 많은 미국에 살면서, 마트에서 무장 강도를 만나거나 총기 사고가 나거나 하는 등의 상상을 해본 적은 있지만, 악어를 대면할 거라는 건 계산에 없었다. 미국 시골에 살면서 친자연적인 생활을 기대했는데, 이곳에서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은 악어와 마트도 공유하는 걸 말하는 것이었나 보다. 오늘도 나의 미국 살이는 이렇게 평화스럽게 흘러간다.